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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동차 스파이샷 이렇게 찍는다

한 장의 제대로 된 스파이샷을 위해 넉 달을 극한의 환경에서 버티는 사람들이 있다. 자동차 스파이샷 사진가는 그리 만만한 직업이 아니다

2020.06.29

 

위장막을 뒤집어쓴 차가 옆을 지나간다고 생각해보자. 스마트폰을 꺼내 사진을 막 찍어대는 사람도 있을 거고, ‘왜 뜬금없이 사파리 차가 밖에 나왔지?’ 하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을 거다. 뭐든 알아야 보이는 법이다. 물론 위장막의 의미를 몰라도 생활하는 데는 전혀 지장이 없다. 다만, 그 의미를 안다면 장래 희망에 한 가지 직업이 추가될 수는 있겠다. 바로 자동차 스파이샷 사진가다.

 

국내에서는 스파이샷 촬영을 직업으로 삼는 사람은 없는 것 같다. 판매량 기준으로 세계 5위인 현대·기아차가 국내에 핵심 시설과 연구소를 갖추고 있지만 정작 성능 테스트는 대체로 해외에서 진행하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국내에선 찍을 차가 없다.

 

해외에는 자동차 스파이샷 찍는 일을 직업으로 삼는 사람들이 있다. 한 번도 노출되지 않은 자동차의 모습을 카메라에 담아 매체에 판매하는 거다. 국내에서는 이런 일이 거의 없지만 해외에서는 흔한 일이다. ‘파파라치’라고 하는 프리랜스 사진가들이 연예인의 사진을 찍어 매체와 거래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최근 자동차 브랜드에서 홍보용으로 위장막 사진을 자체 제작해 배포하는 경우가 많아졌다. 어차피 찍힐 거면 제대로 찍어 멋지게 보여주자는 취지다.

 

스파이샷을 촬영할 수 있는 곳은 자동차 회사에서 성능시험을 하는 지역이다. 대표적인 곳으로 북미에서는 미국 캘리포니아 데스밸리, 플로리다 앨리게이터 앨리, 미시간 라코, 캐나다 온타리오 캐퍼스케이싱 등이 있다. 유럽에서는 스웨덴의 아리에플로그, 독일 뉘르부르크링이 있다. 대부분 극한의 기후인 곳들이다. 그 넓은 곳에도 스파이샷 사진가들이 주로 가는 특정 장소가 있다고 한다. 다만, 이는 철저한 보안에 부쳐진다. 이들만의 경험이 깃든 영업비밀이기 때문이다.

 

한 스파이샷 포토그래퍼는 데스밸리에서 촬영하는 것을 ‘악마의 용광로에서 일하는 느낌’이라고 표현했다. 극한의 기후에서 일하다 보니 온도 변화에 취약한 배터리는 하루에 보통 2~3번 교체한다. 렌즈는 캐논 35~350mm 망원줌렌즈를 가장 선호한다. 참고로 이제는 단종된 렌즈다. 스파이샷 사진가들은 장비를 메고 극한의 환경에서 언제 다가올지 모를 차를 신경을 곤두세워가며 기다려야 한다. 촬영지 부근에서 이들은 1년에 넉 달 이상 실제 거주하며 스파이샷을 찍는다고 한다. 따지고 보면 이들의 업무환경은 딱히 좋은 편은 아니다.

 

 

스파이샷 사진가라고 마구잡이로 카메라를 들이대는 건 아니다. 이들은 허락되지 않은 공간에 무단으로 들어가지 않는다. 위장막을 쓴 테스트카에 손을 대는 일도 없다. 법적인 문제가 생길 수 있기 때문이다. 공적인 공간에 서 있거나 달리는 차를 촬영해야 아무런 문제가 없고 수익도 챙길 수 있다.

 

스파이샷 사진가들은 위장막을 쓴 차가 나타나면 일단 지체 없이 사진부터 찍는다. 초점이 잘 맞고 전체적인 모습을 보여줄 수 있는 사진을 건졌다 판단되면 좀 더 질 좋은 사진을 찍기 시작한다. 테스트카가 멋지게 나오도록 하는 게 아니다. 이 차가 실제 출시될 때 어떻게 나올지 유추할 수 있는 부분들을 최대한 잘 드러나게 촬영한다는 얘기다. 세부적인 컷들도 충분히 찍어둔다. 어디를 어떻게 촬영하는지는 스파이샷 사진가들의 진짜 노하우다. 같은 장소에서 동일한 차를 촬영하더라도 이런 노하우에 따라 스파이샷의 가치가 달라진다. 일반적으로는 거래 가능한 수준이면 300달러 정도를 받을 수 있다. 2020년 5월 15일 환율로 36만9900원이다. 물론 값어치 있는 사진은 그보다 훨씬 높은 금액에 거래된다. 비싸면 1만 달러(약 1230만원)까지도 받는다. 참고로 높은 금액에 거래되는 스파이샷은 전혀 예상치 못한 모델이 담긴 독점 사진이다.

 

 

자동차 스파이샷 업계에서도 전설로 칭송되는 사진가가 있다. 브렌다 프리디다. 그녀는 원래 자그마한 광고 전문 스튜디오를 운영하던 두 아이의 엄마였다. 하루는 약속이 있어 마트에 갔는데 주차장에 위장막을 쓴 차가 두 대 있었다. 그래서 그녀는 다시 집으로 가 카메라를 가져왔고 사진을 찍었다. 그걸 <오토모빌 매거진>에 보냈다. 뜻밖에도 그 사진이 <오토모빌 매거진> 1992년 11월호 표지로 사용됐다. 알고 보니 그 차는 스파이샷에 걸리고 1년 뒤인 1993년 11월 데뷔한 포드 4세대 머스탱이었다. 물론 예상 못한 수익도 적잖이 거뒀다. 사실 당시 그녀가 사는 집은 포드가 주로 테스트하는 곳의 바로 근처였다. 이를 알게 된 <유러피언 카> 매거진은 얼마 뒤 자신들이 원하는 자동차 사진의 목록을 그녀에게 보냈다. 프리디는 또 그걸 다 촬영해서 보내줬다. 그때부터 그녀는 본격적인 스파이샷 사진가로 나섰다. 한 해에 넉 달은 두 아이를 데리고 데스밸리에 가서 기거하는 수고를 마다하지 않았다. 그리고 끝내 성공을 거뒀다. 하지만 그녀는 이제 업계를 떠났다. 지금은 가끔씩 자신의 사진 전시회를 열고 쿠바 여행 사업을 한다.

 

그녀가 카메라를 놓은 이유는 간명하다. 스파이샷은 이제 별로 돈이 되지 않는다. 시대가 변했기 때문이다. 지금은 모든 사람들 손에 카메라가 쥐어져 있다. 최근에는 스마트폰 카메라의 성능이 엄청나게 좋아져 사진의 퀄리티도 높아졌다. 이렇게 찍은 사진은 SNS 등으로 공유된다. 그것도 공짜로. 매체도 SNS나 커뮤니티에 공유된 사진을 가져와 출처를 밝히고 쓰는 경우가 많아졌다. 그래도 테스트 장소 같은 특정 지역에서 독점 사진을 찍을 수 있는 건 여전히 스파이샷 사진가들뿐이다. 예전 같진 않지만 아직은 수요가 남아 있는 이유다.

 

가장 가치 있는 스파이샷은 계획조차 알 수 없던 뜻밖의 모델 사진이다. 이런 차의 구석구석을 보기 좋게 담아내면 더할 나위 없는 고액을 노릴 수 있다. 잡지 표지로 사용될 정도라면 1000만원 이상도 가능하다.

 

잘 알려지진 않았지만 자동차 회사에는 위장막 코디네이터가 있다. 겉보기에는 테스트카의 정보를 노출하지 않으면서 자동차의 성능 테스트 결과는 실제 차로 한 것과 동일한 수준으로 도출하기 위해 위장막 코디네이터를 둔다. 테스트를 안 할 수는 없고 정보 노출은 꺼리는 자동차 회사들의 고민을 위장막 코디네이터들이 최대한 해결하고 있다. 자동차 회사는 테스트카의 정보 노출에 예민하다. 앞으로 구형이 될 현재 모델의 판매량에 생각보다 큰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반면, 일부 자동차 회사에서는 위장막 사진을 일부러 노출하기도 한다. 어차피 노출될 거면 정말 멋지고 역동적인 컷으로 촬영해 최고의 모습을 보여주는 게 낫다는 거다. 신차에 대한 소비자들의 기대를 끌어올리는 일종의 마케팅 기법이다. 이 정도면 자동차 스파이샷 사진가들의 미래는 점점 흐려진다고 볼 수 있다. 그래도 아직까지는 많은 사람들이 그들의 사진을 기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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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EDIT

EDITOR : 고정식PHOTO : 각 제조사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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