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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여름 밤의 한기, DS DS7 크로스백

혼자 집으로 가던 중 갑자기 DS7의 디스플레이가 하얀 화면으로 바뀌며 먹통이 됐다. 심장이 요동치기 시작했다. 순간 나도 모르게 룸미러로 뒷좌석을 흘겨봤다

2019.08.16

 

처음이었다. 맛있는 맥주를 소개하기 위해 당일치기로 부산에 다녀와야 할 때나 억수같이 내리는 비를 뚫고 영암까지 내려갔을 때도 ‘가고 싶지 않다’고 생각한 적은 한 번도 없었다. 이번엔 달랐다. 가고 싶지 않았다. 아무리 내가 귀신 잡는 해병대 출신이라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현역 때 이야기다. 무서웠다. 김선관 선배가 편집장에게 “귀신 잡으러 떠나는 기사다”라고 말할 때조차 제발 나는 아니길 빌었다. 헛된 희망이었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고속도로를 달리고 있었다. DS7의 운전대를 손에 쥔 채 말이다.

 

목적지는 폐탄광이었다. 다른 에디터들은 폐교와 폐병원으로 간다고 했다. 문득 궁금했다. 어째서 무섭다고 느껴지는 장소는 전부 ‘폐’로 시작하는 걸까? 무엇이든 알려주지만 곧이곧대로 믿기엔 조금 못 미더운 ‘구 선생’과 ‘네 선생’에 따르면 귀신은 음기 덩어리이기 때문에 태생적으로 양기를 꺼린다. 양기가 가득하다고 알려진 복숭아나무나 빛, 소금, 팥이 귀신을 물리친다고 알려진 것과 같은 이치다. 또한 양기는 사람에게서도 나오기 때문에 사람이 많고 분주한 곳 역시 귀신이 꺼린다고 전해진다. 반대로 사람의 손길이 닿지 않은 오래된 물건이나 장소는 양기보다 음기가 강해 상대적으로 귀신이 머물 가능성이 높다.

 

 

폐탄광에 도착할 무렵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해가 넘어가면서 기온도 빠르게 떨어졌다. 해발고도 700m가 넘는 산중이라 7월인데도 한기가 돌 정도였다. “날 제대로 잡았는데요? 벌써 분위기가 축축 처지는 게 예사롭지 않아요.” 옆자리에 앉은 어시스턴트 에디터 김균섭이 너스레를 떨었지만 포토그래퍼와 난 웃지 못했다. 쉽지 않은 밤이 될 거란 불안한 예감이 들었다. 그리고 공포 영화를 보면 십중팔구 비가 오는 날 밤 사건이 터지던데…. 그날이 딱 그랬다. 촬영이고 뭐고 차를 돌려 집에 가고 싶은 마음을 억눌러야 했다. “엄마 보고 싶다.” 툭 내뱉은 말에 차 안에 있던 모두가 웃음을 터뜨렸다. 모두 같은 마음이었나 보다.

 

“한 바퀴 둘러보고 올게요. 비 오니까 차 안에 계세요.” 어디서 본 건 있어서 호기롭게 말하긴 했지만 이내 후회했다(빈말이라도 같이 가겠다고 한 사람은 한 명도 없었다). 하지만 한번 내뱉은 말을 주워 담을 수는 없었다. 차를 뒤로하고 비옷을 여미며 휴대폰 플래시에 의지해 폐탄광 주변을 둘러보기 시작했다. 보통은 로드뷰로 촬영할 장소를 미리 확인하지만 이곳은 로드뷰에 등장하지 않는 그런 곳이었다.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근처 공장에서 들려오는 기계 소리와 추적추적 내리는 빗소리, 걸을 때마다 비옷에서 나는 바스락거리는 소리뿐이었다. 흔한 풀벌레 소리마저 들리지 않았다. 이따금 비바람에 날려 무언가 서로 부딪히는 소리가 들려올 땐 나도 모르게 몸이 움찔거렸다. 풀이 무성하게 자라 길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곳을 걷다 보니 신발이 금세 물에 젖어 축축했다. 차가 들어갈 수 있을 만한 장소를 찾을 때마다 스마트폰으로 사진을 찍어 기록했는데 영화 <곡성>의 한 장면이 오버랩 되는 것 같아 등골이 서늘해졌다. 10시간 같은 10분의 답사를 끝내고 차에 돌아왔을 땐 뒷목이 뻣뻣하고 머리가 지끈거렸다. 바짝 긴장한 탓이었다.

 

촬영은 일사천리로 진행됐다. 어떻게 찍어도 스산한 분위기가 물씬 풍기는 배경 덕이었다. 지하 600m까지 이어진다는 갱도 앞에 차를 세워야 했을 땐 차라리 두 눈을 감고 싶었다. 깊이를 알 수 없는 어둠이 주는 공포가 무시무시했다. 혹시나 해 DS7이 자랑하는 나이트비전을 촬영 내내 켜놓았는데 다행히 김균섭과 포토그래퍼를 제외하고 다른 무언가가 디스플레이에 잡힌 적은 없었다. 만약 나이트비전이 우리 일행이 아닌 다른 것을 포착해 경보음을 울렸다면 그 후 어떤 일이 벌어졌을지 상상만 해도 끔찍하다.

 

 

서울에 돌아오니 자정이었다. 도시의 불빛이 그렇게 반가울 줄 몰랐다. 몸도 마음도 피곤했지만 돌아왔다는 사실에 안도했다. 그런데 두 사람을 먼저 내려주고 혼자 집으로 가던 중 갑자기 DS7의 디스플레이가 하얀 화면으로 바뀌며 먹통이 됐다. 심장이 요동치기 시작했다. 순간 나도 모르게 룸미러로 뒷좌석을 흘겨봤다. 아무것도 없었다. 이성을 가다듬어 차를 갓길에 세우고 시동을 껐다 켜보았지만 하얀 화면은 그대로였다. 온갖 잡념이 머리를 스쳤다. ‘무서워하는 티를 내면 귀신이 더욱 달라붙는다’는 말이 생각나 하얗게 변한 디스플레이를 휴대폰으로 찍으며(직업병이다) “이게 왜 이러지? 고장인가?”라며 태연한 척 혼잣말했다. 차를 버리고 택시를 타야 하나 잠시 고민하던 찰나, 언제 그랬냐는 듯 디스플레이 화면이 원래대로 바뀌었다.글_박호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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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EDIT

EDITOR : 김선관PHOTO : 박남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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