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ICHCAR

가장 편안한 슈퍼 스포츠, 재규어 F타입 SVR

다루지 못할 1000마력보다는 손안에서 마음껏 가지고 놀 수 있는 300마력이 훨씬 유용한 것은 진리다

2019.08.26

 

같이 모인 차들의 이름을 듣는 순간, F 타입에는 불리한 게임이라는 생각이 딱 들었다. 독일 뉘르부르크링 양산차 최고속 기록을 갖고 있는 람보르기니 우라칸 퍼포만테, 같은 영국에서 왔지만 725마력을 내는 V12 엔진을 얹은 애스턴마틴 DBS 슈퍼레제라와 구석구석 카본 파이버를 사용해 ‘나 본격적이에요’를 이야기하는 BMW M4 CS 사이에서, F 타입의 V8 5.0ℓ 575마력 엔진과 1875kg의 가장 무거운 차체가 내세울 것이 무엇일까 싶었다. 혼자서 서 있을 때는 우아하고 아름다운 라인으로 가득한, 이제는 뒤로 물러난 이안 칼럼의 손길이 닿은 디자인도 이들과 함께 있으면 평범하다고 느껴질 정도였으니까.

 

 

F 타입이 세상에 나온 것은 2013년이었다. 때문에 2014년에 나온 BMW M4보다도 오래된 차인 것은 분명하다. 물론 로드스터부터 시작해 쿠페가 나오고, 뒷바퀴굴림에서 네바퀴굴림 시스템이 더해지고, 4기통 엔진과 LED 헤드램프가 달리며 눈매가 바뀌는 등 꾸준하게 업그레이드가 이루어졌다. 특히 센터페시아의 10인치 터치스크린과 최신의 인컨트롤 터치 프로 인포테인먼트 시스템 덕에 젊음을 유지하고 있다. 어깨 부분을 잘 받쳐주면서도 통풍 기능까지 꼼꼼하게 챙기면서 마그네슘 프레임으로 만들어 8kg 무게를 줄인 퀼트 퍼포먼스 시트, 컬러가 다른 대시보드 등 영국 럭셔리카의 모습도 갖고 있다.

 

 

그런데도 스마트폰 무선 충전 패드가 없는 것, 조금 높은 음료수를 넣으면 걸리적거리는 컵홀더, 카드 지갑이나 넣을 정도로 좁은 도어 패널 수납공간 등은 아쉽다. 특히 바닥이 높아 공간이 부족한 데다 스페어타이어와 공구가 그대로 드러나 있는 트렁크는 명품 가방은 언감생심 비닐봉지를 넣기도 민망하다. 바닥을 덮는 커버라도 하나 있었으면, 아니 펑크 수리 키트로 대체하고 조금이라도 트렁크를 더 넓게 쓸 수 있도록 했으면 어떨까 싶다.

 

 

그런데 아쉬운 마음은 거기까지, 차에 올라 시동을 거는 순간 왜 재규어인지 알게 된다. 세상을 흔드는 포효는 딱 맹수 느낌이다. 더욱이 SVR 모델에 기본으로 달리는 액티브 스포츠 배기 시스템을 켜면 아이들링부터 달라진다. 얌전한 집고양이에서 화가 잔뜩 난 빅 캣의 으르렁거림이 시작된다. 개인적으로는 V6 S 모델의 금관악기 같은, 그것도 톤이 높아 시원스럽게 뻗는 트럼펫 소리 같은 배기음을 더 좋아하지만 기왕에 고성능을 즐길 생각이라면 대배기량의 묵직함과 세상 과격함을 모두 가진 V8 5.0ℓ의 사운드가 최고다.

 

이번에 모인 4대 중 유일하게 하늘을 볼 수 있는 천장을 가졌다.

 

차가 움직이기 시작하면 F 타입의 양면성이 드러난다. 액티브 스포츠 배기 시스템을 작동해 소음기를 통과하게 만들고, 주행모드 조절 레버를 위로 밀어 비/얼음/눈 모드를 선택하면 꽤 부드럽다. 다른 브랜드의 스포츠 세단 정도 소음과 서스펜션으로 거친 국도에서도 나긋한 승차감을 느낄 수 있다. 반면 주행 모드 레버를 아래로 내려 다이내믹 모드로 설정하면, 빨갛게 바뀌는 계기반부터 기본 댐퍼 세팅을 딱딱하게 바꾸고 가속페달의 반응도 민감하게 바뀐다. 대배기량 슈퍼차저 엔진의 특성상 가속이 매우 자연스럽고 직선적이어서 예측이 쉽다는 것도 운전의 맛을 높인다.

 

 

가장 신기한 건 갑자기 만난 575마력이지만 그리 무섭거나 어렵지 않게 다룰 수 있다는 점이다. F 타입 SVR은 이번에 모인 차 중에서 다이내믹 모드에서도 서스펜션이 가장 부드럽고(?) 좌우로 방향을 바꿀 때 기울어짐도 크다. 그렇다고 타이어가 접지력을 잃고 불안정해지는 일은 거의 없다. 도리어 이렇게 흔들리는데 잘 달릴 수 있으려나 걱정하는 운전자의 선입견이 차를 몰아붙이지 못하는 이유다. 랜드로버의 동력 배분 노하우가 잔뜩 들어간 AWD와 F 타입 모든 모델에 기본인 토크 벡터링, 게다가 리어 디퍼렌셜을 잠가 어떤 상황에서도 노면에 엔진 힘을 전달하는 액티브 디퍼렌셜 등의 도움이 막강하다. 다른 차들과 비교해 상대적으로 평범한 피렐리 P제로 타이어를 끼웠음에도 꽤 빠르게 달릴 수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F 타입 SVR의 무게와 엔진 출력만을 본다면 다른 차들과 비교해 별거 아니라고 생각할지 모른다. 심지어 실제로 타보면 꽤 편하게 달리는 것도 가능하기에 더 그런 생각이 커질 수 있다. 그런데도 다루지 못할 1000마력보다는 손안에서 마음껏 가지고 놀 수 있는 300마력이 훨씬 유용한 것은 진리다. 사실 F 타입에는 같은 V8 5.0ℓ 슈퍼차저 엔진으로 550마력을 내는 R 모델이 있는데, SVR은 3000rpm 이후 늘어난 토크로 좀 더 고회전까지 힘을 유지하는 차이가 있다. 결국 최고속도 322km/h라든가 0→시속 100km 가속에 3.7초밖에 걸리지 않는 등 슈퍼카급의 성능은 SVR만 누릴 수 있다. SVR이면 충분하다.글_이동희(자동차 칼럼니스트) 

 

 

 

 

모터트렌드, 자동차, 재규어, F타입 SVR

페이스북 트위터 링크
CREDIT

EDITOR : 안정환PHOTO : 최민석

모터 트렌드 ©motortrendkorea.com, ©motortrendkorea.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