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LUMN

에쿠스 벗고 제네시스 입은 G90

G90는 페이스리프트의 좋은 예다. 무엇보다 반가운 건 EQ를 버리고 G로 시작하는 제네시스의 이름을 갖게 됐다는 거다

2018.12.17

 

제네시스가 G90를 발표했다. 비록 완전히 새로운 모델이 아닌, EQ900의 페이스리프트 모델이지만 변화의 폭은 상당했다. 사실 요즘 현대차의 페이스리프트 모델은 새 모델이라고 착각할 만큼 변화의 폭이 컸다. 쏘나타 뉴 라이즈가 그랬고, 아반떼 페이스리프트에서는 더욱 강해졌다. ‘일단 최대한 많이 다르게’가 목표가 아닌가 싶을 정도로 조화나 방향성보다는 완전히 다른 모델처럼 보이려고 애쓴 흔적이 역력하다. 그만큼 시장 환경이 만만치 않다는 뜻이기도 하다.

 

하지만 세월에 처진 얼굴을 아무리 팽팽히 당겨 올려도 완전히 다른 사람으로 태어날 수는 없듯이 자동차의 과도한 페이스리프트도 효과에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지붕과 사이드 패널, 도어가 그대로인데 얼굴과 뒷모습만 과하게 바꾸면 전체적인 조화를 망가뜨리는 경우가 많다.

 

가벼운 피부 시술과 패션 코드로 신선한 분위기를 되살리는 것이 페이스리프트에 가장 적당하지 않은가 하는 게 개인적인 의견이다. 하지만 예외는 있는 법이다. 역시 페이스리프트 모델인 제네시스 G90는 큰 폭의 변화에도 긍정적인 부분이 더 많이 보였기 때문이다. 디자인과 전체적인 제품 완성도가 좋았고, 큰 그림이 바탕에 깔린 전략적 접근이었다는 점에서 설득력이 있었다. ‘일단 많이 바꿔!’와 같은 조급한 강수는 아니었다.

 

 

제네시스 브랜드가 출범한 지 벌써 4년째가 되어간다. 그런데 신흥 프리미엄 브랜드를 추구하는 제네시스에게는 시장 상황이 녹록지 않다. 프리미엄 브랜드들이 입지를 굳히기 위해 필요한 것은 자신만의 아이덴티티와 그것을 숙성시킬 시간(즉 헤리티지), 그리고 무형의 가치를 형상화한 제품 라인업과 프리미엄 브랜드에 어울리는 품질이다. 이것들 없이는 시장에 안착할 수 없고 프리미엄 브랜드에게 필수인 충성도 높은 고객층을 확보할 수 없다.

 

그런데 제네시스 브랜드는 미국의 시장조사에서 확인된 품질을 제외하고는 아직 단단한 것이 없다. 제품은 괜찮고 디자인도 나쁘지 않으나 무엇을 추구하는지가 지금까진 또렷하지 않았다. 따라서 가장 효과적으로 브랜드 철학과 아이덴티티를 전달할 수 있는 디자인을 정리할 필요가 있다. 그래서 등장한 것이 ‘동적인 우아함(Athletic Elegance)’이라는 디자인 DNA다.

 

그런데 제네시스 브랜드에게는 착실히 아이덴티티를 구축하고 헤리티지를 쌓을 시간이 없다. 자동차라는 물건의 정의가 통째로 달라지는 변혁기의 한가운데 있기 때문이다. 이럴 때 중요한 임무를 수행해야 하는 것이 기함의 책임이다. 그래서 페이스리프트 모델인데도 G90가 새로운 브랜드 디자인 DNA를 양산 모델에 처음 적용하는 임무를 맡았다. 오각형 ‘크레스트 그릴’과 곳곳에 적용된 ‘지-매트릭스’ 메시형 디테일, 낮고 차분하지만 고급스러움을 강조하는 수평 구조 등이 기존의 EQ900 실루엣에도 어색하지 않게 잘 녹아들었다.

 

 

EQ900는 기존 유명 브랜드의 파워를 이용하는 전술을 취했다. 천연가죽 시트에 적용된 최고급 소재는 이탈리아 명품 가죽 가공 브랜드 파수비오(PASUBIO)와 협업해 개발했으며, 정교한 스티치는 세계 유수의 프리미엄 시트 브랜드 복스마크(BOXMARK)와 공동 개발한 것이 그 예다. 하지만 G90는 그런 브랜드를 등에 업기보다는 자신만의 ‘파인 튠’ 실력으로 훨씬 아늑한 인테리어를 완성했다.

 

가장 중요한 건 이름이다. EQ900라는 이름은 에쿠스의 후광을 등에 업겠다는 국내 시장 중심의 작명이었다. 그래서 제네시스 브랜드의 기함이면서도 에쿠스의 후속 모델이라는 이중성을 자초했다. 하지만 이번에 G90라는 이름을 갖게 되면서 기함의 지위를 명실상부 굳건하게 하려고 한다.

 

내년에는 브랜드 최초의 SUV인 GV80가 선을 보인다. 미국 시장에서도 딜러 네트워크 재구성이 시작될 것이다. 제네시스가 내년부터 사활을 건 전쟁을 시작하는 것이다. 이상엽 전무는 이런 말을 했다. “제네시스 브랜드가 사라지더라도 세상은 눈 하나 깜빡하지 않을 겁니다.” 이런 각오가 담긴 제네시스 브랜드 DNA의 티저가 G90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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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EDIT

EDITOR : 나윤석PHOTO : 제네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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