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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성능 SUV의 기준이 되다, 애스턴마틴 DBX

애스턴마틴이 고성능 럭셔리 SUV의 승차감과 성능에 대한 새로운 기준을 세웠다

2020.03.18

 

깊숙한 곳에서 으르렁대는 V8 엔진음이 가죽으로 덮인 운전대 위에 내려앉은 날개 엠블럼만큼 익숙하다. 하지만 그 음색에 덧씌워지는 소리는 이전의 애스턴마틴에서 들어본 적 없다. 차체 밑을 파고들며 멀리서 들려오는 듯한 자갈의 덜그럭거리는 소리, 바위에 부딪히는 타이어 소리, 보닛 위로 폭포처럼 쏟아지는 흙탕물 소리 말이다. 우리는 지금 아라비아반도 남동쪽 해안에 위치한 오만의 황무지를 애스턴마틴 DBX 프로토타입으로 달리고 있다. 그 느낌은 마치 집 안에 있는 것 같다.

 

DBX는 애스턴마틴이 자체 설계하고 새로 개발한 알루미늄 보디 구조를 기반으로 만들어진다. 보닛 아래에는 V8 4.0ℓ 트윈터보 엔진이 들어간다. 여러 메르세데스 AMG와 애스턴마틴 DB11, 밴티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엔진으로 최고출력은 550마력, 최대토크는 71.3kg·m를 발휘한다. 여기에 다임러의 매끈한 9단 자동변속기가 짝을 맞춘다. 능동형 센터 디퍼렌셜과 리어 전자식 디퍼렌셜이 더해진 고성능 버전 네바퀴굴림 시스템도 있다. 공기주머니가 3개인 3체임버 에어 서스펜션에는 능동형 안티롤 바가 들어간다. 휠은 22인치가 기본이다.

 

우리가 운전하고 있는 DBX는 애스턴마틴에서 1PT(첫 번째 시험 생산 제품)로 불린다. 이 말은 웨일스 세이트 아탄에 새롭게 문을 연 공장에서 만들어진 첫 번째 자동차라는 뜻이다. 조수석에 애스턴마틴 엔지니어링 책임자인 맷 베커가 동승했다. 그는 ‘스티어링과 서스펜션 최적화 조정 작업이 한창 진행 중’이라고 말했다. 스포츠 플러스 모드에서 배기 장치의 팡팡 터지는 소리를 제어하는 소프트웨어도 최종 조율 중이다. 도어의 틀을 잘 맞추거나 바람 소리를 줄이기 위해 와이퍼를 배치하는 일반적인 제조 과정에서의 수정 사항을 제외하면 이 차는 DBX의 최종 제원에 가깝다.

 

애스턴마틴 DBX의 실내는 여유로운 공간과 고급스러운 디자인이 인상적이다.

 

DBX가 주는 놀라움에 대비하길 바란다. 0→시속 97km 가속까지 4.3초에 불과할 정도로 빠르고, 시속 291km까지 달릴 수 있다. 그런데 실내에서는 그렇게 느껴지지 않는다. 어쩌면 이제 500마력이 넘는 SUV의 선택지가 다양해졌기 때문일 수 있다. 코너를 달리는 중에 베커는 ‘사계절용 타이어를 끼운 상태에서 1.00g 이상의 횡가속력이 발생한다’고 이야기했다. 여름용 타이어를 끼우면 횡가속력은 1.20g까지 오른다. 그러면서도 DBX는 현재 판매 중인 여느 럭셔리 SUV와 차별화된 승차감과 정교함을 뽐낸다.

 

에어를 3개의 공간에서 조율하는 3체임버 에어 서스펜션이 기본인 DBX의 주행 모드를 GT 모드로 놓으면 놀라운 균형감과 함께 노면 상태와 관계없이 도로를 물 흐르듯 달린다. 쉐보레의 신형 타호보다 10mm 긴 휠베이스(3060mm) 덕분에 승차감은 황홀하고 매우 안락하다. 놀라운 이완 능력을 갖춘 댐퍼는 섬세하고 차체 윗부분의 움직임을 정밀하게 제어한다. 마치 떠오르는 풍선이 줄을 부드럽게 당기는 것 같다. 편평비가 낮은 22인치 피렐리 스콜피온 제로 사계절용 타이어(앞 285/40, 뒤 325/35)를 끼웠는데도 불쾌한 충격이 느껴지지 않는다. 단지 작고 날카로운 도로 위 혹은 둔덕을 넘을 때 미세한 소음과 진동의 기미만 있을 뿐이다. 더 놀라운 점은 DBX의 안락함이 코너링의 희생을 감수하지 않고 만들어진다는 사실이다. 자갈길을 벗어나 달 표면 같은 오만의 산악지대로 이어지는 굽이지고 가파른 편도 2차로 아스팔트 도로로 접어들었다. 이 길을 달리면서 DBX가 실제보다 더 작은 SUV 같다는 인상을 받았다.

 

DBX의 길이×너비×높이는 5040×1999×1679mm다. 크기만 봐서는 포르쉐 카이엔보다 벤틀리 벤테이가에 가깝다. 그런데도 진정한 그란투리스모의 우아한 움직임을 보인다. DBX를 타면 레인지로버 기본형(DBX보다 짧고 좁으며 휠베이스는 140mm 짧다)이 무릎을 다친 미식축구 선수처럼 느껴진다. 완전히 새로운 알루미늄 차체도 날렵한 움직임에 도움이 된다. 애스턴마틴에 따르면 DBX의 무게는 2245kg이다. 카이엔 터보보다 64kg 가벼운 몸무게다. 벤테이가 V8보다 159kg, 모든 장비를 더한 레인지로버 SV 오토바이오그래피보다 391kg이나 가볍다.

 

 

하지만 핵심 기술은 ZF가 만든 액티브 안티롤 바 시스템이다. 최대 142.7kg·m의 토크로 앞, 뒤 안티롤 바를 비튼다. 코너를 달릴 때 유격이 긴 서스펜션이 제 할 일을 하는 동안 안티롤 바는 차체 평형을 유지한다. 반면, 포르쉐 카이엔의 액티브 안티롤 바는 112.1kg·m의 토크를 뒷차축으로만 전달할 뿐이다.

 

크고 빠른 여느 SUV로 방향을 전환할 때 무게나 무게중심을 감안해야 한다. 하지만 DBX에서는 그런 것들을 신경 쓸 필요가 없다. 심지어 서스펜션이 가장 부드러운 GT 모드로 둬도 마찬가지다. 스포츠 플러스 모드에서 움직임이 분주하지만 안티롤 시스템의 강한 토크가 뒷차축 강성을 증대시켜 롤을 줄인다. 통상 구동력의 최대 100%를 뒷차축으로 보내고 47% 이하를 앞차축으로 보내는 네바퀴굴림 시스템 덕분에 의도적인 강한 오버스티어도 즐길 수 있다.

 

 

뒷바퀴 조향 시스템이 적용된 SUV에서 나타나는 약간의 인위적인 선회 반응이 DBX에는 없다. 왜냐하면 DBX에는 이 시스템이 없기 때문이다. 우리가 몰고 있는 프로토타입은 스티어링의 무게감과 중심을 유지하려는 움직임의 정도가 아직 정해지지 않았다. DBX의 조향비는 14:1로, 람보르기니 우루스에 적용된 16:1과 카이엔 터보의 12:1 사이에 위치한다. 그 덕분에 반응성과 안정성이 절묘한 조화를 이룬다.

 

베커는 DBX의 역동성 개발에 대해 ‘지금껏 운전한 차 중 가장 복잡하다’고 밝혔다. 특히 파워트레인, 서스펜션, 스티어링, 브레이크 시스템들이 조화를 이뤄 승차감과 핸들링이 잘 섞이도록 하는 시스템 통합이 가장 어려운 과제였다고 한다. 완전히 새로워진 아키텍처 덕분에 애스턴마틴 엔지니어들은 원하는 지점에 서스펜션을 얹을 수 있어 바퀴를 최대한 차의 모서리로 배치할 수 있었다. 탑승객 주변에 주름 잡힌 금속 장식을 더하면서 감탄할 정도로 넓고 고급스러운 실내 공간이 완성됐다. 베커는 ‘작은 것 하나까지 심사숙고해 만들었다’고 강조했다.

 

 

로터스 스포츠카의 핸들링을 다듬는 것으로 일을 시작한 베커가 이야기했다. “제가 가장 자랑스러워하는 부분은 차체 조종성과 핸들링만큼이나 안락한 승차감입니다.” 맞는 말이다. 간단히 말하면 DBX는 안락한 승차감과 역동적인 움직임 사이의 균형을 맞추는 것에 대한 새로운 기준을 세웠다. 이것은 레인지로버가 처음 나왔을 때 경쟁 모델들이 뛰어넘을 수 없는 높은 기준을 제시한 것과 비슷하다. 그때처럼 이제 모든 SUV는 DBX가 정립한 기준으로 평가받을 것이다.

 

몇몇 SUV는 더 빠르고 힘이 넘치며 접지력이 훨씬 더 끈질길 수도 있다. 하지만 애스턴마틴 DBX는 도로뿐 아니라 모든 공간에서 현재 판매 중인 어떤 고성능 럭셔리 SUV보다 뛰어난 움직임을 보여준다.
글_Angus MacKenzi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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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EDIT

EDITOR : 김선관 PHOTO : 애스턴마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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