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LUMN

운전, 화가 난다

이게 병일까? 정말 운전이 문제일까?

2018.11.29

 

“아이 참, 뭐 하는 거야!” 짜증이 잔뜩 섞인 말을 내뱉더니 운전대를 꺾고 가속페달을 거칠게 밟았다. 손님 때문에 급하게 멈춰 선 택시가 화근이었다. 동승석에서 이를 지켜본 난 깜짝 놀랐다. 세상 온순한 여자인 줄 알았는데, 차를 산 지 얼마 지나지 않아 과격해졌다. 자기도 머쓱했는지 이렇게 말했다. “운전 때문에 성질 다 버렸다니까.”

 

나도 예전엔 그랬을지 모른다. 하긴 지금도 가끔씩 화를 낸다. 운전을 한 지 20년이나 됐는데도 말이다. 그래서 갑자기 궁금해졌다. 운전할 땐 왜 그렇게 쉽게 화를 내게 될까? 인터넷을 보니 별별 얘기가 다 있다. 하지만 맥락은 대개 비슷하다. 운전하다 조금 화가 나는 건 일반적인 일이지만, 난폭운전이나 보복운전으로 남에게 피해를 주는 건 병이자 범죄라는 이야기다. 음, 정말 이렇게 생각해도 괜찮은 걸까?

 

난폭운전과 보복운전. 사람들은 이런 행위와 그 원인을 아울러 ‘로드 레이지’라고 부른다. 단어 그대로 도로 위(에 표출된) 분노를 뜻하며, 대부분은 이게 분노조절장애에서 비롯된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분노조절장애라는 병은 없다. 분노를 다스리지 못하거나, 자주 표출하게 만드는 병이 따로 있다. 성인 ADHD, 우울증, 간헐적 폭발장애, 적대적 반항장애, 사회공포증,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 양극성 장애, 조현병 등이 대표적이다. 그중 최근 사회적 문제로 떠오른 병은 성인 ADHD다. 어릴 적 ADHD를 극복하지 못하고 성장한 사례로, 성인 100명 중 1~2명이 이 병을 앓고 있다.

 

물론 운전 중 화를 내는 사람 모두에게 이런 병이 있다는 건 아니다. 사실 신경정신과의 진단 기준은 애매하다. 앞서 언급한 병의 증상 일부를 겪고 있더라도 그 증상이 일상생활에 지장을 주면 병이고, 그 정도가 아니면 병으로 치부하지 않는다. 작은 증상도 예방 차원에서 치료를 하는 게 이상적이지만, 그 정도로 많은 시간과 노력이 드는 상담 치료를 받는 사람은 거의 없고, 현실적 어려움으로 인해 병원 역시 이런 체계를 유지하지 못하고 있다. 참고로 투약과 같은 물리적 치료는 비교적 중증에만 사용한다.

 

운전 중 분노 표출에 대한 판단 기준도 마찬가지다. 일상생활에 해가 될 정도여야 병으로 본다. 분노 표출로 인해 교통사고 같은 일이 벌어지고 난 후에야 심각하게 받아들인다는 이야기다. 그래서 진짜 문제는 그 정도 수준이 아닐 경우다. 가끔 폭언이나 과격한 운전을 하지만 물의를 일으킬 정도만 아니면 괜찮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건 정상이 아니다. 스스로를 위해서는 물론, 가족을 위해서라도 반드시 교정해야 한다. 가령 운전자의 분노 표출은 동승자를 불안장애에 빠뜨릴 수 있다. 불안장애는 난폭운전을 하는 차의 동승석에 앉아 있을 때처럼, 자신이 통제할 수 없는 상황에서 극심한 스트레스를 받을 때 생긴다. 심할 경우 호흡장애나 심박 상승으로 인한 신체 변화가 생길 수 있거니와, 트라우마로 인해 다시는 그 사람이 운전하는 차를 타지 못하게 될 수도 있다.

 

물론 쉽지 않은 문제이긴 하다. 운전은 분노 표출의 좋은 촉매제다. 운전이라는 행위는 지극히 개인적인 공간에서 이뤄진다. 그래서 화를 쏟아내는 데에 아무 거리낌이 없다. 익명성이 보장된 온라인 공간에서 독설을 쉽게 뱉게 되는 것과 비슷하다. 화는 일단 내기 시작하면 절제가 어렵다. 


그리고 운전은 인지와 반응, 그리고 조작 순으로 이뤄진다. 운전자는 인지 과정 전후로 끊임없이 예상을 한다. 예상의 기준은 대부분 나 자신이다. 도로 위를 달리는 차들이 전부 나처럼 생각하고 움직일 거라 예상한다는 이야기다. 짜증은 그 예상이 깨졌을 때 생긴다. 동시에 내가 소유한 또는 안전하다 생각했던 영역이 침범당했다고 여기게 된다. 하지만 모든 운전자는 나와 같지 않고, 도로는 내 소유가 아니다. 온전히 내 착각이고 욕심이다. 남들은 나와 다르다는 생각과, 더불어 사는 세상이라는 생각은 대인 관계 그리고 사회생활의 기본이다. 세상에 ‘로드 레이지’라는 병은 없다. 분노 표출은 어떤 정신과적 병의 심각한 증상 중 하나다. 그리고 운전도, 차도 죄가 없다. 취재협조 노동현(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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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EDIT

EDITOR : 류민PHOTO : 박남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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