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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아무 일도 없었다, 기아 니로 EV

그날부터 몸에 기운이 없고 자꾸만 식은땀이 난다. 강아지들이 날 피한다. 어디선가 날 보는 시선도 느껴진다. 맞다. 폐교 안에 서 있던 니로 EV의 실내등이 잠시 켜졌다 꺼진 적이 있었다. 그때였을까?

2019.08.15

 

폐(廢)라는 글자를 좋아하지 않는다. 의미 때문이다. 못 쓰게 되다, 버리다, 부서지다, 떨어지다, 무너지다, 쇠퇴하다 등이 이 단어에 담긴 뜻이다. 더 이상 부활의 여지조차 없는 것 같아 잔인하다. 폐라는 단어는 폐기되면 좋겠다는 생각마저 든다. 그런데 나는 지금 폐교로 향한다. 못 쓰게 된 학교, 버려진 학교에 간다. 학교는 태어나 16년이나 다녔다. 익숙할 대로 익숙한 곳이다. 하지만 폐교는 다르다. 익숙한 곳에서 느껴지는 낯선 기운이 분명 날 두렵고 오싹하게 만들 거다. 그 공포에 이끌려, 그 무서움에 끌려 오히려 나는 지금 폐교로 향한다.

 

폐교로 날 끌고 갈 차는 기아 니로 EV다. 니로 전기차는 1회 충전으로 385km나 달릴 수 있다. 폐교에서 행여 귀신이라도 만나면 집까지 한 번에 도망칠 수 있는 주행가능거리다. 이 점은 굉장히 중요하다. 고속도로 휴게소라도 새벽에는 인적이 드물고, 전기차 충전시설은 대부분 구석에 있다. 심지어 휴게소 주변은 대체로 인가가 드문 풀숲이거나 외딴곳이다. 귀신을 마주하기 딱 좋은 장소다.

 

니로 EV는 힘도 충분해 안심된다. 최고출력은 204마력, 최대토크는 40.3kg·m 다. 아무리 1단짜리 변속기와 맞물린다고 해도 전기모터는 내연기관과는 달리 10000rpm을 넘나드는 회전수를 사용한다. 최고속도 역시 동급 내연기관에는 미치지 못하더라도 시속 170km 언저리까지는 올라갈 것이다. 그 말인즉, 빠르게 귀가해 놀란 가슴을 진정시키기에 손색없는 성능이란 얘기다. 그런데 무엇보다 중요한 건 소리가 나지 않는 전기차라는 점이다. 두렵지만 난 귀신을 보고 싶다. 살그머니 다가가 그 흐릿한 형체를 두 눈으로 확인하고 싶다. 몰래 귀신에게 다가가려면 반드시 전기차가 필요하다.

 

 

물론 귀신을 보고 싶은 것이지, 귀신에 씌고 싶은 건 아니다. 그래서 십자가를 챙겼다. 귀신이 혐오하는 핵무기급 아이템이다. 마늘도 좀 챙겼다. 혹시 몰라 익히지 않은 마늘을 아린 혀를 참아가며 우걱우걱 씹어 먹었다. 얼마나 먹었는지 냄새가 입에만 머물지 않고 차 안을 가득 채웠다. 이 정도면 귀신은커녕 어지간한 마늘 마니아도 버티기 어렵겠다.

 

완전 무장한 니로 전기차로 고요하게 달려 찾아간 곳은 경기도 모처에 있는 폐교였다. 이곳은 위치부터 예사롭지 않다. 넓지 않은 길로 이어진 마을의 한가운데 있다. 다만 가옥은 드문드문 들어선 동네다. 하긴, 집들이 빼곡했다면 이렇게 폐교로 방치되진 않았을 거다. 아울러 이 마을 거의 모든 건물이 낮은 평지에 지어졌는데, 이 학교만 유독 살짝 높은 지대에 있다. 특유의 위엄이 느껴진다.

 

교실과 교무실 등으로 쓰였을 자그마한 2층짜리 건물은 일반적인 학교의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다. 교실로 햇살을 한 아름 비췄을 창문이 운동장 쪽 벽면을 가득 메웠고, 그 앞에는 그리 높지 않은 단상과 세종대왕 동상이 나란히 자리했다. 밑으로는 아이들이 앉아 쉬었을 네 단쯤 되는 계단이 있다. 운동장 주변에는 담벼락 대신 나무들이 줄지어 섰다. 한쪽 귀퉁이에 있는 나무는 꽤 높다. 낮에 봐도 장엄하다.

 

 

이 평범해 보이는 작은 학교의 모습은 밤만 되면 공포와 두려움의 무대로 변한다. 인적이 드문 마을 한가운데 있어 학교 안으로는 어떠한 빛도 닿지 않는다. 멀지 않은 곳에 가로등이 몇 개 서 있지만 높다란 나무에 가려 학교 안은 완벽한 암전을 이룬다. 눈을 감고 있으면 나지막이 풍금 반주와 아이들의 노랫소리가 들리는 것 같다. 들리는 곳이 아주 먼 듯해 잠시 마음을 놓고 눈을 뜨면 공포감이 엄습한다. 교실에서 노래하던 키 작은 아이가 순식간에 눈앞으로 나타나 빤히 날 바라볼 것 같다. 세종대왕님도 어둠 속에서 몰래 고개를 돌려 보는 듯하다. 갑자기 학교 문이 열리며 초점 잃은 눈빛의 아이들이 줄줄이 걸어 나오진 않을까 하는 기분도 든다. 물론 기분만 그랬다. 쪼그라든 심장이 온몸을 뒤흔들듯 쿵쾅거려 뇌가 다 흔들릴 지경이었지만, 그러한 광경이 실제 눈앞에 펼쳐지진 않았다.

 

그런데 그날부터 몸에 기운이 없고 자꾸만 식은땀이 난다. 강아지들이 날 피한다. 어디선가 나를 보는 시선도 느껴진다. 맞다. 폐교 안에 서 있던 니로의 실내등이 잠시 켜졌다 꺼진 적이 있었다. 그때였을까?글_고정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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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EDIT

EDITOR : 김선관PHOTO : 박남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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