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FESTYLE

강하빈은 흐른다

강하빈은 물 같다. 물은 형태가 없고, 그릇에 따라 자유자재로 모습이 바뀔 뿐이다

2020.06.02

슬립 원피스는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셔츠는 13먼스, 슈즈는 자라.

 

들불처럼 번진 봄꽃이 무색하게 조금은 쌀쌀한 날들이 이어졌다. 햇빛은 따사로웠지만 바람은 차가웠다. 새파란 공기의 기색에 하얀색 모직 코트로 몸을 감싼 강하빈이 스튜디오로 들어왔다. 생긋 웃으며 우리에게 인사를 건넨 그녀였지만, 하얀 옷깃 속으로 어색하고 수줍은 모습이 비쳤다. 이날 화보의 콘셉트는 ‘아침’이었다. 봄날 아침, 성가신 알람 대신 달콤하게 잠을 깨우는 여자친구의 모습을 연출하려 했다. 섹시하거나 혹은 귀엽거나, 상반된 두 가지 여친 콘셉트를 소화해내는 데 강하빈 외엔 달리 떠오르지 않았다.

 

강하빈은 레이싱 모델 오디션 프로그램 < 레이싱 퀸>에 출연한 것을 계기로 레이싱 모델로 데뷔했다. 올해로 9년 차 베테랑 모델인 그녀는 9년째 CJ슈퍼레이스 본부 소속 레이싱 모델로 활동 중이다. 브랜드 이미지에 맞게 해마다 모델을 교체하는 일이 적지 않은 업계에서, 강하빈이 몸담고 있는 CJ슈퍼레이스 본부팀 모델만큼은 오랜 시간 같은 멤버를 유지하기로 유명하다. 경주를 주관하는 본부팀 모델은 경주 기간 중 유독 어깨가 무겁다. 특정 팀 소속이 아니므로 팀의 출전 타임에 영향을 받는 여느 모델들과 달리, 늘 행사의 흐름을 파악하고 포즈를 취하는 것은 물론 피켓을 들거나 시상식에 참여하는 등 행사가 원활히 진행되도록 돕는다. 상시 ‘열일 모드’를 유지해야 하는 것. 성실함은 당연하고 순발력도 필수다. 누구 하나라도 본분에 소홀하면 팀워크가 무너지며 행사에 차질이 생길 수 있는 일. 그러나 지금까지 CJ슈퍼레이스 본부팀 모델들은 특유의 단결력과 시너지로 어려운 상황들을 헤쳐갔다. 그 결과 소속 모델 모두 업계에서 인정받는 모델이 됐다. “어떤 팀원과 대체 불가할 정도로 한명 한명 존재감이 있어요. 오랜 시간 함께해서 그런지 저희끼리도 매우 끈끈하죠. 서로에 대한 신뢰와 애정이 두터운 편이에요.” 그 속에는 언제나 의연하게 팀원을 지탱하고 높여주는 모델 강하빈이 있다.

 

 

드레스 룸에서 하늘색 실크 슬립 위에 흰색 와이셔츠를 느슨하게 걸친 그녀가 걸어 나왔다. 이내 뷰파인더까지 들어서 포즈를 취한다. 청초한 얼굴과 느린 몸짓으로. 강하빈은 대체로 낯을 가리고 말수가 적다. 분명 그녀는 비범한 오라로 현장을 휘어잡거나, 카메라를 씹어 삼킬 듯 강렬한 눈빛을 쏘아대는 모델은 아니다. 소리 없이 피고 지지만 발견한 사람에게만큼은 확실한 기쁨을 안기는 쪽이다. 조명을 반사하는 푸른 실크 슬립 때문일까, 그녀의 자태가 물을 머금은 물망초처럼 보였다.

 

‘아침’ 콘셉트를 소화한 강하빈은 실제로 아침형 인간이다. 일이 있든 없든 오전 8시에 일어난다. 제일 먼저 하는 일은 물을 마시는 것. 그런 뒤엔 스트레칭을 하고 TV를 보거나 PC를 켠다. 스마트폰 게임도 자주 하는데 조이스틱을 움직이는 아케이드 게임을 특히 좋아한다. 쉬는 날 전시회도 종종 들른다. 그녀는 모델 일을 하기 전 미술관 도슨트로 일한 경력이 있다. 모델로 전향한 이유를 묻자, 시종일관 낯을 가리며 대답을 이어가던 그녀가 “관심받는 것을 좋아한다”며 거침없이 말했다. 이것은 반전의 서막에 불과하다. 그녀의 취미는 사진 찍기. 주로 어떤 것을 카메라에 담는지 묻자 깜찍한 대답이 돌아왔다. “저요! 어릴 때부터 유독 셀카 찍는 걸 좋아했어요. 지금도 혼자 밖에 나가면 제 모습을 촬영하곤 해요.(웃음)” 외출할 땐 꼭 셀카봉을 가지고 나간다는 그녀. 내가 흥미롭단 반응을 보이자 덩달아 신이 난 그녀가 가방에서 최장 160cm로 늘어나는 셀카봉을 꺼내 보였다. 질세라 부연 설명도 보탠다. “이걸 앞에 세워두고 찍으면 마치 남자친구가 찍은 듯한 ‘여친짤’을 촬영할 수 있어요. 늘 가지고 다닐 만큼 애착이 깃든 장비죠.(웃음)”

 

니트 톱은 자라, 쇼츠와 삭스는 모두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실크 슬립을 입고서는 하늘하늘 가녀리게, 크롭 티와 쇼츠를 입었을 때는 유쾌하고 발랄하게. 그릇에 따라 모습을 바꾸고 유연하게 넘실거리는 강하빈은 물 같다. 잠깐 얘기를 나누면 너무 투명해서 속이 훤히 들여다보일 정도다. 물은 어디에 담겨도 결국 물이다. 무언가를 감추고, 누군가를 속일 수 있을 만큼 치밀하지 못해 속이 상할 때도 있겠지만, 애써 사랑받으려 하지 않아도 강하빈이 사랑스러운 것은 그 때문일 테다.

스타일링_박선용

 

 

 

 

모터트렌드, 모델, 강하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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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EDIT

EDITOR : 장은지PHOTO : 조혜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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