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LUMN

르노와 FCA, 멀고 먼 합병의 여정과 원점

결국은 깨질 협상이었다. 따져야 할 일이 너무 많아 르노와 FCA의 합병은 불가능에 가까웠다

2019.07.04

 

‘우물쭈물하다가 이렇게 끝날 줄 알았지.’ 극작가인 버나드 쇼의 묘비명으로 알려졌지만 사실은 국내 모 통신사의 광고를 위해 만든, 의도된 오역에 가깝다. 실제는 ‘충분히 오래 버티다 보면 이런 일(죽음)이 일어날 줄 알았지’가 맞다. 갑자기 왜 버나드 쇼 이야기를 꺼냈냐면, 지난 5월 말부터 6월 초까지 세계 자동차 시장을 뒤흔든 뉴스를 듣는 순간 딱 떠올랐던 문구였기 때문이다. 바로 르노 그룹과 FCA의 합병에 대한 이야기다.

 

지난 몇 년 동안 두 그룹 모두 이런저런 구설에 오르내렸다. 그중에서도 다른 회사와의 인수 합병에 대해서는 양쪽 모두 복잡한 셈에 따라 오락가락과 우물쭈물 사이의 어딘가에 머물러 있었다. 크라이슬러, 지프, 닷지, 램은 1998년 다임러와의 합병으로 다임러-크라이슬러가 됐다가 9년 만에 다시 시장에 나왔고 2009년 파산보호 신청을 할 때 피아트로부터 지분 투자를 받아 회사를 살려냈다. 결국 2014년에 최종 합병을 마무리 지으며 지금에 이르고 있다.

 

물론 그 이후에도 여러 회사와의 제휴 및 합병 이야기가 흘러나왔다. 인수할 회사로는 현대자동차 그룹을 비롯해 GM 등이 있었고, 작년 7월 세상을 떠난 세르지오 마르키온네 회장의 입에서는 폭스바겐 그룹도 나왔었다.

 

세계적인 SUV 열풍에 힘입은 지프의 선전과 저유가에서 비롯된 미국 시장의 픽업트럭 인기로 램 브랜드가 잘 팔리고 있다. 하지만 란치아의 몰락과 생각보다 수익이 높지 않은 알파로메오, 마세라티의 SUV 등 기존의 자동차 판매가 시원치 않은 것과 함께 앞으로 10년 안에 오게 될 전기차와 자율주행 기술 등에서 가장 뒤떨어진 회사다 보니 어느 때보다 외부의 도움이 절실하다.

 

르노는 어떨까? 1990년대는 자동차 시장에 ‘규모의 경제를 이뤄야만 살아남을 수 있다’는 명제가 절대적이었고 덩치를 키우지 못한 회사들은 위기감을 느끼던 시기였다. 때문에 1993년 볼보와의 합병에 실패한 르노는 역시 다임러 크라이슬러와의 제휴에서 고배를 마신 닛산의 합병 제안을 덥석 물었다. 버블경제 붕괴 후 자금난에 허덕이던 닛산을 집어삼킨 것이다. 심지어 2016년 닛산이 미쓰비시의 지분을 인수하면서 르노-닛산-미쓰비시 얼라이언스가 탄생했고, 2017년 세계 자동차 판매 1위에 올랐다. 자동차업계에선 역대 가장 성공적인 이벤트라는 평가를 받기도 했다.

 

하지만 르노 그룹은 지배구조가 복잡해졌다. 닛산이 미쓰비시의 34% 지분을 갖고 경영권을 행사하고, 르노가 닛산 지분 중 43%를 가지고 지배하는 구조다. 반면 지주회사의 외국 지분율을 15%로 제한하는 프랑스 상법 때문에 닛산은 르노 지분을 딱 그만큼만 가지고 있다. 표면적으로 얼라이언스, 즉 동등한 위치에 있는 동맹 관계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르노가 닛산의 의사 결정을 지배하고, 닛산은 르노의 정책에 의결권을 행사할 수 없는 불평등한 상태다.

 

결국 르노-닛산-미쓰비시 얼라이언스의 핵심은 르노 그룹이라는 말이 되는데, 여기에도 함정이 있다. 르노 그룹의 주주 중에는 프랑스 정부가 있고 역시나 지분 15%를 가지고 있다. 다른 프랑스 자동차 그룹인 PSA도 정부 지분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르노-닛산 얼라이언스는 큰 덩치를 내세워 정부의 입김을 무시한다는 것이 그간의 소문이었다. 2016년 카를로스 곤 르노-닛산-미쓰비시의 회장이 너무 많은 연봉을 받는다며 주주총회에서 54%의 주주들이 연봉 지급을 반대하는 일이 벌어졌다. 이때 프랑스 정부도 반대표를 던졌고 당시 경제산업부 장관이 현재 프랑스 대통령인 에마뉘엘 마크롱이었다.

 

세계에서 두 번째로 큰 시장인 북미 시장에서 차를 팔지 않는 것도 르노 그룹에겐 아픈 곳이다. 제품을 개발하는 것은 둘째 치더라도 차를 팔아줄 네트워크를 만들기도 매우 어렵고 힘든 일이다. 또 여기에 필수인 SUV와 픽업 등이 없는 르노 입장에서는 아예 제품군을 새로 짜야 하는, 엄청난 도전과 숙제가 필요한 상황이었다.

 

이런 와중에 던져진 FCA의 합병 제안은 르노에게 꽤 솔깃했을 것이다. 그래서 5월 26일 동등 지분의 합병 제안을 받았다고 빠르게 인정한 것은 물론 27일에는 타당성 검토에 들어가겠다고 공식적인 발표까지 나왔다. 상호 간에 검토가 진행되는 것으로 알려졌는데, 돌연 6월 6일 양쪽에서 협상 결렬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다. FCA의 공식 보도자료에는 ‘프랑스의 정치적 상황’이 합병을 성공적으로 진행할 합의점을 찾기가 어렵다는 것이었다.

 

사실 정확히 어떤 상황 혹은 조건인지는 알려지지 않았다. 다만 한 가지 유추할 수 있는 것은 르노와 FCA의 합병 논의 이전, 현재 프랑스에는 다른 합병이 진행되고 있었다는 점이다. 바로 2017년 GM으로부터 오펠을 인수한 PSA다. 인수 당시에도 오펠에 대한 강력한 구조조정을 우려하는 사람들이 있었는데, 2019년 현재 기준으로 양쪽의 연구개발 부문을 통합해 법인을 분리하는 것은 물론 독일 내 판매 조직도 PSA와 오펠을 하나로 회사에서 컨트롤하는 것으로 바뀌고 있다. 결국 오펠은 구조조정이 불가피하다. 이는 르노와 FCA의 결합에서도 똑같이 발생할 수 있는 일이다. 이탈리아와 프랑스에 있는 생산시설을 합치는 것으로 비용은 크게 줄일 수 있지만 일자리 감소는 불가피하다. 프랑스와 이탈리아 정부 입장에선 굉장히 부담스러운 일이다.

 

또 다른 하나는 르노와 FCA가 통합한 이후의 제품군 구성의 문제다. FCA는 같은 차에 엠블럼만 바꿔 다는 건 실패할 수밖에 없다는 것을 란치아를 통해서 뼈저리게 느꼈다. 때문에 르노 제품군을 가져와 피아트와 란치아를 되살리려면, 기본 플랫폼부터 다시 만들어야 한다. 시간도 오래 걸리고 돈도 많이 든다. 마찬가지로 르노의 차를 미국에 팔려고 해도 마땅한 차가 없다. 르노엔 미국인들이 좋아하는 큰 차가 없다.

 

결국 버나드 쇼의 묘비명은 이 두 회사의 합병에 딱 어울리는 타이틀이다. 시간이 지나 오래 버티다 보면 뭐가 될 거라 생각했지만 결국 둘 다 미래 기술과 전략 시장에 대한 준비가 부족해 벌어진 일이다. 더욱이 1과 1을 더해 2가 돼야 본전인데 아무리 긍정적으로 보려고 해도 2가 안 된다면 합칠 이유가 없다. 미국-이탈리아 조합도 만만치 않은데 프랑스-일본까지 합쳐지면 공통점을 찾는 것은 더욱 어려워질 것이고, 더욱이나 각국 정부가 개입해 일자리와 경제 문제까지 들어오면 합병 가능성은 0에 가까워진다. 불가능하지는 않지만 가능하지도 않은 상태가 된 것이다. 르노는 닛산과의 합병을, FCA는 유럽에서 경쟁력 있는 상품군을 구성한 후에 만나도 늦지 않다. 애당초 시작부터 깨질 합병이었다.글_이동희(자동차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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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DITOR : 이진우PHOTO : 셔터스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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