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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을 가르는 황홀함, 포르쉐 718 박스터 GTS & MG MGB 로드스터

로드스터는 지붕을 열고 바람을 맞으며 달려야 제맛이다. 어릴 적 드림카였던 MGB와 오늘날 최고의 로드스터 718 박스터를 번갈아 모는 기분이 황홀하다

2018.12.07

 

낙엽이 지는 이 순간, 코끝을 스치는 바람이 싸늘하다. 일기예보는 올 가을 들어 첫 영하의 아침을 알렸다. 지붕을 젖히고 달리기에 최고의 계절이 왔다. 양털 내피를 단 가죽점퍼를 입고 히터를 최대로 틀자 더운 바람이 불어댄다. 발은 따뜻하게, 머리는 차갑게.

 

로드스터는 지붕이 열리는 2인승 차를 말한다. 대체로 크기는 작고, 럭셔리보다 젊음을 추구한다. 바람에 머리카락을 흩날리는 재미에 비하면 실용성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 엔진도 클 필요는 없다. 가벼운 차체가 성능 향상에 도움이 된다면 고마울 따름이다. 차마다 개성 넘치는 디자인은 큰 매력이다. 2차 세계대전 후 유럽에 주둔하던 미군이 본국으로 귀국하면서 영국 스포츠카 MG-TC를 가져갔고, 미국에 유럽산 로드스터 붐이 일었다. 1960~70년대에 걸쳐 MG, 오스틴 힐리, 트라이엄프, 로터스, 피아트, 알파로메오 등 주옥같은 차들이 인기를 모았다. 나중에 닷선 페어레이디, 240Z 같은 일본차도 가세했다.

 

그때 유럽산 로드스터는 고장도 많아 집 차고에서 수리하는 것이 취미 생활로 자리 잡았다. 프레임 섀시에 보디를 얹은 뒷바퀴굴림 차는 구조가 간단해 고치는 것이 어렵지 않았다. 중고차를 사서 돈을 모아가며 수리하는 서민의 취미는 미국 문화의 하나가 됐다. 1970년대 중반, 자동차 전복에 대한 미국의 안전 규제가 강화되면서 로드스터는 점차 미국에서 사라져갔다. 1989년 데뷔한 마쓰다 미아타가 인기를 모은 건 이 차들의 기억을 되살렸기 때문이다. 미아타는 유럽 로드스터의 DNA를 그대로 이어받았지만 고장이 나지 않았다. 오늘은 명차의 반열에 오른 두 대의 시승차로 로드스터의 매력을 찾아 나선다.

 

 

1980 MG MGB

1924년 설립된 MG(모리스 개러지)는 MG-TC, 미제트, MGA 등 많은 스포츠카를 내놓았다. MGB는 1962~80년까지 생산된 차로 당시 영국의 로드스터를 대표하는 아이콘이었다. 시간을 잊은 듯 멋진 디자인은 밸런스가 뛰어나 18년 동안 큰 변화 없이 많은 사랑을 받았다. 당시 대부분 차들이 ‘보디 온 프레임’ 구조였는데, 모노코크 보디를 두른 MGB는 가벼운 차체로 시대를 앞섰다. 컨버터블에 이어 1966년에는 GT도 추가됐는데, 2+2 하드톱 쿠페인 MGB GT 역시 디자인이 완벽했다. 당시 학생이던 난 잡지책을 뒤적이면서 어느 차를 고를까 고민하곤 했다. 물론 가질 수 없는 상상 속의 드림카였지만.

 

 

BMC 그룹에 속한 MG는 MGB 제작에 기존 양산차의 부품을 써 기술적으로 뛰어나진 않았지만 상품 가치가 좋았다. 다른 차에도 두루 쓰이는 BMC B 시리즈 엔진은 95마력을 내는 1.8리터 4기통 OHV로, 특히 3000rpm에서 뽑아내는 15.2kg·m의 토크가 좋았다. MGB는 0→시속 100킬로미터 가속 시간이 12초 정도였으며, 최고속도는 시속 170킬로미터에 달했다.

 

MGB는 나중에 미국의 배출가스 규제에 맞추기 위해 압축비를 줄이면서 출력이 65마력으로 낮아졌다. 시승차는 MGB의 마지막 연도 모델인 1980년형 미국 수출용으로, 출력이 83마력으로 조금 높아졌다. 미아타가 고출력에 집착하지 않는 것도 이런 로드스터의 계보를 따르기 때문이다. 수동 4단 기어는 3, 4단에 전기식 오버드라이브 버튼이 있어 잘만 이용하면 6단 기어 같은 기분도 낼 수 있다.

 

 

처음에 크롬 범퍼를 달고 나온 MGB는 1974년부터 미국에서 판매하는 차에 5마일 범퍼를 달도록 하는 법이 생기면서 고무 재질로 바뀌었다. 당시 모든 차들이 새로운 법규에 반항하듯 뭉툭한 범퍼를 달았는데, MGB만이 범퍼와 프런트 그릴을 하나로 만든 멋진 디자인이었다. 그 센스에 감동했던 기억이 있다. 이때 법에 따라 차 높이도 약간 높아졌는데 핸들링에 어느 정도 영향을 미쳤다.

 

 

시승차는 영국을 대표하는 브리티시 그린 컬러에 베이지색 실내로 최상의 조합이다. 다만 전 주인의 취향이라는데, 여기저기 장식용 스티커를 잔뜩 붙여 조금 정신이 없다. 일본 자동차 문화 중 하나인 ‘카페레이서’의 흐름에 따라 꾸몄다는데 벗겨내자니 얼룩이 남을까 조심스럽다. 작은 차지만 실내공간은 넉넉해 덩치 큰 사람도 문제없이 탈 수 있다. 의자 뒤로는 제법 여유로운 공간이 있어 작은 시트도 달 수 있겠다. 손으로 접고 펼 수 있는 홑겹으로 된 지붕은 부피가 작게 접힌다. 영국 스포츠카에서 천으로 된 지붕에 비가 조금 새는 것은 당연하다.

 

 

나지막한 앞 유리창에는 와이퍼가 세 개나 달렸다. 계기반에 자리한 커다란 태코미터는 당시 일반 승용차에는 없는 장비였다. 시승차는 후기 모델이라 그런지 시트에 헤드레스트와 안전벨트도 달렸다. 손잡이를 돌려 창을 내린다. MGB는 나의 소년 시절 드림카였다. 실제로 앉아보는 것만으로도 황홀한데, 시승차의 모든 조작이 1970년대의 차를 그대로 떠올린다. 최고출력은 83마력이지만 1240킬로그램으로 무게가 가벼운 덕에 힘이 부족하다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오래된 차를 대차게 몰아칠 수는 없었지만 이 정도면 일상적으로도 탈 만하다는 생각이다. 이렇게 상태가 좋은 클래식카는 오랜만이다. 보디의 보관 상태뿐 아니라 주행감각도 1970년대의 감각을 그대로 간직했다.

 

 

림이 가느다란 운전대는 가볍게 낭창낭창 댄다. 물론 파워스티어링이 아니다. 서스펜션은 앞쪽이 위시본에 코일 스프링, 뒤는 고전미 자욱한 리지드 액슬에 리프 스프링이다. 앞바퀴는 디스크지만 뒷바퀴는 드럼 브레이크라 어딘가 한참 밀린다. 옛날 차가 이렇게 밀렸던가? 아스라한 기억을 되살려본다. 옆유리 앞쪽에 조그맣게 난 삼각 창을 돌려 바람이 들이치도록 했다. 스치는 바람에, 38년 된 로드스터에 재미가 가득하다. 대시보드 스위치 조작부터 달리는 감각까지 모든 것이 젊은 시절을 떠올린다. 그때 MGB는 없었지만 코티나 같은 차가 이렇게 달렸다. 모두가 어려운 시절, 2인승 스포츠카는 머나먼 나라에서나 상상할 수 있는 드림카였다.

 

 

1980년 당시 MGB는 6550달러였다. MGB는 18년 동안 52만대가 넘게 팔린 히트작이다. 생산된 모델 가운데 80퍼센트 이상이 미국에서 팔렸다. 나중에 6기통과 V8 엔진까지 얹혔지만 앞이 무거운 차가 돼 성공적이지 못했다. 그렇게 MGB는 모델 체인지 없이 18년을 견디다 모그룹인 브리티시 리랜드가 어려워지면서 생을 마감했다. MG는 지금 중국 브랜드가 돼 유럽 시장에 진출하고 있다.

 

 


 

 

PORSCHE 718 BOXSTER 

포르쉐는 911 아랫급으로 작은 차를 꾸준히 만들어왔다. 914/6, 924, 944, 968 등 작은 포르쉐 스포츠카는 저만의 매력을 뽐냈다. 개중에는 폭스바겐 엔진을 얹은 차도 많았는데, 모두가 자신을 낮춰 포르쉐의 주력인 911을 돋보이게 하는 차들 같았다. 작은 포르쉐는 911을 넘지 못한다는 태생적인 한계를 지녔다. 그런데 박스터는 가장 성공적인 동생 모델로, 종종 형님 911의 자리를 넘본다. 매력이 넘쳐 주체할 줄 모른다. 그 이유는 신체적인 우월성에 있다. 자동차의 핸들링에서 중요한 것이 차체 밸런스인데, 가장 바람직한 구성은 무게중심이 차 한가운데, 또 아래쪽에 있을 때다. 내가 마음먹은 대로 움직이는 차는 핸들링 좋은 차의 기본 조건이다.

 

 

엔진을 뒤에 얹은 911은 미드십 엔진의 박스터를 당할 수가 없다. 이렇게 뛰어난 차인데도 911을 넘어설 수 없다는 숙명은 가슴 아프다. 박스터는 911보다 강력한 엔진을 얹을 수 없고, 911만의 전유물이 된 동그란 헤드램프도 가질 수 없다. 박스터 중에서도 GTS는 로드스터의 낭만에 트랙용 경주차의 박력을 더했다. 다른 박스터 모델에서 옵션인 PASM(포르쉐 액티브 서스펜션 매니지먼트)과 스포츠 크로노 패키지, 20인치 휠, 스포츠 배기 시스템 등이 모두 기본으로 얹힌다. 박스터의 핵심 매력과 최상의 가치를 추구하는 GTS는 포르쉐를 살 때 반드시 골라야 할 모델이 됐다.

 

 

수평대향 4기통 터보엔진은 강하고 민첩하다. 최고출력 365마력은 0→시속 100킬로미터 가속을 4.1초 만에 끝낸다. 바람이 머리털을 잡아채는 순간 이 정도 가속은 더 바랄 것이 없었다. 박스터의 박력은 슈퍼카에서 느끼는 무서움만 덜어내고 모든 것을 가졌다. 7단 듀얼 클러치는 나의 판단을 앞질러 나간다. 시프트 패들을 쓸 일이 별로 없다. GTS는 다이내믹 부스트, 가변터보 시스템 등 핵심 기능을 모두 갖췄다. 4기통이 되면서 엔진이 작아지고 무게중심이 낮아져 핸들링은 더욱 좋아졌다. 단단한 차체가 스포츠카의 바탕을 이루는데, 경쾌한 덕에 다루기도 쉽다. 토크벡터링과 차동제한장치 덕에 코너도 깔끔하게 돌아간다. 로드스터 본래의 오픈 에어링에 환상적인 주행능력을 얹었다. 소프트톱도 진정한 스포츠카가 지켜야 할 덕목이다.

 

 

나를 감싸는 나지막한 운전석에 앉아 박스터와 한 몸이 되어간다. 박스터는 학창 시절 물리 시간에 배운 운동 법칙을 따를 필요가 없다. 그저 머릿속에 궤도를 그리면 내 말을 따라 차가 달린다. 땅에 들러붙는 접지력에 박스터를 굳게 믿는다. 고속으로 달릴 때 ‘우당당탕’ 들썩이는 혼란 속에서도 내 뜻대로 움직인다는 믿음이다. 강력한 브레이크는 코너에서 한계점까지 가속을 부추긴다. 주행모드를 바꿀 때마다 배기음이 커져간다. 단단한 차체, 깔끔한 스티어링 감각, 우렁찬 파워, 폭발적인 배기음, 스포츠카로 무엇 하나 부족함이 없다. 크루즈 컨트롤 버튼도 없는 차를 육상경기에 비유하니 단거리 선수가 떠올랐다. 박스터는 그저 운전의 재미에 최고의 가치를 둔다. 포르쉐 911이 너무 커서 그랜드투어러 같아 보일 때 박스터의 매력은 더욱 돋보인다. 나지막한 자태와 적당한 크기의 박스터 디자인은 그 절정에 있다고 할 만하다.

 

 

박스터는 오늘날 최고의 로드스터 모델이다. 지붕을 벗길 수 없으면 재밌는 차가 아니다. 넘치는 출력은 나를 제정신이 아니게 한다. 제정신이 아닌 차에서 운전 재미가 폭발한다. 운전대에 달린 주행모드 버튼 중 가운데 버튼을 누르니 폭발하는 부스트 파워에 한동안 숨이 막힌다. 궁극의 로드스터 박스터는 모든 것이 완벽해 더 바랄 것이 없었다.
글_박규철(편집위원)     시승 협조_라라클래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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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EDIT

EDITOR : 서인수PHOTO : 최민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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