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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ES는 또 다른 모터쇼다

올해 CES에서 자동차는 주인공이고 조연이며 제작자였다

2020.02.06

 

1월 7~10일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세계 최대 가전박람회 CES가 열렸다. 처음 찾은 CES였지만 그다지 낯설지는 않았다. 그도 그럴 것이 자동차는 이미 CES의 주인공이기 때문이다. 자동차가 CES에 참가하기 시작한 초창기에는 낯선 손님 같았고, 얼마 전까지는 ‘바퀴 달린 스마트폰’이라는 말로 요약되는 전자통신 산업의 새로운 먹을거리 정도였다면, 이제는 CES의 터줏대감인 전자통신 기업들에게 오히려 큰 소리를 치는 존재가 됐다. 자동차는 이제 전자통신 기업의 모든 상품을 담아내는 최적의 플랫폼으로 자신의 존재감을 깨달았고 그것을 주장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뿐만이 아니었다. 철저히 자동차 입장에서 바라본 2020 CES, 먼저 주요 출품 업체부터 살펴보자.

 

 

퀄컴의 한 방

스마트폰에서 자웅을 겨루던 삼성 엑시노스와 퀄컴 스냅드래곤은 자동차 섹터에서 또다시 맞닥뜨렸다. 시스템 온 칩 기반의 자동차용 통합 솔루션인 엑시노스 오토 V9과 스냅드래곤 라이드의 대결이었다. 일단 분위기는 퀄컴의 우세다. 퀄컴은 엑시노스 오토와의 비교보다는 인공지능과 자율주행 자동차 프로세서의 대명사인 엔비디아와의 비교를 통해 단숨에 관심을 가져갔다. 스냅드래곤 라이드는 초당 700조 번의 연산을 처리하는 엄청난 고성능을 단 130W의 저전력으로 해치운다. 업계 최고로 여겨지던 엔비디아의 솔루션을 큰 격차로 단숨에 눌렀다는 것부터 충격이었다. 이런 연산 성능을 바탕으로 퀄컴은 레벨 1, 레벨 2+, 그리고 레벨 4~5의 다양한 자율주행 기능을 제공할 수 있는 능력까지 갖췄다고 발표했다. 퀄컴의 자동차용 솔루션은 삼성과 엔비디아를 긴장시키는 충격적인 등장이었다.

 

 

한국형 통합 솔루션을 선보인 SK

자동차 쪽 사람들은 전기차용 2차전지에서 SK 이노베이션을 알고, 반도체 업계에서는 SK 하이닉스를 그리고 통신업계에서는 SK 텔레콤을 안다. 하지만 이것들이 하나로 합쳐지면 얼마나 큰 시너지를 낼 수 있는지를 큰 그림으로 본 사람들은 그리 많지 않을 거다. 바로 이 측면에서 이번 CES에서 보여준 SK 부스의 모습은 매우 효과적이었다. 전시관 앞을 가득 채운 전시 아이템보다 전시관 뒷벽에 흰색으로 나란히 새긴 SK 3사 로고가 더욱 인상적이었다. 통합 솔루션 공급자. 내수 시장 규모가 한계를 갖는 우리나라 자동차 산업의 나아갈 길이다.

 

 

삼성과 하만의 시너지

삼성은 자타가 공인하는 CES의 주인공이다. 어느덧 ‘이번엔 어떤 제품과 기술로 사람들을 놀라게 할까?’ 모두가 궁금해하는 존재가 됐다. 그런데 그 삼성이 이젠 자동차 입장에서도 점점 중요한 존재가 되고 있다. 그 중심에는 삼성전자와 삼성 SDI 그리고 하만이 있다. 특히 이번 CES에서는 삼성전자의 하만 활용법이 눈길을 끌었다. 세계 최대의 오디오 회사이자 최고 수준의 커넥티비티 솔루션을 가진 하만을 인수한 삼성은 자사의 하드웨어 기술력과 하만의 솔루션 그리고 브랜드를 잘 활용했다. 따로 체험 공간을 마련하면서까지 야심 차게 선보인 통합 패키지 솔루션 ‘하만 ExP’가 대표 선수다. 하만의 특기인 오디오와 커넥티비티를 삼성의 강력한 하드웨어, 즉 프로세서와 디스플레이, 카메라 모듈, 5G 통신 기술 등과 잘 엮어서 만들어낸 통합 솔루션은 OEM들이 미래 차에 적용하기에 안성맞춤인 솔루션이었다.

 

 

기술 대장 보쉬

개인적으로 올해 CES에서 꼽는 승자다. 보쉬는 프레스 콘퍼런스에서 CES 토착 업계인 통신기술 기업들이 자랑하는 AI, 즉 인공지능을 화두로 던졌다. “우린 AI를 그 안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모르는 블랙박스로 놓아두지 않습니다. 보쉬는 목숨을 다루는 차를 기반으로 하는 회사입니다. 우리의 AI는 언제나 통제권을 인간에게 두는 투명하고 믿음직한 AI죠. 이미 2015년에 사물인터넷의 표준을 정했듯이 말입니다.” 그리고 자신들이 AI에서 수익을 내고 있는, ‘이미 고인 물’이라고 실력을 숫자로 보여줬다. 하지만 그게 다가 아니었다. 또 한 번의 공격이 이어졌다. “보쉬 부스에 가면 안경 렌즈를 볼 수 있습니다. 어떤 테를 고르더라도 잘 작동하는 스마트 렌즈입니다. 다들 알다시피 우린 빅 데이터와 머신 러닝을 연구해 왔습니다. 그러다 보니 질병을 상당히 정확하게 진단하는 인공지능도 개발하게 됐죠.” 이건 각각 구글 글라스와 IBM의 왓슨을 떠오르게 하는 통신기업 본진 폭격 멘트였다. 보쉬는 자동차업계를 지키는 것을 넘어 통신기업의 본진을 공략하겠다는 출사표를 던졌다.

 

 

현대차의 미래 도시 청사진

메르세데스 벤츠는 아바타를 끌어와 자연과 공존하는 미래의 럭셔리를 이야기했고, 토요타는 E-팔레트를 이용하는 친환경 도시를 건설해 미래 생태계의 데이터를 얻겠다고 했다. 두 브랜드 모두 현대차보다 월등한 프레젠테이션 ‘공연’을 보여줬지만 토요타는 이제 부동산 개발을, 메르세데스 벤츠는 엔터테인먼트 산업을 업종에 추가하려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꿈같은 이야기였다. 그래도 현대차는 땅을 달리는 자율주행 모듈인 PBV(Purpose Built Vehicle)와 하늘을 나는 UAM(Urban Air Mobility) 그리고 이 둘을 하나로 엮어 3차원 교통 생태계를 완성하는 허브로 이뤄지는 새로운 솔루션을 제시했다. 그런데 아쉬웠다. UAM이 왜 운전기사를 두는 ‘헬리콥터 택시’의 전동식 틸트 로터 비행기로 바뀐 것에 불과한가 하는 점이다. 그래도 현대차가 선택한 방향은 옳다고 본다. 미래 자동차 산업에서 자동차 브랜드는 티어 1들을 중심으로 기술을 통합하고, 소비자와 이어주는 체제 통합자와 시장 관리자의 역할을 담당해야 하기 때문이다.

 


 

 

CES를 둘러보며 내가 느낀 것들

1. 이제 자동차는 CES의 주인공이다. 통신기업의 모든 상품을 담아내는 거대 플랫폼으로 강력한 B2B(기업과 기업의 전자상거래) 바이어 역할까지 하기 때문이다.
2. OEM들은 아직 비전을 팔고 있지만 티어 1들은 오히려 통신기업에 반격을 개시했다(음, 컨티넨탈은 정말 실망스러웠지만).
3. 특히 보쉬의 AI 담론은 담담한 듯 자신감이 넘치고 점잖은 듯 통신기업 영역에 도전장을 던졌다. 만약 상을 줄 수 있다면 개인적으로는 보쉬가 이번 CES의 그랑프리 수상자다(최소한 자동차 관련 부문에서는).
4. 현대차의 모빌리티 솔루션은 하늘의 UAM과 지상의 자율주행 셔틀을 허브로 연결하는 최초의 복합 솔루션 콘셉트라는 점에서는 반가웠다. 하지만 아직 많은 부분에 발전이 필요하다. 2023년이냐, 2029년이냐는 중요하지 않다.
5. 남쪽 홀 2층의 3~4홀에는 여러 나라의 국가관이 있었다. CES의 대표선수인 삼성, 그의 라이벌 LG, 반도체와 통신, 2차전지 등으로 그룹의 힘을 과시한 SK 그리고 어느덧 주요  선수로 성장한 현대차를 하나의 그림으로 엮는 ‘코리아 퓨처 모빌리티 인더스트리(한국관)’가 있었으면 정말 야무진 대한민국을 보여줄 수 있었을 거라는 아쉬움이 강하게 남는다.
6. CES 전시장에 한국 사람들이 참 많다. 한국 중소기업은 정말 강하다. 한 시간 남짓의 비공식 미팅에서도 한국 기업 이야기가 꽤 많이 나왔다.
7. 그리고 역시 나는 느리다. 영상도 많이 찍고 요약도 많이 했지만 결국은 하나도 올리지 못했다.

글_나윤석(자동차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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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EDIT

EDITOR : 서인수PHOTO : 각 제조사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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