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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EYOND SPACE, RENAULT MASTER

유럽 경상용차 르노 마스터가 한국 땅을 밟았다. 적재함, 적재량, 효율, 구성 뭐 하나 흠잡을 곳이 없다. 조만간 동네 택배차들이 싹 다 바뀔지도 모르겠다

2018.10.10

상용차. 우리가 깜박 잊기 쉬운 존재다. 시속 300킬로미터를 넘기는 스포츠카나 바위를 타고 넘는 정통 SUV는 동경의 대상이고, 출퇴근과 여행에 유용한 세단과 미니밴은 매일 함께하는 가족이나 다름없다. 하지만 한편에서 이런 일상을 가능하게 만드는, 조용하지만 묵묵히 달리는 차가 있다. 바로 상용차다. 그중 적재량 1톤 안팎의 소형 상용차는 더욱 의미가 깊다. 오늘 아침 온라인으로 주문한 상품을 당장 내일 집에서 택배로 받을 수 있는 것도 이런 소형 상용차 덕분이다. 

 

 

개인적인 견해만은 아니다. 자동차 판매량 10위 안에는 항상 현대 포터2나 기아 봉고3가 있다. 크기와 영역은 조금 다르지만 현대 스타렉스, 한국지엠 라보와 다마스도 분명 나름의 역할이 있다. 작년 이들의 판매량은 약 24만대였다. 전체 판매량이 151만대였으니 약 16퍼센트를 차지하고 있는 셈이다. 승합차 개념이 강한 스타렉스를 제외해도 17만대가 넘는다. 소상공인에게 반드시 필요한 존재라는 이야기다. 
국내 소형 상용차 대부분은 짐 공간이 오픈된 형태를 띠고 있다. 그래서 물건을 싣고 내리기가 편하고 부피가 큰 물건을 싣는 데 유리하다. 하지만 적재물 낙하 방지를 위한 고정 작업이나 악천후를 대비한 방수커버 설치 등 번거로운 면도 있다. 요즘 날씨의 패턴을 보면 이런 일이 더 문제가 된다. 기상청 통계에 따르면 1973년부터 2017년까지 매년 비가 온 날은 평균 90일 정도다. 하지만 2000년대 후반부터는 100일을 넘어선 적이 많다. 2017년의 경우 비가 내린 날은 101일이며 서리가 온 날은 약 25일, 눈이 내린 날은 12일 정도다. 1년 365일 중 약 37퍼센트인 137일에 방수커버 설치가 필요했던 것이다. 또 외부에 노출된 짐은 항상 도난의 위험이 있다. 그래서 택배회사는 대부분 트럭이 아닌 밴을 사용한다. 

 

 

마스터는 엔진이 차체 앞쪽에 있는 1.5박스 타입이다. 때문에 공기저항이 적고 앞좌석 공간이 넓은 데다 정면 추돌 시 안전하다.

 

택배회사의 밴 사용 규모는 5만대 이상이며 이는 점점 더 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르노가 경상용차 마스터를 출시하겠다고 밝혔다. 첫 타자는 3인승 밴. 현대·기아차가 거의 독점하고 있는 시장, 그것도 성장 가능성이 가장 큰 시장에 뛰어든 것이다. 우리에겐 다소 생소하지만 르노 상용차의 명성은 세계적이다. 르노 그룹은 총중량 3.5톤 이하의 유럽 경상용차(LCV, Light Commercial Vehicle) 분야에서 1998년 이래 판매 1위를 놓치지 않고 있다. 물론 마스터는 유럽 이외 지역에서도 활약 중이다. 브라질 판매량은 프랑스에 이어 2위를 차지하고 있다. 마스터는 1980년 데뷔해 1997년과 2011년에 세대교체를 거쳤다. 상용차의 세대교체 주기는 승용차보다 긴 편이다. 마스터의 경우 약 15년이다. 이번에 수입되는 3세대는 수명의 절반 정도가 남은 셈이다. 


마스터의 가장 큰 특징은 차 앞머리가 튀어나온, 1.5박스 형태라는 점이다. 스타렉스를 제외한 국산 1톤 상용차는 모두 엔진 위에 탑승 공간이 있는 캡 오버 타입이다. 모양이 다른 만큼 장단점도 제각각이다. 캡 오버 타입은 차 전체 길이에서 짐을 싣는 공간이 상대적으로 크다. 휠베이스가 짧아 많은 짐을 싣고도 좁은 골목을 드나들기 편하다. 상대적으로 활용성이 뛰어나다는 얘기다. 반면 엔진룸이 분리된 캡 포워드 타입은 공기저항이 적은 데다 안전 면에서 유리하다. 정면에 충격을 흡수할 공간이 많기 때문이다. 이런 차이로 인해 도로 폭이 좁은 우리나라와 일본, 유럽 등에서는 캡 오버 타입이 인기를 끌었다. 

 

적재함이 크기도 하지만 형태도 반듯해 부피가 큰 짐을 많이 실을 수 있다. 승객실엔 동급 최초의 오버헤드 콘솔을 비롯해 무려 15개의 수납공간이 있다.

 

그런데 유럽에선 1970년대 중반부터 캡 포워드와 캡 오버 타입의 장점만을 가져온 1.5박스 형태가 유행하기 시작했다. 트럭에도 충돌 테스트가 도입됐기 때문이다. 얼마 전 국내에 출시된 이베코 뉴 데일리가 그렇고, 과거 국내에 판매됐던 현대 리베로도 같은 개념이었다. 리베로는 실패한 차 아니냐고? 리베로가 실패한 이유는 비싼 값과 좁은 적재 공간 등 낮은 상품성에 있다. 
시장은 끊임없이 변한다. 차도 달라져야 산다. 소형 상용차 시장처럼 외부 요인의 영향을 많이 받는 경우에는 더더욱 그렇다. 기후는 변하고 도로 인프라는 개선되고 있다. 안전에 대한 인식도 달라지고 있다. 이런 관점으로 본다면 르노가 1.5박스 밴인 마스터를 들여오는 것도 전혀 어색하지 않을 것이다. 


국내에 판매되는 마스터는 크기에 따라 두 종으로 나뉜다. 표준형인 S(Standard)와 확장형인 L(Large)이다. 차폭(2070밀리미터)과 앞뒤 트레드(1750/1730밀리미터), 그리고 디자인은 같다. 다만 S의 길이와 휠베이스는 각각 5048밀리미터, 3182밀리미터이며 L은 5548밀리미터, 3683밀리미터다. 높이도 다르다. S는 2307밀리미터, L은 2499밀리미터다. 참고로 스타렉스 3인승 밴의 길이×너비×높이는 5150×1920×1925밀리미터다. 두 종의 마스터 중 작은 편인 S도 이보다 150밀리미터 넓고 392밀리미터 높다(휠베이스가 비슷하기 때문에 길이 차이는 별 의미가 없다). 


차폭이 큰 덕에 실내도 넓다. 경쟁 모델은 앞자리에 성인 3명이 타기 어렵지만 마스터는 넉넉하다. 작업용 도구와 큰 자재를 싣고 3명이 함께 탈 수 있다는 건 큰 장점이다. 수납공간도 넉넉하다. 동급 최초인 오버헤드 콘솔을 비롯해 모두 15군데에 수납공간이 있다. 가운데 시트를 접어 쓰는 테이블도 평평해 활용성이 좋다.  

 
짐 공간 크기와 최대 적재량도 경쟁 모델과 차이가 크다. 스타렉스의 짐 공간 크기가 5.2제곱미터인 반면 마스터 S는 8.0제곱미터다. 차체 크기 차이에 비해 짐 공간 차이가 더 큰 건 설계 사상이 달라서다. 마스터는 화물 적재에 모든 초점을 맞추고 있다. 예컨대 스타렉스는 1열 탑승자의 등받이 공간 확보를 위해 격벽 중간이 짐 공간을 침범하는 형상이라 박스 형태의 물건을 가득 채울 수가 없다. 반면 마스터는 시트 공간도 확보하며 격벽도 판판하게 만들어 물건을 차곡차곡 쌓을 수 있어 효율성이 높다. 

 

 

파워트레인은 2.3리터 4기통 트윈터보 디젤 엔진과 6단 수동변속기의 조합이다. 최고출력 145마력은 3500rpm에서 나오고 최대토크 34.7kg·m는 1500rpm에서 나온다. 수치보단 실용 영역에서의 반응을 더 생각한 세팅이다. 변속기에는 적절한 변속 타이밍을 알려주는 인디케이터가 달려 있다. 연비는 동급 최고 수준이라고 한다. 공회전 방지장치, 엔진 출력과 에어컨 작동량을 제어하는 에코 모드, 회생제동을 활용하는 얼터네이터 등 효율 극대화하는 기술들을 빠짐없이 담은 덕분이다. 


차체 형태는 반듯하다. 효율을 중시하는 상용차답게 적재 공간 확보에 초점을 맞췄다. 다이아몬드 모양의 르노 엠블럼과 커다란 그릴은 듬직한 인상을 준다. 범퍼 좌우에는 스텝도 있다. 앞유리를 닦을 때 밟고 올라서는 것으로, 키가 큰 1.5박스 타입 보디에는 꼭 필요한 요소다. 사이드미러도 상용차답게 큼직하다. 세로로 길쭉한 데다, 거울 아래쪽을 휘어두어(왜곡을 만들어) 시인성이 좋다. 사각지대가 적어 좁은 길을 지날 때 유용하다. 


차체 옆면에는 커다란 슬라이딩 도어가 있다. 입구 길이는 S가 1050밀리미터며, L은 1270밀리미터다. 택배사의 배달차는 담당 지역이 나뉘어 있고, 배송 시작점에 따라 상품을 구별해서 싣는다. 그러니까 배송 코스에서 가장 늦게 가는 곳의 물건부터 안쪽에 차곡차곡 쌓는다. 때문에 고객의 긴급 요청이 있어도 순서를 바꾸기가 곤란하다. 짐을 꺼내기가 쉽지 않아서다. 하지만 마스터처럼 옆면에 슬라이딩 도어가 있으면 문제 될 게 없다. 현재 택배사가 사용하는 대부분의 배달차는 차체 뒤쪽에 스윙 도어만 달고 있다. 


스타렉스는 위로 열리는 해치 형태가 기본이고 스윙 도어는 옵션이다. 그러나 마스터는 스윙 도어가 기본이다. 게다가 스타렉스의 도어는 완전히 벌어지지 않는다. 반면 마스터는 매우 넓게 열린다. S는 180도, L은 270도다. 포터 탑차 역시 270도지만 문을 손으로 잠가야 한다. 마스터는 리모컨으로 모든 도어를 한 번에 잠글 수 있다. 승합차에 가까워 편의성이 좋은 스타렉스와 상용으로 활용도가 높은 포터의 장점들만 조합돼 있다고 생각하면 이해가 쉽다. 

 

 

마스터는 옆면 슬라이딩 도어와 뒷면 듀얼 폴딩 도어를 모두 갖춘다. 따라서 안쪽에 실은 짐을 먼저 내리는 것도 가능하다.

 

가장 큰 차이는 지면부터 짐칸까지의 높이다. 화물용으로 개발된 포터는 사다리꼴 형태의 프레임과 뒷바퀴를 굴리기 위한 디퍼렌셜 때문에 780밀리미터나 된다. 반면 앞바퀴굴림 방식인 마스터는 175밀리미터가 낮은 545밀리미터다. 고작 한 뼘 정도지만, 짐을 싣고 꺼내며 짐칸에 드나드는 일이 잦은 화물차에겐 이 정도도 아주 의미 있는 차이다. 


마스터 S와 포터 초장축 하이내장 탑차를 비교해보면 마스터가 얼마나 유용한 차인지를 알 수 있다. 우선 차체는 포터가 크다. 차체 길이는 10센티미터 이상 길고, 적재함 길이는 약 25센티미터 길며, 높이는 약 36센티미터가 높다. 하지만 적재함 용량은 거의 차이가 없다. 포터 초장축 하이내장 탑차는 8.5제곱미터, 마스터 S는 8.0제곱미터다. 최대 적재량은 오히려 마스터가 더 넉넉하다. 포터는 최대 1000킬로그램에 불과하지만 마스터 S는 1300킬로그램이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마스터 L과 비교하면 게임이 되지 않는다. 마스터 L의 적재함 용량은 10.8제곱미터고 최대 적재량은 1350킬로그램이다. 그리고 마스터는 짐칸 바닥에 레진 우드를, 좌우 벽면에 하드보드 라이닝을 넣었다. 화물과 내장재가 상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서다. 


안전장비는 어떨까? 상용차는 운행 시간이 많기 때문에 안전장비가 중요하다. 마스터는 법적 의무사항인 자세제어장치(ESC)와 타이어 공기압 모니터링 시스템(TPMS)은 물론이고 경사로 밀림 방지 장치(HSA)도 기본이다. 그리고 트레일러 스윙 어시스트(Trailer Swing Assist)라는 기능도 갖춘다. 차체 뒤쪽에 트레일러를 연결하고 견인하는 경우, 측면 풍으로 인해 트레일러가 물고기 꼬리처럼 움직이는 것을 막아준다. ESC에서 한 단계 더 발전한 기능인데, 중대형 SUV에서야 볼 수 있는 안전장비다. 미끄러운 노면에서 접지력 향상을 위해 트랙션 컨트롤이 더 민감하게 작동하는 익스텐디드 그립(Extended Grip)이나 냉간 시에도 뜨거운 바람이 나와 겨울철에 유용한 PTC 히터도 마스터의 빼놓을 수 없는 장점이다. 


자동차는 시대의 요구와 시장의 변화에 따라 바뀌고 세분화되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승용차 시장이 경차부터 대형 세단까지 확대됐듯, 상용차 시장 역시 조금 더 다양해질 필요가 있다. 마스터는 차체 크기 대비 더 넉넉한 적재함과 적재량은 물론 1.5박스 차체와 앞바퀴굴림 방식이라는 구조적인 장점을 가졌다. 유럽에서는 이미 이런 장점에 힘입어 DHL과 네슬레 등 대형 유통회사들과 파트너십까지 맺고 있다.
마스터가 기존 시장의 파이를 잘라 먹을 것인지, 파이를 키우거나 아예 새로 만들 것인지는 아무도 모른다. 다만 새로운 차가 생긴다면 그에 따른 수요는 분명 생겨날 것이다. 아직까지 국내 자동차 시장은 소비자가 아닌 제작사가 주도하고 있기 때문이다. 소형 SUV 시장을 열어젖힌 QM3나 소형 해치백 시장에 고급화 바람을 불러온 클리오처럼 마스터도 경직된 국내 상용차 시장의 틀을 바꾸는 개척자가 되길 기대한다.
글 이동희(자동차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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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EDIT

EDITOR : 류민PHOTO : 르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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