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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꼭 알아야 할, 흑인 운전자의 삶 Part 1

미국 도로 위의 역사, 그리고 지금도 이어지는 인종차별

2020.09.10

척 베리와 그가 사랑한 캐딜락. 갖은 편견에도 흑인 소비자들은 캐딜락을 백인들과 같은 비율로 구매했다.

 

영화 <그린북>은 <네르고 모토리스트 그린북>이라는 책을 영화화한 것이다. 아프리카계 미국인인 피아니스트 돈 셜리와 그의 백인 운전수이자 보디가드인 프랭크 발레롱가의 생을 다룬 <그린북>은 오스카 작품상을 받았다. 또한 책은 짐 크로 법(1876~1965년 시행된 흑인 차별을 지속하기 위한 법) 시대의 흑인 여행자들이 사용했던 여러 여행안내 책자 중 하나다.

 

많은 백인은 문명화된 전후 미국에서 흑인의 자동차 운전이 인종적 위험으로 가득했다는 사실에 매우 놀라워했다. 무례한 주유소 종업원과 무자비한 식당 여주인을 상대하는 것에서부터 성난 군중과 적대적인 법 집행관들을 만나는 것까지 말이다.

 

<그린북>과 그 외 여행안내 책자들은 흑인 운전자들이 여행 중에 친절한 호텔, 주유소, 나이트클럽, 이발소, 식당을 찾을 수 있도록 도와줬다.

 

<그린북>은 흑인 운전자들이 이런 잠재적 위험을 피하고 헤쳐나갈 수 있도록 돕기 위해 만들었다. 구체적으로 흑인 손님을 환영하는 레스토랑, 민박 숙소, 호텔 및 모텔, 나이트클럽, 다른 사업장과 명소 등의 목록을 제공했다.

 

사실, 이 책을 출판한 빅터 휴고 그린은 인종차별이 없어지면서 그의 안내 책자가 쓸모없어지기를 오랫동안 바랐다. 1964년 공민권법이 통과되면서 많은 흑인은 그렇게 될 것이라고 희망했다(실제 <그린북>은 2년 후에 출판이 중단됐다).

 

그러나 1990년대 들어 경찰이 흑인 운전자라는 이유만으로 차를 멈춰 세우는 ‘Driving While Black’이라는 새로운 구절이 미국 사전에 추가됐다. 이 말은 흑인들이 미국 도로에서 차를 운행하는 동안 생길 수 있는 위험, 괴롭힘, 심지어 폭력이 여태껏 사라지지 않았음을 보여줬다. 현재로 이어지는 이 역사의 흔적은 흑인들에게 차를 운전하는 일이 잠재적으로 생명을 위협할 수 있는 활동으로 남았다는 걸 의미한다. 특히 경찰이 검문할 때 그렇다. 우리는 이런 암울한 사건들을 단순히 노예제도와 인종차별주의의 흔적으로만 볼 게 아니라 처음부터 흑인들이 직면했던 이동의 제한으로 봐야 한다.

 

역사를 통틀어 흑인들은 법 집행기관, 미국의 도로와 복잡한 관계에 있었다. 그러나 흑인들이 도로에서 겪은 일들은 노예제도로부터 자유를 향한 여정에 관한 것이다. 그리고 자동차는 오늘날 민주주의와 인종 관계 안에서 이동의 자유가 얼마나 중요한지 이해하는 데 필수적인 역할을 한다.

 

흑인 가족들은 종종 호텔, 시장, 식당 등이 흑인을 상대하지 않을 것에 대비해 모든 물품을 챙겨서 여행했다.

 

제약 없이 자유롭게 여행할 수 있는 권리는 흑인들에게 특별한 의미가 있는 자유 사회의 기본권리다. 노예 시대에 그들은 일상적인 이동을 금지당하고 특정 지역에 억류됐다. 심지어 20세기에도 특정 지역으로 여행이 불가한 법적 제재를 당했다. 이러한 흔적들이 모이고 모이면서 원하는 대로 오가는 이동의 권리가 시민권의 필수적인 요소로 인식됐다. 그리고 자동차가 이런 이동의 권리를 보장했다. 또한 흑인들이 버스와 기차로 여행하는 것이 굴욕적일 수 있었고, 심지어 생명을 위협받을 수 있었음에도 흑인들은 이에 굴하지 않고 자유로운 이동을 시작했다.

 

음악가들은 종종 잘 곳을 찾지 못해 공연 후 야간에 이동했다.

 

버스를 이용하는 흑인 여행자와 통근자들은 무례한(그리고 총을 휴대한) 버스 기사들과 마주쳐야만 했다. 기사들은 흑인들을 버스 뒷자리에 앉히거나 서 있게 했다. 그래야 백인 탑승객들이 편히 앉아 갈 수 있기 때문이다. 때로 흑인 탑승객들은 앞에 앉기 위해 추가 요금을 내기도 했다. 버스 기사에게서 뒷문으로 타라는 이야기를 듣기도 했는데, 이는 흑인들이 뒷문으로 걸어갈 때 버스를 출발시키기 위해서였다.

 

기차는 인종별로 여행자들을 분류했다. 더럽고 불편한 그리고 많은 사람으로 붐비는 객실이 흑인들이 있어야 할 장소였다. 1939년 뉴욕-마이애미 노선 홍보용 전단지엔 ‘메인 객실엔 등받이 각도를 조절할 수 있는 딜럭스 시트가 있어 편합니다’라고 적혀 있다. 그러나 그 홍보지 한편에는 ‘유색인종을 위한 객실엔 에어컨이 없습니다’라고 쓰여 있다. 흑인 여행자들은 더럽고 낡은 시트에 앉아야 했다. 유색인종 객실의 화장실은 종종 청소돼 있지 않았다. 남부로 여행하는 흑인 승객들은 시카고, 디트로이트, 뉴욕, 뉴어크에서 일반석 또는 일등석에 앉을 수 있었다. 그러나 기차가 메이슨-딕슨 노선을 건너면 유색인종 객실로 이동하라는 요청을 받았다.

 

흑인 운전자들은 여행 중 필수적인 서비스를 받을 수 없는 지역에 발이 묶일 것을 우려해 크고 단단하며 빠른 차를 선호했다.

 

중산층으로 가는 길

기차가 아닌 자동차는 자신의 운명을 책임질 수 있다는 걸 상징했다. 또한 운전자와 승객들에게 안전기준도 제공했다. 자동차를 타고 자녀와 여행하는 흑인 부모들은 다른 사람들과 함께 대중교통 수단을 이용하는 데서 올 수 있는 언어적, 심리적 충격으로부터 그들의 아이들을 보호할 수 있었다. 즉, 자동차는 인종 간 폭력을 막는 방패였다.

 

또한 자동차 소유는 미국에서 흑인이 성공했다는 걸 보여주는 단편이 되기도 했다. 흑인 중산층의 증가와 함께 더욱더 많은 흑인이 자동차를 구매할 수 있었다. 그들은 자동차와 돈을 휴가용으로 쓰는 것을 넘어 인종차별을 반대하는 무기로도 사용했다.

 

중산층이 아니었던 사람조차 종종 법과 관습에 의해 담보대출과 주택 구매가 가로막히자 고급 승용차를 살 수 있는 방법을 찾았다. 그렇게 신분이 상승한 흑인들은 자동차를 가졌다. 그럼에도 불쾌함과 폭력적인 만남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많은 흑인 운전자들은 계속 안절부절못했다.

 

모텔은 호텔이 대접하지 않는 흑인 관광객들을 상대하기 위해 시작됐다.

 

이런 상황은 디프사우스 지역에서도 줄어들지 않았다. 버지니아와 인디애나 같은 딕시 지역 경계 주들뿐만 아니라 뉴저지, 코네티컷, 오하이오 등 진보적인 주들도 흑인들에 대한 인종차별이 있었다. 로키산맥에 인접한 주들과 사우스웨스트는 음식이나 숙박시설을 찾는 흑인 여행객들을 종종 쌀쌀맞게 대했다.

 

안전한 여행을 위해 흑인 가족들은 상세한 지도와 여행 일정표도 챙겼다. 또한, 마주치는 사람들의 얼굴을 유심히 살피며 적개심의 징조를 찾았다. 그들은 일몰 도시(흑인들이 해가 지기 전에 떠나야 한다고 주장하는 공동체들)로 알려진 특정 지역과 특히 적대적이라고 알려진 장소들은 우회했다.

 

마이애미에 있는 50개의 우아한 객실과 열대지방 풍 정원을 갖춘 햄프턴 호텔에서는 흑인도 백인과 똑같이 고급  숙박시설을 누릴 수 있었다.

 

흑인의 자동차 구입 전략

자동차는 흑인들의 편안한 여행을 지원했지만 새로운 생각과 습관을 요구하기도 했다. 그래서 차를 고를 때 매우 특별한 기준이 필요했다. 완벽한 자동차 고르기는 모두에게 힘든 일이다. 그러나 그 복잡한 계산법은 흑인들에게 매우 다르게 작용했다. 흑인들의 구매력, 자동차 선택, 심지어 운전 형태까지 차별로 엄격하게 결정됐다. 흑인 가족들은 백인들에게 절대 적용되지 않았던 매우 구체적인 것들을 요구받았다.

 

흑인들은 차 선택에서 출력과 크기를 매우 중요하게 여겼다. 이는 단순히 과시용이 아니다. 자동차는 흑인 운전자들이 백인들에게 저지당하거나 괴롭힘을 당하는 것에서 벗어나게 해주는 능력을 부여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NAACP(미국 흑인 지위 향상 협회)의 메드가 에버스는 여행을 위해 크고 눈에 잘 띄는 올즈모빌 로켓 88을 선택했다. 백인의 매복 공격을 피하고 빠르게 달리기 위해 힘이 좋아야 했기 때문이다. 때에 따라서는 193cm에 달하는 그의 몸을 누이고 잠을 청하기 위해 큰 차가 필요했다. 대부분의 호텔에서 흑인은 환영받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 시대의 흑인 가족들은 크고, 넓고, 단단한 뷰익을 좋아했다. 당시 뷰익은 가장 고급스러운 브랜드 중 하나로 절대 싼 차가 아니었다. 1946년 가장 비싼 뷰익 중 하나인 로드마스터의 가격이 2110달러였다. 물론 많은 흑인 가족은 포드나 쉐보레 등 경제적인 선택을 했다. ‘소형차는 일반적인 시장에서처럼 흑인에게 매력적이지 않다’라는 내용이 <시카고 디펜더>의 기사에서 언급된 바 있다. 그러나 흑인이 호화로운 차를 산다는 것은 누군가의 심기를 불편하게 했다. 당시 미국 내 흑인들의 캐딜락 구입 비율이 백인들과 같은 3%였음에도 말이다.

 

어린 시절의 저자(오른쪽)

 

또한 흑인 운전자들은 백인 여행자들이 절대 고려하지 않았던 물품들을 실어 나르기 위해 큰 차를 선호했다. 실제 그들은 도로 위의 위험을 피하고 목적지까지 그대로 달릴 수 있도록 차에 식량을 넉넉하게 비축했고, 주유할 때만 정차했다. 차에서 잠을 자기 위해 담요와 베개도 챙겼다. 차체 겉판은 사생활을 보호하는 칸막이 구실을 했다. 그들의 바구니에는 샌드위치와 물, 아이스티가 넘쳐났다. 흑인들을 대접하기로 했던 식당들조차 종종 그들을 밖에서 기다리게 했고, 상한 음식을 대접했기 때문이다.

 

또한 라디에이터에 넣을 여분의 물을 갖고 다녔다. 흑인 여행자들을 상대하는 주유소를 찾지 못했을 경우를 대비해 휘발유 한 통도 챙겼다. 추가적인 팬벨트와 한두 통의 오일도 차에 비치했다. 시골을 통과하는 길을 설명해주는 수많은 지도와 안내 책자도 챙겨야 했다. 차를 세우고 물어보는 건 위험할 뿐만 아니라 엉뚱한 길을 알려주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여행 중 화장실을 가야 할 상황에서도 주유소는 운전자의 피부색을 보고 화장실 사용을 막았다. 때문에 흑인 운전자들은 비상시 크고 오래된 커피 캔을 임시 변기로 사용했다. 물론 에소 주유소처럼 흑인에게도 화장실을 개방한 곳이 있기는 했다.

글_Gretchen Sor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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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EDIT

EDITOR : 이진우PHOTO : 피터슨 기록보관소, 미국 국회도서관, 게티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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