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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 예술이야! 람보르기니 쿤타치

람보르기니 쿤타치는 디자인도, 주행감각도 예술이다. 그리고 꿈의 자동차다

2020.03.23

 

진부한 말이 되긴 했지만 난 람보르기니 쿤타치 포스터를 방 벽에 압정으로 붙여놓은 수많은 1980년대생 중 하나였다. 아, 비키니를 입은 모델이 새하얀 보닛에 가로질러 기대고 있는 포스터는 아니었다. 대신 새빨간 쿤타치가 중앙선 쪽으로 꺾인 코너에 대충 서 있었다. 그 코너는 운전자들의 예상을 배신할 만큼 급격해 보여 경고 표지판이 필요할 정도였다.

 

 

집으로 돌아오면 빨간색 람보르기니가 방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포스터를 볼 때마다 쿤타치의 문을 활짝 열어젖히고, 차 안으로 기어올라 떠들썩한 V12 엔진의 시동을 거는 꿈을 꿨다. 내 방 벽에는 거의 1인치 간격으로 자동차 포스터가 붙어 있었다. 람보르기니 포스터는 그중에서도 단연 돋보였다. 쿤타치와 비교하면 페라리 테스타로사는 수수했고, 접힌 자국이 선명한 <모터트렌드> 부록 속 콜벳 ZR1은 부인할 수 없을 정도로 평범했다. 마침내 지역에서 열린 소규모 자동차 행사에서 쿤타치를 봤을 때, 일회용 코닥 카메라의 필름 절반을 할애했다. 두 개의 문을 갈매기 날개처럼 위로 들어 올리는 벡터 W2를 빼면 쿤타치는 내가 아는 한 가장 난폭한 차였다.

 

 

쿤타치는 창립자인 페루치오 람보르기니의 지휘 아래 태어난 마지막 람보르기니 중 하나였다. 작업은 1970년 프로젝트 LP112로 시작됐다. 출시된 지 오래된 미우라를 대체하기 위해서였다. 기본 엔진은 미우라에 얹힌 것과 같은 것을 얹되(전 페라리 엔지니어 지오토 비자리니가 개발한 그 엔진이다) 엔지니어 파올로 스탄자니가 개발한 차체에 세로로 배치하고, 배기량을 4.0ℓ에서 5.0ℓ로 키웠다. LP500으로 이름 붙인 첫 번째 프로토타입은 완전히 새로운 쐐기 모양 보디에 가위처럼 위로 열리는 시저 도어를 달았다. 미우라를 디자인한 베르토네 소속 마르첼로 간디니의 작품인데, 그가 이전에 디자인한 알파로메오 카라보와 란치아 스트라토스 제로 콘셉트에서 가져온 아이디어다.

 

등받이가 고정된 사랑스러운 시트는 무척 편안하고 안락하다. 높은 센터콘솔은 항공기 ‘콕핏’ 같은 느낌을 준다.

 

람보르기니가 LP500 콘셉트를 1971년 제네바 모터쇼에서 선보였을 때 이름이 쿤타치로 바뀌어 있었다. ‘쿤탁(Contacc)’은 이탈리아 피에몬테 지역에서 경외감이나 놀라움을 나타낼 때 쓰는 말인데, 쿤타치란 이름은 바로 이 쿤탁에서 따왔다. 미우라보다 넓고 낮으며 짧은 쿤타치는 수년 동안 자동차 엔지니어들이 머릿속으로만 생각하던 아이디어를 현실에서 구현한 충격적인 자동차였다. 쿤타치는 전 세계 거의 모든 자동차 잡지의 표지를 빠르게 장식했다.

 

하지만 이듬해 세계 경제에 균열이 생기기 시작했다. 뒤이어 일어난 혼란으로 페루치오 람보르기니는 그의 제국을 건설한 트랙터 사업을 매각했다. 당시 아직 10년이 채 되지 않은 그의 신생 자동차 사업은 그다지 나아질 기미가 없었다. 시판용 쿤타치는 마감일을 넘기고 또 넘겼다. 결국 람보르기니 창립자는 회사 지분을 친구이자 스위스 사업가인 조르주 헨리 로세티에게 넘겼다. 람보르기니 자신은 쿤타치 생산을 위해 회사에 남았고, 마침내 1974년 쿤타치 LP400이 시장에 출시됐다. 스탄자니가 만든 진보된 튜블러 스페이스 프레임 섀시와 미우라에 얹은 것보다 작은 4.0ℓ 엔진을 얹고 말이다. 지나친 열정으로 진이 빠진 페루치오는 결국 자신이 가지고 있던 오토모빌리 람보르기니의 잔여 지분을 매각하고 이탈리아 시골로 떠났다. 그리고 아버지의 뒤를 이어 와인을 만들었다. 1993년 그가 76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날 때까지.

 

이 다운드래프트 엔진 모델은 쿤타치 중에서 가장 강력하며, 여섯 개의 웨버 카뷰레터를 깔끔하게 얹기 위해 보닛이 불룩하게 솟아 있다.

 

람보르기니의 분투는 쿤타치가 유럽 시장에서 판매를 시작한 이후로도 계속됐다. 그리고 1980년 회사는 파산 절차에 들어갔다. 같은 해 프랑스 기업가 패트릭 밈란과 그의 형제 장 클로드가 재산 관리 상태에 들어간 람보르기니의 지배권을 얻고 1982년 완전히 인수했다. 패트릭이 CEO로 있는 동안 람보르기니는 여덟 살이 된 쿤타치를 미국 시장에서 판매하기 시작했다. 성공이 급속도로 다가왔다. 그리고 1986년 패트릭 밈란은 그의 세 번째 회사 차로 쿤타치를 주문했다. 그 차를 내가 막 운전하려는 참이다.

 

 

사장이 되는 건 좋다. 이런 쿤타치를 맘껏 탈 수 있으니까. 이 1986년형 5000 콰트로발보레는 단 하나뿐인 보르도 스페치알레 페인트로 칠해졌다. 람보르기니의 부품공급사인 PPG 밀라노가 ‘사장님 취향’대로 맞춘 색이다. 그 색이 황금빛 휠, 파나 가죽 인테리어와 환상적인 대조를 이룬다. 엔진 또한 특별하다. 연료를 연소실에 바로 분사하지 않는 ‘다운드래프트’ 방식을 채용했다. 람보르기니는 유럽 사양으로 300대만 이 엔진을 얹었다. 보닛을 열면 웨버의 44 DCNF 다운드래프트 카뷰레터 여섯 개가 V12 5.2ℓ 엔진의 V형 골짜기 안에 줄지어 서 있다. 특별히 주문할 수 있는 스포츠 캠(과 추가 오일 쿨러)이 추가된 이 쿤타치는 가장 강력한 476마력짜리 모델이다. 기본 다운드래프트 모델에 비해 15마력, 연소실로 연료를 직접 분사하는 미국 사양 모델에 비해서는 101마력 이상 출력이 높다.

 

은밀하면서도 고급스러운 알파인 스테레오도 옵션으로 달렸다. 음악을 미치도록 좋아하는 밈란은 스위스에 있는 그의 집과 이탈리아 볼로냐에 있는 람보르기니 본사 사이를 빠른 속도로 질주하고 싶을 때 쿤타치를 탔다. 아무리 람보르기니라도 음악이 없다면 지루했을 거리다. 넣을 수 있는 옵션을 모조리 넣은 이 차엔 단 하나의 옵션이 빠져 있다. 바로 6500달러짜리 V자 모양 리어 윙이다. 이유는 정확히 알려지지 않았지만 리어 윙 때문에 생기는 공기 저항으로 최고속도가 시속 16km 이상 낮아지는 걸 원치 않았거나 밈란이 깔끔한 모습을 선호했기 때문일 거다. 우린 지금 모습 자체로 완벽하다고 생각한다.

 

 

이 차는 1987년 밈란이 람보르기니를 크라이슬러에 팔아넘기고 난 뒤에도 잠시 동안 소유했을 정도로 사랑을 받았다(그가 초기에 투자한 300만 달러는 이 대형 거래를 통해 2500만 달러가 됐다). 미국계 영국인 투자전문가 조 삭키가 그의 고객으로부터 사들인 2015년까진 스위스 사람의 품에 있었다. 1980년대에 처음으로 쿤타치를 산 슈퍼카 수집가 삭키는 밈란이 소유했던 이 쿤타치에 얽힌 스토리가 무척 흥미롭다는 걸 알았다. 처음에 그는 차를 다시 팔 생각으로 샀지만 캘리포니아 오션사이드에 기반을 둔 듀간 엔터프라이즈에 복원을 맡기기로 결정했다. 목표는 신차 상태로 되돌려 놓는 것이다. 이렇게 쿤타치는 다시 쌩쌩해졌다.

 

 

운전석 쪽 NACA 덕트 깊이 손을 넣고 래치를 눌러 문을 열었다. 문은 공압 지지대의 도움으로 쉽게 올라갔다. 완만히 구부러지고 등받이가 고정된 시트가 모습을 드러냈다. 마치 우주선에서 뜯어낸 듯한 모습이다. 이 운전석에 가장 처음으로 엉덩이를 밀어 넣은 사람은 다름 아닌 람보르기니의 테스트 드라이버 발렌티노 발보니다. 그는 조립라인에서 차를 똑바로 몰았다. 최근 발보니는 복원을 마친 이 차를 운전할 두 번째 기회를 얻었다. 그리고 성능을 완벽하게 조정할 수 있는 사소하지만 치명적인 제안을 했다.

 

수년 동안 숭배해온 자동차를 직접 운전한다는 건 정말 짜릿한 일이다. 때론 그 영웅이 내가 생각했던 모습이 아닐 때도 있지만 때때론 훨씬 뛰어나기도 하다. 이 차의 운전석에 앉기 몇 주 전 난 쿤타치를 타본 몇몇 친구에게 어떤 기대를 하면 좋을지 조언을 구했다. 트럭 같은 운전대와 승차감, 지나치게 까다로운 엔진과 클러치, 속도를 재빨리 낮추기가 어려운 브레이크에 대해 가장 많이 들었다. 난 그들이 어떤 쿤타치를 운전해봤는지 모른다. 하지만 적어도 이 차는 아니다.

 

맞춤 제작된 리모컨키는 이 차와 패트릭 밈란을 연결하는 공예품이다.

 

검은색 열쇠를 비틀어 엔진을 깨웠다. 예열이 돼 있는 엔진은 신경질적인 기색도 없이 고요하게 아이들링 상태를 유지한다. 게이트 방식의 기어 레버를 1단에 넣으려면 제법 세게 당겨야 한다. 경주차처럼 왼쪽 아래가 1단이다. 클러치 페달은 단단하긴 하지만 내가 주말마다 사력을 다해 누르는 레그프레스 머신만큼은 아니다. 스로틀은 동작이 가볍고 조금 민감하다. 그래서 정지 상태에서 출발할 때 엔진회전수를 지나치게 올리기 쉽다.

 

속도계 단위는 마일이 아니라 km다. 이 차는 유럽 사양이다.

 

운전대는 저속에서는 무겁지만 점차 느슨해지기 시작한다. 기어 레버를 오른쪽 위로 올려 2단, 그리고 직선으로 내려 3단으로 기어를 바꾸면 쿤타치가 성큼성큼 내달리기 시작한다. 점차 익숙해졌을 때 기어를 2단으로 내리며 일시적으로 스로틀을 열었다. 그리고 한층 확신에 차 가속페달을 다시 밟았다. 머리 바로 뒤에서 들리는, 여섯 개의 웨버 카뷰레터가 공기를 벌컥벌컥 마시는 소리는 정말 대단하다. 난 진귀한 기회를 흥청망청 즐겼다.

 

 

다시 한번 기어를 3단에 넣고 엔진회전수가 7000rpm에 다다를 때까지 스로틀을 열어 고정했다. 거대한 V12 5.2ℓ 엔진이 네 개의 배기구로 호통치는 소리를 더 잘 듣기 위해 옆 창문을 내렸다. 누군가는 음악 사운드트랙으로 설정할 만한 기계 협주곡이다. 오른쪽 코너를 앞두고 가속페달에서 발을 떼자 펑펑 터지는 성난 소리가 거세게 귀를 때렸다. 목에 난 털들이 바짝 곤두서는 느낌이다. 이 차는 감속에는 흥미가 없다.

 

 

잘 관리된 쿤타치는 두려워할 만한 차가 아니라는 게 금세 분명해졌다. 운전석에 앉았을 때 뒤쪽과 대각선 뒤쪽 시야가 훌륭하진 않다. 그리고 대부분 이 이유 때문에 꽉 막힌 도로를 달릴 땐 무척 짜증이 날 거다. 하지만 승차감이 불쾌하지 않고 조향은 정확하며 앞쪽 시야가 환상적이다. 얇은 A 필러와 낮은 대시보드 덕에 앞 시야가 거의 180°에 가깝게 펼쳐진다. 운전석에서 보닛을 거의 볼 수 없으며, 아스팔트가 차를 향해 돌진하는 느낌은 적당한 속도보다 한층 빠르게 달리는 듯한 기분을 준다.

 

 

신나게 내달리는 동안 하늘이 불길한 잿빛으로 바뀌었다. 우린 이 역사적인 자동차가 폭우에 휩싸이지 않을까 걱정했다. 하지만 쿤타치는 고른 자세로 불길한 기운까지 집어삼켰다. 뒷바퀴에 달린, 너비가 335mm에 달하는 거대한 피렐리 타이어가 계속 달리겠다고 떼를 썼다. 나 역시 계속 달리고 싶었지만 쿤타치가 더 좋아지기 전에 헤어져야 했다. 다른 누군가의 람보르기니로 지나친 자신감을 갖는 건 좋은 생각이 아니다. 그리고 벽장 뒤 어딘가에서 뒹굴고 있는 먼지투성이 오래된 포스터는 액자에 넣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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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EDIT

EDITOR : 서인수PHOTO : Robin Trajan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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