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LUMN

WLTP가 자동차 판매를 막았나?

새로운 디젤 배출가스 인증 기준은 더 적극적인 정부의 지원과 소비자 인식 변화가 필요하다

2018.12.21

 

올해도 다사다난했다는 생각이 든다. 자동차 부분만 보더라도 정말 ‘뜨거웠던’ 한 해였다. 기록적인 폭염 속에서 연달아 발생한 BMW 여러 차종의 화재는 많은 사람을 불안에 떨게 했지만 재빠른 리콜과 후속 조치로 차츰 잦아들고 있어서 다행이다. 그럼에도 하반기 전 세계 자동차 시장을 휩쓸었던 이슈 하나는 아직도 진행형이다. 바로 2018년 9월부터 세계적으로 본격 시행에 들어간 새로운 자동차 배출가스 시험법(WLTP: Worldwide harmonized Light vehicles Test Procedure)이다. 과거 유럽에서 쓰였던 평가 방법(NEDC: New European Driving Cycle)을 실제 도로의 주행 상황에 반영하는 것이 어렵기 때문에 만들어진 새로운 배출가스 기준이다.

 

시작은 2007년부터였다. 국제연합 유럽경제위원회(UN ECE) 안의 자동차 국제표준화포럼(WP.29) 주도로 유럽 각국의 주행 데이터를 수집하며 새로운 시험법을 개발하기 시작했다. 2014년 3월에 WP.29는 WLTP를 세계 기술 기준으로 승인했고, 이에 따라 국가별로 법 규정을 조정해 반영하는 형식으로 진행됐다. 2016년 6월에 유럽연합 집행위원회는 실행 계획을 발표했는데, 새 차는 2017년 9월부터 시작하고 기존에 팔던 차는 여기에서 1년이 지난 2018년 9월부터 적용하기로 했다. 이를 어긴 차는 판매할 수 없는 매우 강력한 조치였다.

 

때문에 자동차 회사들은 꽤 힘들게 이를 맞추기 위해 준비를 해왔다. WLTP와 NEDC는 배출가스 양 기준과 실험실에서 주행하면서 배출하는 물질을 측정하는 것은 같다. 하지만 시험주행 시간이 1180초에서 1800초로, 주행거리는 11킬로미터에서 23.3킬로미터로 늘어났다. 평균 속도는 시속 33.6킬로미터에서 46.5킬로미터로 높아졌다. 과거에는 시속 60킬로미터 미만에서의 12회 가속 및 감속, 중속과 고속 주행 구간으로 구성됐던 평가 방법이 60킬로미터 미만의 저속, 80킬로미터 미만의 중속, 100킬로미터 미만의 고속은 물론 거의 단번에 120킬로미터까지 가속한 후 130킬로미터를 넘나드는 초고속 구간까지 추가됐다. 더욱이나 속도를 높이는 것도 가속페달을 빠르고 깊게 밟는 급가속이 많아지면서 배출가스 속의 오염물질이 늘어나는 조건이 됐다. 당연히 과거 기준에 맞춰 만들던 차는 엔진 제어는 물론 배출가스 저감 기술이 모두 바뀔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된 것이다.

 

여기에 자동차 회사들의 딜레마가 컸다. 물론 최신의 배출가스 저감 기술 등을 모두 적용하면 가혹한 테스트 환경에서 기준을 통과할 수 있다. 하지만 요소수를 분사해 질소산화물(NOx)을 줄이는 선택적 환원촉매 시스템(SCR)을 넣으려고 해도 기존의 설계를 꽤 많이 바꿔야 한다. 생각해보라. 적어도 10리터 이상의 요소수 탱크를 차체 어딘가에 넣어야 하는 데다 이를 보충할 주입구도 필요하다. 요소수를 공급할 파이프와 펌프, 분사용 인젝터도 들어가야 한다. 또 사용량을 모니터링해 운전자에게 보충하라고 알려야 한다. 차체가 작은 차는 이런 시스템을 넣을 공간도, 또 올라가는 가격도 큰 문제가 된다. 게다가 당장 눈에 띄는 기능이나 성능이 달라진 부분이 거의 없는데 가격까지 훌쩍 올라버린 차를, 과연 환경을 생각한다는 사명감만으로 쉽게 살 수 있는 사람이 있을까?

 

문제는 유럽과 맺은 FTA에 의해 디젤차의 인증 기준을 공유하는 우리나라도 같은 법규의 적용을 받게 됐다는 점이다. 물론 지난해 9월 이후 판매를 시작한 새 차는 이 기준을 적용했지만 과거에 팔던 차에 대해서는 올해 9월이 아닌 내년 8월까지 팔 수 있도록 유예기간을 뒀다. 전년도 판매량의 30퍼센트 이내라는 규정이 있기는 하지만 결국 이 법을 처음 도입할 때의 취지에서는 살짝 멀어진 셈이다.

 

이 기준이 시행되면서 국내 자동차 시장도 영향을 받았다. 새로운 엔진을 만드는 것은 물론이고 달라진 평가 방법에 따라 많은 차를 다시 인증을 받아야 했다. 많은 수입 디젤차가 SCR을 추가했다. 쌍용도 2019년식 G4 렉스턴에 SCR을 더했다. 르노삼성은 기존에 달려 있던 디젤 배출가스 제어장치를 고쳤는데, 여기에 인력과 시설을 투입하느라 가솔린 엔진을 국내에 도입하는 데 어려움을 겪기도 했다. 디젤차 비율이 높은 수입차 회사들에게 과거 유로6 기준 도입 때처럼 이미 국내에 들어온 차들을 팔아야 했기 때문에 출혈 경쟁을 감수해야 했고 새 차는 인증이 늦어지면서 팔 차가 없는 시기를 보냈다. 소비자도 차를 제때 살 수 없는 데다 실제 차를 팔아서 이익을 내는 여러 딜러사들은 운영에 영향을 받을 정도로 판매량이 크게 줄어들었다. 해외에서도 모두 판매량과 수익성이 나빠진 것처럼, 우리나라 자동차 회사들도 겉으로 보기에는 조용하지만 치열한 전쟁을 치른 셈이다.

 

사실 이 일을 놓고 국내 자동차 제작사와 수입차 회사들에게 ‘왜 미리 준비하지 않았냐’고 책임을 묻는 것은 옳지 않다. 특히 국내가 더 그렇다. 환경부에서는 다양한 경로를 통해 제작사에게 상황을 공유했다고 하지만 2014년 유럽에서 확정된 이후 ‘앞으로 이렇게 할 것이니 알아서 준비하세요’는 아니었는지 묻고 싶다. 물론 각각의 회사가 당연히 지켜야 할 일이었지만, 자동차 판매가 국가 경제에 미치는 영향을 생각한다면 좀 더 꼼꼼하게 챙겼어야 하는 것은 아닐까? 이런 세계적인 규제에 대해 훨씬 더 선제적으로 대응하는 것은 물론이고 각 회사의 준비 수준이나 상황에 대해 더 자주 묻고 대책을 마련했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마지막으로 드는 생각은 소비자들의 인식 변화다. 자동차는 다양한 이유로 환경에 영향을 미친다. 기왕에 차를 산다면 이산화탄소 배출량이 낮고 연비가 좋은 차를 고르는 것이 미래 세대를 위한 배려다. 지금은 차값이 조금 더 올라가더라도, 미래 환경을 보존해 후손에 물려주기 위한 적금으로 생각하는 것은 어떨까. WLTP의 시행은 자동차 회사뿐 아니라 환경에 대한 소비자들의 인식도 바뀌어야 함을 알려주고 있다.
글_이동희(자동차 저널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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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DITOR : 이진우PHOTO : 셔터스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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