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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불원정대 by 레몬법

자동차 환불 못 받은 사람 손!

2020.12.23

 

환불의 세계, 유전유죄?

제품을 환불받는 일에 원정까지 가야 하나 싶다. 우리가 일상에서 자주 접하는 저가의 물건은 문제가 있을 때 환불받는 것이 그리 어렵지 않다. 내 경우엔 얼마 전 쿠팡 애플리케이션으로 빔 프로젝터와 아이폰을 연결하는 USB 선을 구매했는데 호환이 되지 않았다. 제대로 확인하지 않은 내 잘못이 컸지만 앱에서 구매 취소 버튼 하나만 누르면 바로 반품 접수가 가능했다. 다음 날 현관 밖에 내놓은 제품은 하루 만에 수거됐고 즉시 환불 처리됐다.

 

물론 모든 제품이 이렇게 손쉽게 환불되어야 한다는 것은 아니다. 소비자의 권리를 악용한 블랙컨슈머들의 만행도 간과할 수 없다. 그러나 보편적으로 고가 상품의 가격표에는 상품의 미적, 기능적 가치와 더불어 브랜드의 가치가 포함돼 있다. 오랜 시간 수준 높은 품질로 소비자를 설득했고 사회적·환경적 책임을 다한 브랜드에는 ‘프리미엄’ 딱지가 붙는다. 그런 이유로 고가의 제품을 사는 소비자들은 구매 전 제품의 품질을 꼼꼼하게 검수하기보다 브랜드에 대한 신뢰감에 기대는 경향도 있다. 하자를 따지기 비교적 수월한 전자제품이 아니고야 검수 때 발견하지 못한 흠을 문제 삼아 환불받기란 어려운 일이다. 걱정할 만한 상황은 이것뿐만이 아니다. 예컨대 어제 명품 시계를 샀는데 다음 날 해당 브랜드의 CEO가 인종차별적 발언을 했다고 가정해보자. 숫자 0이 6개나 달린 시계라면 거기엔 브랜드의 가치가 상당 부분 기여했을 것이다. 시계를 산 지 하루 만에 가치는 하락했고 당분간 차고 다닐 수 없게 됐다. 고가의 제품을 구매한다는 것은 브랜드의 태도와 지향까지 취하는 것이고, 이는 결국 자신을 표현하는 수단으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CEO의 망언으로 내 소유 자산이 하루 만에 폭락했으니 브랜드에 환불을 요구해야 할까? 소송이야 걸 수 있겠지만, 정당한 환불 정책을 기대하긴 어려울 것이다. 제품을 살 때 소비자는 브랜드가 가진 가치에 흔쾌히 돈을 지불하지만, 환불받을 때까지 값비싼 이름에 준하는 고급진 태도를 기대하긴 어렵다. 저가 상품은 얼마든지 구매를 무를 수 있지만, 고가의 상품일수록 환불받기 어려운 것이 우리 사회의 경제 논리다.

 

 

물 건너온 자동차 환불법, 레몬법

1975년 미국에서 시행된 레몬법은 신차 구매 후 특정 기간 내, 일정한 기계적 결함이 생길 경우 자동차를 교환 및 환불해주는 정책이다. 레몬이란 깜찍한 이름이 붙은 배경은 이렇다. “시장에서 오렌지를 사 먹었는데 그게 사실 레몬이었다면, 달콤한 오렌지를 상상하며 레몬을 먹은 소비자는 불쾌함을 감출 길이 없다. 이 경우 잘못 판 상인과 농장주에게 정당하게 환불을 요구할 수 있다.”

 

자동차는 우리가 일반적으로 구매하는 것 중 가장 고가의 상품에 속한다. 세탁기의 결함은 옷감을 망가뜨릴 뿐이지만, 자동차의 결함은 생사와 직결된다. 그러한 이유로 작년 1월부터 국내에도 레몬법이 시행됐다. 그런데 지금까지 레몬법을 통해 환불을 받은 사례는 ‘0’을 기록한다. 레몬법은 무엇이며, 왜 이런 사태가 발생하는 것일까?

 

국내에서 레몬법으로 자동차를 교환 및 환불 받을 수 있는 조건은 이러하다. 자동차를 처음 인도받은 시점으로부터 2만km/1년 내 심각한 하자는 2회, 일반 하자는 3회 발생했을 때, 또는 수리 기간이 30일이 넘을 때다. 심각한 하자는 1회, 일반 하자는 2회 수리를 받은 후 자동차 제조사에 알려야 한다는 조항도 있다. 위 조건을 충족하는 사람이라면 국토교통부의 ‘자동차 안전하자·심의위원회’에 중재 신청을 할 수 있다. 위원회의 중재 판정은 법원 판결과 같은 효력이 있다.

 

여기까지는 아무 문제가 없어 보인다. 그러나 ‘교환과 환불 조항이 명시된 서면으로 계약한 신차’에 한해서만 레몬법을 보장받을 수 있다는 점(법 적용 여부의 권한을 업체에게 돌려주는 꼴이다), 자동차를 소유한 날로부터 6개월 이내에 발생한 결함은 자동차 제조사가 조사하고, 6개월 이후부터 1년 사이 생긴 결함은 소유주 스스로가 증명해야 한다는 점이 법의 초점과 실효성을 흐리고 있다.

 

현재 국내에서 판매되는 자동차 브랜드로는 현대, 기아, 제네시스, 르노, GM, 볼보, BMW, 재규어, 토요타 등이 한국식 레몬법을 따르고 있다. 한데 법이 시행된 1년 8개월 만인 올 9월까지, 자동차 안전하자·심의위원회에 접수된 중재 신청 520여 건 중 레몬법을 통해 정식으로 환불받은 사례는 없다. 25건이 교환 및 환불을 받았지만 그마저도 중재 신청을 취소하는 조건으로 브랜드와 소유주의 합의가 이뤄진 것이다. 직접 합의를 하면 브랜드 입장에서는 정식 기관을 통해 자동차의 결함을 공연히 인정하지 않아도 된다. 소비자 입장에서는 중재기관의 처리 기간과 하자 입증 과정에 대한 부담을 질 필요가 없다. 자동차는 온갖 부품들이 유기적으로 움직이는 복잡한 기계다. 제조사에서도 인지하기 쉽지 않은 결함을 일반 소유주가 입증해야 한다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이다. 이렇게 법의 테두리 밖에서 합의가 계속되면 결국 자신의 정당한 권리를 지키지 못하는 소비자가 점점 늘어나게 된다. 브랜드 입장에서도 블랙컨슈머를 상대할 가능성이 높아질 수 있다.

 

 

레몬법은 어디로 가나?

레몬법의 모국인 미국의 사례를 살펴보자. 주마다 법이 조금씩 다르긴 하지만 일단 레몬법이 적용되는 조건 자체는 국내와 비슷하다. 기간 내 일정 횟수 이상으로 문제가 발견될 경우 소유주는 제조사에 직업 환불을 요청하거나 변호사를 통해 이 과정을 진행할 수 있다. 보상금은 신차 가격과 구매 시점에 발생한 각종 세금을 더한 실제 구매 가격에, 자동차의 출고 시점과 주행거리를 감안한 금액을 차감해 지급된다(국내 레몬법은 세금을 뺀 보상금을 지급하도록 되어 있다). 만약 제조사에 환불을 거부당하면 중재위원회에 중재 신청을 할 수 있다. 중재위원회의 판정도 납득할 수 없다면 레몬법 전문 변호사를 통해 소송으로 갈 수도 있다. 변호사 수임료는 자동차 제조사에서 부담한다. 미국에서는 신차는 물론, 중고차나 리스도 레몬법의 보호를 받을 수 있다. ‘교환 및 환불이 명시된 계약서에 사인한 신차’로 대상을 좁힌 국내와는 사뭇 다른 분위기다.

 

미국은 자국 내에서 경제활동을 하는 자동차 브랜드에 대해 아주 강경한 태도를 취하고 있다. 자동차 브랜드가 미국에서 레몬법을 적극적으로 이행할 수밖에 없는 것은 바로 ‘징벌적 손해배상제도’ 때문이다. 이는 회사가 잘못된 판단으로 개인과 사회에 손해를 입혔다고 판단될 때, 손해에 대한 비용만 청구하는 것이 아니라 수백 배의 배상금을 요구해 국가 차원에서 회사에 재정적 압박을 가하는 것이다. 과거 디젤게이트에 연루된 미국 내 회사들도 징벌적 손해배상제도로 천문학적인 보상금을 물은 바 있다. 말 그대로 ‘징벌’의 값인 셈이다.

 

큰 기대 속에 입법됐지만 레몬법이 사실상 유명무실해지면서 대중의 실망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청와대 홈페이지에는 레몬법 개정에 대한 청원이 올라오고, 국내에도 징벌적 손해배상제도를 도입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거세지고 있다. 이렇듯 허울뿐인 제도로 자동차 소유주의 기본적인 권리를 보장해주지 못한다면, 국가기관과 자동차 브랜드들은 대중의 신뢰를 점점 잃어갈 것이다. 이는 결국 공유 모빌리티가 확산되면서 모두가 자동차를 사기 부담스러워하는 미래를 좀 더 앞당기는 도화선이 될지도 모른다. 우리가 사랑해 마지않는 자동차를 좀 더 오래 곁에 두고 누리기 위해서는 모두가 투명해질 필요가 있다. 가장 먼저 국토교통부 소속 중재위원회의 더욱 신속하고 적극적인 중재가 이뤄져야 할 것이고, 소비자의 건전한 의식과 자동차 브랜드의 보다 무거운 책임감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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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EDIT

EDITOR : 장은지PHOTO : 셔터스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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