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LUMN

기아 레이와의 마지막 주행

5년간 좋은 기억만 남겨준 기아 레이를 떠나보냈다

2019.03.15

기아 레이가 내 곁을 떠났다. 5년 남짓 함께한 시간이 무척 즐거웠던 친구다. 레이를 오래 탄 이유는 그보다 나은 차를 찾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레이가 좋았던 것은 차가 작아서 몰고 다니기 편했다. 좁은 골목길에서 민첩하고, 남들이 포기한 좁은 주차공간에도 차를 세울 수 있었다. 작은 차체로 주차 스트레스가 없는 것이 레이의 최고 장점이었다. 작은 차를 세우면서 옆 차에 넓은 공간을 내줄 수 있어 기분 좋았다. 또 비싼 차가 아니어서 문콕에 신경 쓰지 않았다.

 

일본의 경밴을 베낀 레이는 국내 경차법이 일본의 법보다 너그러운 탓에 훨씬 큰 차가 됐다. 너비에서 12cm는 어마어마한 차이다. 일본의 경밴은 장난감 같아 보이는데, 레이는 제대로 된 차 같았다. 내 눈에는 디자인도 그 어떤 일본차보다 좋았다. 레이가 마음에 들어 아들에게도 똑같은 차를 권했다.

 

실내는 널찍해서 타는 사람마다 넓은 공간에 감탄한다. 식당 의자에 앉듯 높이 앉아 공간효율이 좋고, 높이 앉는 자세는 오랜 여행에 피로가 덜한 것 같았다. 앞뒤로 슬라이딩 되는 뒷자리는 무릎공간이 넓어 어지간한 중형차보다 넉넉했다. 또 시트를 누이고 대형 TV나 커다란 책상을 싣고 달린 적도 있었다. 원박스카의 실용성은 다시 설명할 필요가 없다. 조수석 쪽으로 B 필러가 없어 문을 열면 온 세상을 담을 것 같았다. 그 때문에 차체 강성이 약해져 차가 삐걱거리지 않을까 걱정했지만 그런 일은 없었다.

 

키가 훌쩍 커서 차에 타고 내리는 데 편하다. 승용차처럼 주저앉을 필요 없이, 그냥 옆으로 이동만 하면 되는 것이 좋았다. 나같이 나이가 들면 중요한 포인트이다. 운전석에 앉으면 남다른 대시보드가 개성을 뽐낸다. 높이 달린 시프트 레버가 독특했다. 조립품질도 좋아 만족스럽다. 천장이 높아 가슴이 시원하게 뚫리는데, 커다란 유리창으로 둘러싸여 시야가 탁 트였다.

 

내 체형에는 운전대가 좀 먼 듯했지만 그런대로 맞출 수 있었다. 크루즈컨트롤이 없지만, 경차는 편의장비가 부족한 것도 나름 맛이다. 운전석은 높낮이를 상당히 바꿀 수 있어 기분전환이 되었다. 높이 앉으면 미니밴 같아 멀리 내다볼 수 있고, 낮게 앉으면 무게중심이 낮아진 듯해서 스포츠카 몰듯 한다.

 

 

1.0ℓ 터보 엔진은 부족함을 몰랐다. 급가속을 하면 CVT가 살짝 굼뜨지만 마음만 먹으면 신호 대기 중이던 다른 차를 점으로 만들 만큼 가속이 빨랐다. “어? 레이가 저렇게 빨라?” 하고 사람들이 말할 것 같다. 내 차는 우리 동네 가장 빠른 차였다.

 

최고속도는 시속 170km 정도까지 달렸다. 최고속도 향상을 위해 가끔은 고급휘발유까지 넣어준 결과이다. 고속도로에서 빨리 달리면 사람들이 “아니, 레이가 저렇게 빨라?” 할 것만 같아 콧노래가 절로 나온다. 이런 멍청한 놀이가 즐겁다. 반면에 레이는 무조건 천천히 달리는 것으로 생각해 갑자기 끼어드는 차들로 곤혹스러운 경우도 있었다. 그렇게 과속할 때면 연비는 리터당 10km 정도밖에 안 되지만 충분히 감수할 만했다. 내가 달리는 꼴이 경차 같지 않게 달렸다. 레이가 신형을 내놓으며 터보 엔진을 없앤 것은 정말 아쉬운 일이다.

 

어떤 이는 내가 레이 타는 것에 경의를 표하기도 했다. ‘그 나이에 경차를 타시니 근검절약을 몸소 보여준다’는 뜻인 것 같았다. 나는 단지 이동수단의 효율성만 노렸을 뿐이다. 이 한 몸 옮기는 데 경차면 충분하다. 레이를 타면서 창피한 생각은 전혀 없었고, 발레파킹하면서 무시당한 적도 없었다.

 

나는 큰 차를 집에 세워두고 세컨드카로 타는 경차가 아니라 오직 작은 차 한 대만으로 사는 카라이프를 추구했다. 물론 아내의 차가 있어 그러지는 못했다. 아내는 안전이 걱정된다며 고속도로 주행을 반대하는 일이 잦았다. 아내는 아들이 장가갈 때가 되었는데 레이를 타서 문제 없을까 걱정한다. 나는 경차 타는 며느리가 기다려진다.

 

레이는 작은 차 타는 즐거움을 한껏 남겨주었다. 5년을 탔지만 내 눈에 아직 쇼룸 컨디션이었다. 좋아한 차였기에 새 주인에게 차를 넘기는 데 부담이 없었다. 갑작스러운 결정에 레이를 깨끗이 닦고, 기름을 한가득 넣어 마지막 길을 달렸다. 아름다운 이별이었다. 레이는 좋은 기억으로만 남았다. 나의 작은 차 사랑은 계속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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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EDIT

EDITOR : 박규철PHOTO : 기아자동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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