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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대 따윈 필요 없는 랠리, 겜블러 500

500달러짜리 자동차로 아이슬란드에서 오프로드를 달리는 것은 가장 멋진 도박 중 하나다

2019.12.03

 

기분이 썩 좋지 않았다. 함께한 포토그래퍼가 나에게 수많은 질문을 퍼부었는데, 명쾌한 대답을 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우리는 아이슬란드로 떠나야 하고, 한밤중에 떠 있는 태양 아래에서 미니 바이크와 500달러짜리 차를 몰고 황량한 산악지대를 달려야 한다는 사실을 말했지만, 그는 납득하지 못했다. 내가 할 수 있는 말은 “그것이 갬블러 500이 진행되는 방식이니 걱정하지 말라”는 것뿐이었다.

 

자동차 괴짜들을 위한 이 랠리의 표어는 ‘언제나 도박하라’다. 피할 수 없는 일들이 일어날 때, 자신에게 “언제나 도박하라”라고 이야기하면 정신을 차릴 수 있다.

 

갬블러 500은 험로와 어울리지 않는 500달러짜리 차를 타고 오프로드 주행을 결심한 친구들 사이에 오간 이메일에서 시작됐다. 승자와 패자는 없다. 오로지 두 가지의 규칙만 있을 뿐이다. 머무른 자리는 깨끗하게 치우고, 얼간이처럼 굴지 말라는 것이다. 그들이 주말에 오리건주 포틀랜드 외곽에 있는 웽커스 코너 설룬에서 만났을 때, 누군가 경유지를 표시한 종이를 건넸다. 그들은 자신들이 운전할 차로 토요타 MR2부터 캐딜락 플리트우드에 이르는 모든 차를 찾아보기 시작했다. “사람들은 존경심이나 부러움을 살 만한 차를 사려고 하지만, 정작 토요타 코롤라를 탈 때 익숙함과 내구성이 주는 만족감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테이트 모건의 말이다.

 

 

모건은 갬블러 500의 얼굴이다. 그의 무지갯빛 미러 선글라스와 모피 롱 코트는 독특한 인상을 줬지만 은근 멋있었다. 그는 모든 사람에게 친근하고 사려 깊게 대했지만, 모든 사람이 그를 좋아하지는 않았다. 아마도 모피 반대를 외치는 동물 애호가들은 그를 아주 혐오할 것이다. 하지만 그는 자신을 미워할 사람들을 갬블러 500의 가짜 후원자로 설정했다. SNS를 통해 많은 사람이 불쾌한 반응을 보이자 그는 오히려 그들을 우스꽝스럽게 불러댔다. 그가 갬블러 500을 만들지는 않았지만 지금까지 행사를 꾸준히 이어올 수 있었던 데에는 모건의 역할이 컸다. 4년 전, 그는 고환암에 걸려 불알 하나를 잃었다. 그래서 직장생활을 그만두고 갬블러를 전파하는 데 헌신했다. 그는 “갬블러에는 목표가 없다”고 이야기한다. “기대나 목표 같은 것을 정하면 그 목표에 이르기 위해 단계를 밟아야 합니다. 기대나 목표가 없다면 자유로운 방식으로 그것에 도달할 수 있고,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게 되죠.”

 

 

우리가 아이슬란드를 방문하기 일주일 전, 갬블러 500은 오리건주에서 연중 가장 큰 행사이자 올해로 4주년을 맞은 ‘OG’ 축제를 열었다. 그곳에는 트럭 프레임에 얹은 보트를 포함해 2800대가 넘는 차를 타고 4500명이 넘는 사람이 모였다. 내가 처음 경험한 갬블러 행사는 지난해 처음 열린 100마일 미니 모토 엔듀로였다. 나는 어딘가 다친 채로 행사를 마칠 것이라 예상했지만, 6.5마력짜리 미니 바이크가 얼마나 재미있을지, 험한 지형을 얼마나 잘 달릴지는 전혀 짐작하지 못했다. 아울러 나는 갬블러 500 커뮤니티에 어울리는 것이 정말 즐거웠다.

 

 

“아무도 당신과 차를 비웃지 않습니다. 그리고 사람들은 곧바로 당신을 받아들이죠. 우리는 모두 이 멍청한 일을 하면서 같은 장소에 있고, 서로에게 의지하니까요.” 모건의 말이다. 그래서 이 이상하고 관대한 사람들이 갬블러 500의 첫 해외 행사에 초청했을 때, 나는 흔쾌히 참가 의사를 밝혔다. 하지만 사진작가 제이드 넬슨은 반대였다. 그는 갬블러 사람들을 만난 적도 없었고, 우리가 왜 사흘이라는 시간 동안 삭막한 화산지대에서 고생해야 하는지 이해하지 못했다. 그의 스트레스는 우리가 레이캬비크 공항에 착륙한 다음 ‘시카고’라는 별명의 톰 체믈러를 만난 뒤에야 풀릴 수 있었다. 시카고의 독특한 술, 젭슨즈 멜로트의 후원을 받은 그는 기꺼이 자신의 럭키 스트라이크 담배를 우리에게 나눠줬다.

 

 

체믈러는 갬블러 행사에 30번 넘게 참가했을 정도로 열정이 대단한 사람이다. 그가 탄 2001년형 폭스바겐 폴로는 창문을 내릴 수 없었고, 와이퍼는 연결된 끈을 통해 수동으로 조작해야 했다. 다행히 날씨가 추운 아이슬란드에서 가장 필수적인 히터는 작동하긴 했지만 바람 세기는 조절할 수 없었다. “그것만 빼면 달리는 데 필요한 건 다 있어요.” 그는 문제가 되지 않는 이유를 설명하기에 앞서 농담처럼 이야기했다. “갬블러 500은 완전히 다른 일이에요. 스스로 난관을 헤쳐나가야 하는 일이 많기 때문에 자립심을 기를 수 있죠.”

 

 

나는 강력 접착테이프로 바이킹 뿔을 붙인 헬멧을 쓰고 일곱 명의 다른 남자들과 함께 출력 제한을 푼 미니 바이크로 신나게 달리고 있었다. 넬슨은 안중에 없었다. 그 역시도 갬블러 500이 얼마나 우스꽝스러운지 직접 보고 있었기 때문에 나를 도울 수 없었을 것이다. 넬슨은 토요타 프레비아를 얻어 타고 캠프에 가장 마지막으로 도착했다. 곧이어 그는 오늘 겪은 수많은 에피소드를 하나둘씩 풀기 시작했다. 프레비아를 몰던 시카고 톰이 배구공만 한 바위를 쳐낸 얘기부터 해서 바위에 찍혀 연료탱크에 구멍 났다는 얘기로 끝난다. 다행히 주변의 몇몇 참가자가 고정용 끈으로 차를 고쳐주고 있었고, 그동안 넬슨은 열려 있는 프레비아의 슬라이딩 도어를 통해 갬블러 행사를 즐기는 이들을 지켜보고 있었다고 한다. 모닥불 주변에 서서 양다리를 뜯고 있는 사람, 미니 바이크로 불 위를 뛰어넘으며 곡예를 펼치는 사람 등 가지각색이었다고 한다. 행사 주최자인 자렌 에스칸다르가 멈추라고 하기 전까지 많은 참가자는 갬블러 500을 자신만의 방식대로 즐기고 있었다.

 

 

차체를 15cm 높인 1979년형 캐딜락 드빌을 모는 에스칸다르는 로스앤젤레스와 아이슬란드를 오가며 생활하는 급진적 환경운동가다. 그녀는 나에게 랠리에 참석하고 있는 모든 사람 중에 하일랜드를 방문한 적이 있는 아이슬란드 사람은 단 한 명뿐이라고 말했다. 또한 그녀는 이 행사를 통해 많은 사람이 하일랜드 지역에 대한 관심을 가져주길 바란다. 유럽 에너지 산업 관련자들이 수력발전 댐 건설 후보지로 하일랜드를 염두에 두고 있어서다.

 

 

“누가 아름다움을 판단하고, 또 누가 단기적인 이익을 위해 생태계와 풍경을 파괴할 수 있는 권한을 가졌단 말인가?”라고 그녀가 물었다. 아이슬란드를 여행한 사람이라면 이곳의 특수성과 중요성을 단번에 알아차렸을 것이다. 용암지대이면서 현무암 모래들로 이뤄져 아주 튼튼한 초목만이 살아남을 수 있다. 또 멀리에는 호프쇼쿨 빙하까지 있는 자연적으로 아주 중요한 곳이다. 그 때문에 길을 벗어나 차를 모는 것은 불법이다. 4×4 타이어는 깊은 고랑을 만들어 비정상적인 침식을 만든다. 만약 길에서 벗어나 운전하기로 마음먹는다면, 1000달러가 넘는 벌금을 내야 할 것이다.

 

누구든 자신의 토요타 프레비아에서 연료탱크가 떨어지면 다시 고정할 것이다. 래칫이 달린 끈이 있다면 이야기가 달라지겠지만.

 

 

다음 날 아침 우리가 강을 건너고 있을 때, 미니 바이크들은 바위가 깔려 있는 곳을 따라 넓게 돌아가지만 자동차들은 깊은 빙하 물을 헤치고 달렸다. 아이다호주 보이스에서 온 아만다와 바비 맥오슬렌 부부는 1991년 라다 니바의 머플러를 물에서 꺼내 속도계 케이블로 다시 고정했다. 그들은 차가 움직이지 않고 클러치 슬레이브 실린더가 고장 났다는 것을 알고도 현지 소유주에게서 니바를 샀고, 그 차를 맥가이버 칼로 복원했다. 그들은 왜 비행기로 6000km나 날아와서 이런 웃기는 행사에 참가했을까? 바비는 그것을 ‘일생일대의 기회’라며 이렇게 덧붙였다. “학력, 소득, 배경, 인종 등 모든 것이 다르지만, 우리 모두에게는 한 가지 공통점이 있죠. 같은 길에서 같은 장애물을 겪으며 아주 험난한 여정을 헤쳐나간다는 것, 그리고 아무것도 남기지 않는다는 것이에요.”

 

 

나는 미니 바이크 체인이 두 번이나 끊어지는 바람에 강 너머까지 가지 못했고, 결국 지원용 스프린터 4×4 밴을 얻어 타야만 했다. 조수석에 앉아 남은 하루 동안 모건의 아버지로부터 미국 지질조사국에서 수문학자로 32년을 보낸 이야기를 들었다. 그날 밤, 우리는 아이슬란드 최대 규모인 토리스바튼 호수 근처 화산탄 지대에 캠프를 차렸다. 하지만 얻어 타게 된 스프린터 역시 멈춰 선 스바루 왜건과 토요타 FJ80에 막혀 오도 가도 못하는 신세가 됐다. 심지어 앞서 멈춘 두 차는 시간이 지날수록 검은 물줄기 속으로 점점 깊이 파고들고 있었다. 넬슨은 아주 깊은 밤 캠프에 도착했고, 빗속을 지나 우리 텐트로 들어왔다. 그의 하루는 그렇게 고단하게 흘러갔다.

 

강은 매정했다. 라다 니바의 배기관은 떨어져 나갔고, 프레비아의 액세서리 벨트는 끊어졌다. 우리는 속도계 케이블로 배기관을 다시 달았고 케이블 타이로 벨트를 만들었다.

 

프레비아는 배기관이 떨어져 나갔다. 조수석 쪽 바퀴도 심하게 찌그러졌지만, 시카고 톰이 바위로 두드려 제 모습으로 돌려놓았다. 연료탱크는 대여섯 번쯤 떨어졌고, 강을 건너는 곳에서는 엔진 액세서리 벨트가 끊어졌다. 갬블러 참가자들은 간신히 벨트 텐셔너를 떼어내고 케이블 타이로 체인을 만들어 끊어진 벨트를 교체했다. 겨우 냉각수 펌프는 돌릴 수 있었으나 발전기가 뜨거워져, 그들은 30분마다 프레비아와 폴로의 배터리를 서로 바꿔 달아야 했다. 힘겹게 차를 이끌어갔지만 날이 저물 무렵, 프레비아는 연료를 뿜어내며 끝내 생을 마감했다.

 

 

아침이 되어, 나는 크야르탄 구드문트손과 함께 인스턴트커피를 마셨다. 그는 25시간 만에 하나뿐인 PVC 스노클을 사용해 자신의 토요타 라브4를 ‘쥐라기 공원’ 스타일로 꾸몄다. 크야르탄은 페이스북에서 갬블러 500 이벤트를 발견했고, 2년 전에 자신의 형제와 함께 38인치 타이어를 끼운 랜드 크루저를 몰고 이 지역에 와서 “아주 엉망인 차로 하일랜드를 가로질러 달리면 멋지겠다”고 생각했단다. 우리는 또 다른 아이슬란드 사람인 엘라 군나르스도티르와 이야기를 나눴다. 그는 에스칸다르와 함께 애리조나주, 캘리포니아주, 유타주에서 열린 갬블러 행사에 참석한 적이 있다. 아이슬란드에서는 붉은 수염의 미국인이 모는, 뒤 디퍼렌셜을 용접한 1991년형 토요타 왜건에 동승했다. 그는 다른 사람의 시선을 통해 자기 나라를 보는 것을 좋아하고, 이런 행사를 다른 여느 갬블러 행사와 비슷하게 느낀다고 한다. “똑같이 좋은 사람들이 모이고, 똑같이 좋은 분위기이고, 똑같이 좋은 느낌이 들어요.”

 

 

넬슨이 마침내 반쯤 뜬 눈으로 텐트에서 모습을 드러냈을 때, 그는 미소를 지었다. 우스꽝스러운 고생을 모두 겪고 난 그의 모습은 이전과 달랐다. 이제야 그는 왜 우리가 어떤 일이 벌어질지 모르는 채 갬블러 500에 참여해야 하는지 이해한다. 그는 “갬블러의 전체적인 생각은 기대를 최대한 낮추고 흐름을 따라가는 데에 있는 듯하다”고 말했다. “처음엔 체계가 없다는 것 때문에 고생했지만, 일단 한번 시작하고 나니 체계가 없을 수밖에 없음을 깨달았고, 일이 벌어지는 그 자체로 행사를 즐길 수 있었어요. 참여한 모든 사람이 자유를 만끽하기 때문에 늘 좋은 분위기인가 봐요.”
글_Chris Nels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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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EDIT

EDITOR : 안정환PHOTO : Jade Nels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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