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FESTYLE

까만 음표 위를 달리다

밤에 달릴 때, 다들 어떤 음악 들으세요?

2020.02.26

 

PLAYLIST 1. 흥을 내고 싶은 밤

Experience - Ludovico Einaudi
Homegrown - Haux
The Son of Flynn - Daft Punk
Can I - Drake
Jackboys - Travis Scott

 

DRIVE COURSE

올림픽대로, 강변북로(잠실사거리→영동대교→천호대교)

 

내 야간 라이딩은 주로 심야 영화를 보고 난 뒤에 이뤄진다. 그러니까 새벽 2~3시쯤. 잠실 롯데시네마를 빠져나와 영동대교와 천호대교 사이의 올림픽대로, 강변북로를 달린다. 한 두어 바퀴 돌면 20~30분, 약 30km 코스다. 온종일 막혀 있던 도로지만 새벽에는 한적하다. 처음부터 도로 위의 고요한 무드를 빠른 비트로 깨고 싶지 않다. 루도비코 에이나우디의 잔잔한 피아노 선율로 기분 좋은 스타트를 끊는다. 곡의 중반부터는 바이올린, 첼로 등 현악기 사운드가 웅장함과 긴장감을 더한다. 자연스럽게 계기반의 rpm 바늘도 함께 팽팽해진다. 밤에 듣는 음악은 낮과 달리 선명하다. 소리가 증폭되는 마법 같은 시간이다. 가사가 없어도 멜로디 하나하나가 감수성을 자극한다. 다프트 펑크가 만드는 전자 사운드도 밤에 들으면 오케스트라 향연이나 다름없다. 짧지만 남는 여운은 강하다. 야간 라이딩의 후반은 중저음 풍부한 힙합으로 마무리한다. 흐름이 빠르진 않아도 시트 아래의 우퍼 스피커가 허벅지와 골반 사이 어디쯤을 간질이며 드라이브의 흥을 높인다. 트래비스 스콧의 새 앨범 <JACKBOYS>에는 그의 자동차 사랑이 듬뿍 담겨 있다. 뮤직비디오에 1988년식 BMW M3(E30)가 등장하고 요즘 가장 핫한 테슬라 사이버트럭까지 출연한다. 심지어 앨범의 마지막 수록곡은 ‘GATTI’. 당연히 부가티를 의미한다. 현실 차는 빈약해도 음악을 듣고 있는 순간만큼은 내 차를 슈퍼카로 만들어준다. 그래서 요즘 내 야간 라이딩 전용 앨범으로 삼고 있다.
안정환

 

 

PLAYLIST 2. 치유가 필요한 밤

I Can see clearly now - Hothouse Flowers
Fortunate Son - Creedence Clearwater
Exit Sign - Hilltop Hoods (Feat. lly & Ecca Vandal)
Layla - Derek And The Dominos

 

DRIVE COURSE

서울 양양고속도로(서울→속초 방향)

 

나에게 드라이브는 따분한 일상을 벗어나는 탈출구다. 훌쩍 떠나고 싶을 땐 동해 바다가 목적지로 적당하다. 서울 양양고속도로가 시원하게 뚫린 지금, 수도권에서 동해까지 2시간이면 충분하니까. USB에 담긴 ‘드라이브’ 폴더. 그 속의 가장 최근에 들은 노래 네 곡이면 된다. 언제나 시작은 핫하우스 플라워스의 <I Can see clearly now>. 누구나 들어봤을 잔잔한 멜로디와 가사. 익숙한 곡이지만 아티스트 특유의 편곡을 통해 2분을 지나는 시점부터 분위기가 완전히 달라진다. 엔진 rpm이 높아지는 것도 여기서부터다. 다음 음악은 크리덴스 클리어워터의 <Fortunate Son>. ‘누군가는 금수저를 물고 태어나지만…(중략). 나는 아니야! 나는 아니야! 나는 국회의원 아들이 아니야!’ 시원한 가사와 함께 중독성 있는 반복적인 멜로디가 분위기를 고조시킨다. 고속 운전에 집중하는 구간. 호주 힙합 아티스트 힐톱 후즈의 <Exit Sign>과 함께라면 두려울 게 없다. ‘내 차의 주행 감각이 이렇게 날카로웠던가? 기분 탓인가?’ 빠른 템포의 음악이 드라이브에 과감하게 몰입하게 한다. 이때 데렉 앤 더 도미노스의 <Layla>가 시작된다. 장장 7분짜리 곡이다. 초반 3분은 아주 정신없고 과격한 록이다. 마치 내가 도망치고 싶었던 모든 현실처럼. 가끔은 이 부분을 뛰어넘고 싶다. 그러나 3분 10초를 넘어가면서부터 분위기가 180도 달라진다. 따듯하다. 모든 긴장이 갑자기 풀린다. 내 안의 모든 것이 이 순간을 기다린 것처럼, 녹아내린다. 드라이브와 음악을 통해 나는 그렇게 치유된다. 그래서일까? 이 네 곡은 언제나 세트로 한 번 더 듣게 된다.
김태영(자동차 칼럼리스트)

 

 

PLAYLIST 3. 누군가가 그리운 밤

Otherside(Two Another Remix) - Young Franco
Why III Love The Moon - Phony PPL
Last Train Home - Pet Metheny Group

 

DRIVE COURSE

남산 소월길 (그랜드 하얏트 서울→밀레니엄 힐튼)

 

낮에는 위압적으로만 보이던 도시의 건물에 밤이 찾아오고 어둠이 내리면 어느새 낭만이 살며시 깃든다. 우거진 가로수 틈새로 그 반짝이는 풍경이 슬그머니 빛나는 남산 소월길을 나는 잠들지 못하는 새벽에 종종 찾는다. 이 길에서는 먼저 영 프랑코의 <Otherside>를 튼다. 이 곡은 3가지 버전이 있는데 난 늘 ‘Two Another Remix’만 듣는다. 레바 데비토의 건조하고 희뿌연 목소리도 좋지만 그루브한 베이스와 몽환적인 신시사이저의 조화가 오렌지빛 가로등 아래를 달리는 분위기를 마치 소리로 그린 것만 같다. 다음은 포니 피플의 <Why III Love The Moon>이 이어진다. 원래 밴드가 연주하는 힙합을 좋아한다. 그런데 요즘엔 이 곡에 손이 제일 많이 간다. 마음이 허해서 그런가? ‘진정한 사랑은 찾기 어렵다’거나 ‘내가 달을 사랑하는 건 늘 그 자리에 있기 때문’이라는 가사가 그렇게 귀에 꽂힌다. 이렇게 청승을 부리다 집에 갈 때는 팻 메시니 그룹의 <Last Train Home>을 재생한다. 집으로 향하는 마지막 열차라는 제목 때문은 아니다. 그가 연주하는 일렉트릭 시타르의 짙은 여운과 끊임없이 내달리는 스네어 드럼이 절묘한 조화를 이루며 마음에 미묘한 그리움을 남긴다. 그 대상도 모를 그리움을.
고정식

 

 

PLAYLIST 4. 완연히 평화로운 밤

Italian Concerto, J.S.Bach - Andras Schiff
피아노 협주곡 제5번 황제, 베토벤 - 김선욱, Vladimir Ashkenazy
Evan finds the third room - Khruangbin

 

DRIVE COURSE

한남오거리→소월길→광화문→북악스카이웨이→삼청동→소월길→경리단길→용산구청

 

서울에서 드라이브를 할 수 있다는 건, 그때가 곧 밤이라는 뜻이다. 깊으면 깊을수록 좋은 밤. 도시의 한적함과 몸의 피로 사이에서 소월길과 북악스카이웨이, 남산과 북한산을 고루 달릴 땐 단 한 장의 클래식 앨범을 준비한다. 1악장부터 3악장까지 차분하게 들으면서 속도와 마음을 조율한다. 괜히 심난한 밤엔 피아니스트 안드라스 시프가 연주하는 바흐의 <이탤리언 콘체르토>를 듣는다. 딱 좋을 만큼 경쾌하다가 문득 숭고해진 흐름이 다시 빨리지기까지. 건반과 건반 사이에서 내 호흡도 같이 고르곤 한다. 베토벤 피아노 협주곡 5번 <황제>는 유행가처럼 듣는다. 이 협주곡의 멜로디를 흥얼거리는 일과 조용필의 ‘이젠 그랬으면 좋겠네’를 부르는 마음 사이의 그토록 완연하고 익숙한 평화. 피아니스트 김선욱, 블라디미르 아시케나지가 연주한 앨범을 습관처럼 고른다. 가끔은 클래식을 듣는 일 자체가 좀 버거운 날도 있다. 그런 날은 휴스턴 밴드 크루앙빈을 편애하게 됐다. 아무 음악도 고르고 싶지 않았던 날, 유튜브 뮤직이 추천해준 랜덤 플레이 리스트에서 <Evan finds the third room>을 들을 때마다 귀가 번쩍 뜨였다. 어느새 마음이 춤을 추고 있었다. 익숙한 산길과 굽잇길, 오르막과 내리막, 서울의 오래된 마을들을 돌고 돌던 밤. 그것으로 산뜻한 드라이브였다.
정우성(자동차 칼럼니스트)

 

 

PLAYLIST 5. 후회가 기어오르는 밤

Let My Baby Stay - Mac Demarco
Dancing - Mellow Fellow
You Deserve This - Men I Trust
Curls - Bibio

 

DRIVE COURSE

강변북로(성수대교→양화대교)

 

주차장처럼 늘어서 있던 차들이 주차장에 잠든 시간. 심야의 강변북로는 브레이크를 밟을 일이 좀처럼 없다. 서울 안에서 이렇게나 빨리 달릴 수 있다는 사실은 여전히 놀랍다. 특별한 이벤트 없는 평범한 도로지만 심심할 만하면 곡선 코스와 롤러코스터처럼 깊숙한 지하 도로가 지루함을 달랜다. 강변북로의 밤은 낮의 그것과 다르다. 칠흑같이 먹먹한 한강과 번쩍이는 도시 사이 고요한 비무장지대. 비현실적인 풍광 속 가로등 불빛만이 연신 내 머리칼을 쓰다듬는다. 그래서 음악은 다소 몽환적이고 평화로운 느낌의 곡 위주로 고른다. 맥 드마르코의 첫 내한 공연을 보고 집에 가는 강변북로 위에서 들었던 <Let My Baby Stay>, 필리핀 출신의 인디 뮤지션 멜로우 펠로의 <Dancing>이 흘러나올 때면 조수석에 앉은 사람과 사랑에 빠질 것 같은 기분이다. 다가올 2월에 내한이 예정된 캐나다 퀘벡 출신 3인조 밴드 멘 아이 트러스트의 <You Deserve This>도 마찬가지. 마지막으로 비비오의 <Curls>는 북유럽의 어느 목가적 풍경이 떠오른다. 모든 죄의 때를 벗고 순결해지는 기분. 왠지 모를 후회와 번뇌가 스멀스멀 기어 나오는 새벽에 이만한 곡이 없다.
김민지(<노블레스> 에디터)

 

 

PLAYLIST 6. 돌아가고 싶은 밤

Howlin’ 404 - DEAN
Holdinon - 소금
집에 - 새소년

 

DRIVE COURSE

내부순환로 (상암 월드컵공원→성수대교 남단)

 

회사는 평창동, 집은 서초동이던 때가 있었다. 국민대 입구에서 램프가 개통된 지 얼마 되지 않았던 당시 내부순환로는 밤이면 평창동에서 뱅뱅사거리까지 25분 만의 주파도 가능하게 한 웜홀 같은 곳이었다. 지금도 종종 드라이브를 할 때면, (서울 밖으로 나갈 꿈은 못 꾸고) 성산대교에서 내부순환로를 탄다. 허기가 들 땐 홍제IC로 빠진 다음 평창동 실내포차 절벽에서 짜파게티 한 그릇으로 위장을 주유한 뒤 옛 퇴근길을 마저 밟는다. 강변북로나 올림픽대로에 비하면 내부순환로는 초라하다. 근사한 한강 뷰나 반짝이는 스카이라인은 고사하고, 특히 평창동에서 성수대교까지 넘어가는 길은 그마저도 불이 꺼진 아파트 뷰다. 신도시의 위용 있는 아파트도 아닌 서울 태생 사람들이 살 법한, 해묵은 생활이 서린 아파트. 서울 출신인 적 없는 내가 돈벼락을 맞는다면 한강 뷰 아파트엔 갈지언정 그곳에만은 영영 끼지 못할 것이라는, 설움을 주억주억 삼키며 그 길을 달린다. 먼저 딘의 <Howlin’ 404>을 듣는다. ‘난 루프에 갇혔다’란 의미의 가사가 내부순환도로와 절묘하다. 그다음 소금의 <Holdinon>으로 슬슬 예열한 뒤 이윽고 새소년의 <집에>가 흘러나올 때면 속도를 붙인다. ‘만약 내가 돌아간다면 나는 어디로 돌아가야 할까’란 후렴구가 터질 때 비로소 음악과 차, 내가 한 몸이 된다. 나를 실은 차는 자기부상열차처럼 도로를 미끄러지며 이 세계에 두 발을 내린 것도 내리지 않은 것도, 속한 것도 속하지 않은 것도 아닌 상태로 이끈다.
장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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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EDIT

EDITOR : 장은지PHOTO : 조혜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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