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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이드 보디 시대의 시작, 포르쉐 911 카레라

911은 약간의 짜릿함을 더 많은 풍요로움과 컨트롤 능력으로 맞바꾸었다. 600마력 이상의 슈퍼카라도 룸미러에서 이 차의 모습을 떨쳐내기란 쉽지 않아 보인다

2020.06.10

 

911(코드명 992)이 마침내 한국에 상륙했다. 지난해 서울모터쇼에서 그 모습을 처음 마주하고, 지난 9월엔 독일로 날아가 속도 무제한 구간을 달려본 지도 반년이나 흘렀으니 참으로 오래 뜸을 들인 셈이다. 외관 디자인 변화에 대한 이야기는 길게 하지 않는 게 좋겠다. 911 애호가라면 1년 전 공개된 신형의 모습을 충분히 파악하고 있을 게 분명하고, 포르쉐에 큰 관심이 없는 사람들에게 구구절절 설명한들 여전히 똑같은 911로 보일 것이기 때문이다. 확실한 건 993에서 996으로 플랫폼이 교체할 때 보여준 파격적 변화만큼이나 큰 변화를 담고 있다는 점, 그리고 그 모든 형태적 변화는 철저하게 기능적 향상을 위한 장치라는 점이다. 진정한 변화는 겉이 아닌 속이다.

 

 

운전자는 말 그대로 운전석 공간에 내려앉아야 한다. 높이의 변화는 거의 없지만 엉덩이 위치는 바닥으로 한참 내려간다. 시트를 최대한 내리면 눈만 계기반 위로 내놓는다. 운전하는 기분이 경주용 투어링카의 버킷 시트에 앉았을 때와 너무나도 흡사하다. 앉기만 했는데 호감도가 올라간다. 앞쪽 보닛의 중앙 부분을 파 내린 모습은 과거 911의 오마주인데, 낮아진 시선 높이에 따른 전방 시야 개선 효과가 확실하다.

 

 

파나메라와 카이엔에서 먼저 선보인 디지털 계기반으로의 변화는 조금 아쉽다. 중앙 아날로그 엔진 회전수 카운터 내부에 역대급 세공을 가하긴 했으나 회전계를 수직으로 잡아주는 플라스틱 프레임의 소재나 운전대에 상당 부분 가려지는 좌우 디스플레이 표시 영역에서도 왠지 모를 성급함이 묻어난다. 물론 필요한 정보가 중앙으로 몰린 배치라 기능적으로 전혀 문제가 없다. 아니, 시야의 동선이 줄었으니 개선이라 봐도 무방하다. 단지 50년 넘게 지켜온 다섯 개의 원형 베젤의 명맥이 끊긴 것 같아 슬플 뿐이다.

 

 

전체적인 실내 분위기는 긴장감 대신 풍요와 고급스러움이 지배한다. 짧아진 기어 노브는 시간이 지나면 적응되겠지만, 수동변속 모드로 바꾸기 위해 버튼으로 시선을 옮겨야 하는 점은 불만이다. 반면 주행 모드 변경 스위치는 직관적으로 변경된 인터페이스가 마음에 든다. 타원형에서 사다리꼴 형태로 변하면서 후사경 면적도 커진 사이드미러는 넓어진 엉덩이를 잘 감상하라는 배려가 틀림없다.

 

 

엔진룸 속의 배치도 달라졌다. 좌우 터빈은 데칼코마니처럼 대칭으로 컴프레서가 회전하고, 인터쿨러는 타이어 부근에서 뒤 범퍼 쪽으로 변경했다. 덕분에 리어 스포일러가 펼쳐지면 신선한 주행풍이 냉각 코어로 바로 유입된다.

 

 

결과적으로 카레라 S는 매우 강력해졌다. ‘가공할’ 또는 ‘매서운’이란 표현은 어울리지 않는다. 긴장감 없이 아무렇지도 않게 고출력을 꺼내 쓸 수 있다. 론치 컨트롤을 작동하자 G포스 미터는 종방향 0.96g을 기록했다. 하늘에서 떨어지는 중력 가속도에 맞먹는 수치다. 0→시속 100km 도달 시간은 3초에 근접하는데 포르쉐가 발표한 3.5초는 거짓말이었다. 인상적인 것은 론치 컨트롤을 활용할 때 뒷바퀴 접지력이다. 991은 론치 컨트롤이 세밀하게 뒷바퀴 구동력을 잡아줬다 풀어주는 미시적 제어가 인상적이었지만, 992는 세밀한 제어가 들어온다는 느낌조차 없이 타이어가 노면을 박차고 나간다. 네바퀴굴림차의 가속 느낌과 유사하다. 수동변속기를 얹었더라도 클러치 킥으로 1단 휠스핀을 일으킬 수 있을까 의문이 들 만큼 막강한 그립이다.

 

 

하지만 그 3초가 격정적인 스릴로 채워지는 건 아니다. 통풍 시트 버튼을 누르거나 다음 곡으로 트랙을 넘길 만큼 여유가 흐른다. 뒷바퀴의 접지 한계만 높아진 건 아니다. 넓어진 앞 트레드에서 오는 앞바퀴 접지력 한계 변화가 체감적으로 더 크게 다가온다. 가속할 때 앞머리의 그립이 희미해지는 911 특유의 성향도 이젠 옛이야기다. 앞에 265mm 이상의 타이어를 끼운 느낌인데 타이어 폭은 이전과 동일한 245mm 그대로다. 앞바퀴의 한계점이 높을 뿐 아니라 한계점에서 미끄러지는 소리도 실내로 잘 유입되지 않는다. 따라서 스포츠 드라이빙 중이라도 되도록 자세제어장치를 끄지 않을 것을 권장한다. 안전망 내에서도 충분한 접지력의 향연을 즐길 수 있다. 길게 이어진 코너에서는 G포스 값이 횡방향 1.4g 정도는 되어야 타이어가 부담을 느끼기 시작한다. 당장의 노면 접지력만 느껴지는 게 아니라 저 멀리 다가오는 요철을 밟은 후의 궤적 변화마저 파악할 수 있는 예지력이 주어진 듯한 착각도 든다. 아직 직접 비교는 못 해봤지만 991.2 세대의 GTS보다 빠른 느낌이다.

 

내외관 디자인, 주행 성능, 운전 편의성, 연료 효율성, 높은 품질 등 911은 오늘날 스포츠카가 지녀야 하는 덕목을 매우 잘 갖췄다.

 

사실 991.2 GTS는 991.1 GT3와 랩타임 차이가 거의 없을 만큼 빠르다. 그렇다고 신형 911 카레라 S가 GT3 같은 퓨어 스포츠카 영역에 들어왔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되레 정반대에 가깝다. 승차감은 구형보다 한결 나아져 국산 준중형 세단과 별 차이가 없다. 속도 감각도 확연히 다르다. 구형과 비교해 체감 속도가 20% 정도 낮게 느껴진다. 아우토반에서 시속 300km로 달릴 때도 있는 힘껏 운전대를 쥐지 않아도 된다. 그래서 이 차는 누가 타도 빠를 것이다.

글_강병휘(자동차 칼럼니스트 겸 레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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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EDIT

EDITOR : 김선관PHOTO : 박남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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