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ICHCAR

돌아보지마, 볼보 크로스컨트리(V60)

그런데 아까 나를 쳐다보던 건 누구였을까?

2019.08.14

 

병원 침대에 누워 한동안 천장을 응시했다. 형광등이 빠르게 아래로 지나갔다. 침대를 끌던 간호사는 가벼운 수술이라 금방 끝날 거라고 나를 안심시켰다. 사람들의 소리가 멀어져 가고 소름 끼치게 차가운 공기가 점점 가까워졌다. 수술실 한가운데 누워 주위를 둘러봤지만 의사와 간호사들은 내가 마치 없는 사람인 것처럼 각자의 일에 분주했다. 산소호흡기를 코에 달고 등 아랫부분으로 따끔한 주삿바늘이 들어왔다. 흐려지는 의식을 붙잡으려 발버둥을 치고 있는데 움직일 수가 없었다. 그때는 몰랐다. 그게 가위눌린 현상과 비슷한 것이라는 걸. 잠깐이지만 극도의 공포감이 밀려왔다. 내 마음대로 몸을 움직일 수 없고, 고함을 질렀지만 그건 소리 없는 아우성이었다. 그렇게 의식을 묻는 간호사의 목소리가 산 너머 메아리처럼 점점 사라져갔다.

 

20년이 넘는 일이지만 아직도 생생하다. 트라우마가 이런 것일까? 지우려야 지울 수 없다. 나에게 병원은 그리 좋은 기억이 아니다. 사람들의 병을 고쳐주는 자애로운 공간이지만 나에겐 두려움과 공포의 대상이었다. 밝은 면보다는 장례식, 시체, 죽음 등 어두운 부분이 눈에 밟혔다. 그래서 병원을 멀리했다. 출퇴근길에 마주치는 대학병원이 보기 싫어 이따금 돌아가기도 한다. 피할 수 있으면 피하는 게 상책이다. 하지만 이번만은 피하지 못했다. 폐탄광은 너무 멀었고, 폐교는 이미 지원자가 있었다. 남은 건 폐병원뿐이었다.

 

 

폐병원으로 함께 갈 파트너는 볼보 V60이다. 누군가 폐병원에 운구차를 타고 간다며 내 멘탈을 마구 흔들었다. 하지만 내가 V60을 선택한 이유와 다르다. V60의 풀네임은 크로스 컨트리 V60이다. 이름에서 유추할 수 있듯 매끈한 도로를 달리다가도 언제든 거침없이 오프로드로 뛰어들 수 있다. 어디로든 도망칠 수 있다는 얘기다. 폐병원의 위치만 확인했지 도로 상태를 알 수 없었기 때문에 꼭 올라운드 플레이어여야 했다. V60이 나를 귀신에게서 멀리멀리 벗어나게 해줄 거라는 굳은 믿음이 생긴다. 그래도 혹시나 하는 마음에 ‘성수를 뿌리면 귀신이 붙지 않는다’는 후배의 조언대로 차에 성수를 뿌렸다. 그런데 하필이면 비가 내렸다. 낮까진 오지 않을 것같이 날이 맑더니 밤이 되자 한두 방울 떨어지기 시작했다. 수고스럽게 뿌린 성수가 빗물에 쓸려 내려갔다. 날씨까지 야속한 밤이었다.

 

폐병원은 폭격을 맞아 반쯤은 무너져 내린 채 방치된 모습이다. 한쪽 외벽이 없어 2, 3층 안이 훤히 보일 정도다. 건물 앞엔 깨진 유리와 건축 폐기물이 쌓여 있다. 병원 주차장으로 쓰였던 것 같은 공터 앞에는 바리케이드가 설치돼 있고 그 위에는 넘어가지 못하게 철조망을 둘렀다. 하지만 제 역할을 하는 것 같지 않다. 철조망 사이가 벌어져 개구멍이 있고, 그 구멍을 통해 동네 불량 청소년들이 오간 것 같다. 공터 한쪽 구석에서 무엇을 했는지 주위엔 소주병과 담배꽁초, 찢어진 옷가지가 즐비하다. 불까지 피웠는지 그을린 자국도 있다. ‘귀신보다 사람이 더 무섭다’는 어른들의 말이 조금은 이해된다. 건물 앞으로 가니 기분 나쁜 간판이 눈에 들어온다. ‘장례식장(지하)’. 병원뿐 아니라 장례식장도 함께 운영했나 보다. 뜻하지 않은 상황에 간담이 서늘해졌다.

 

 

병원 안은 아주 어둡다. 달빛조차 들어오지 않아 스산한 어둠으로 가득 찼다. 스마트폰 조명으로 복도를 비추니 의자나 소독약병, 휠체어 등이 널브러져 있다. 약물의 유통기한이나 달력 등을 봐선 2014년에 멈췄다. 지하 장례식장엔 물이 차 있어 건물 전체에 곰팡내가 진동한다. 의료용 알코올 냄새와 함께 섞이니 헛구역질이 나올 만큼 비릿하다. 머무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음침한 기운이 짙어지는 기분이다. 한 걸음, 한 걸음 옮길 때마다 오금이 저리는 정도도 심해진다. 철조망 뒤로 보이는 방 안의 칠흑 같은 어둠이 나를 기다렸다. 알 수 없는 소리까지 들리는 듯하다. 무서운 마음에 애써 등을 돌려 가려는데 누군가 나를 쳐다보는 기분이 든다. 누가 있을 리 없다. ‘이게 바로 귀신인가?’ 불빛을 비춰봤지만 윤곽이 흐릿해 이게 귀신인지, 착각이 만들어낸 환영인지 알 수 없다. 심장 뛰는 소리가 귀에까지 들린다. 도망치고 싶었지만 나를 삼켜버릴 듯한 어둠에 겁이 나 몸을 제대로 움직일 수가 없었다. 설상가상으로 다리까지 풀려버렸다. 머릿속으로는 무섭지 않다고 세뇌해 봤지만 몸은 적잖이 두려움에 떨었나 보다.

 

V60으로 향하는 길에 뒤를 돌아보지 못했다. 보이지 않는 누군가가 있을 거라는 막연한 상상이 육체를 지배한 탓이다. 함께 간 포토그래퍼를 재촉해 차에 몸을 싣고 빠르게 그곳을 빠져나왔다. 갑자기 울리는 스마트폰 진동과 '지지직'거리는 라디오 주파수 소리에도 심장이 마구 뛰었다. 그런데 아까 나를 쳐다보던 건 누구였을까? 불량 청소년? 귀신? 아무래도 상관없다. 다시 그곳에 갈 일은 없으니까.글_김선관

 

 

 

 

모터트렌드, 자동차, 드라이브, 볼보, V60,

페이스북 트위터 링크
CREDIT

EDITOR : 김선관PHOTO : 박남규

모터 트렌드 ©motortrendkorea.com, ©motortrendkorea.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