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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T라는 이름의 SUV, 애스턴마틴 DBX

GT의 명가 애스턴마틴이 만든 SUV는 다르다. 단순히 시대 흐름만 좇는다고 생각했다면 큰 오산이다

2021.02.05

 

애스턴마틴 브랜드를 관통하는 키워드는 모터스포츠다. 그들이 지금껏 달려온 길이 그렇다. WEC를 비롯해 여러 내구레이스와 그랜드 투어러 레이싱에 경주차를 출전시키고 있으며, 특히 올해는 1960년에 마지막으로 그랑프리에 나간 지 61년 만에 F1에 복귀한다. 하지만 2000년 이후 애스턴마틴이 내놓고 있는 자동차들을 연결하는 키워드는 따로 있다. GT, 그란투리스모다. 애스턴마틴은 V12 뱅퀴시나 DB9, 라피드 등 현대적인 GT의 개념을 제시하며 고급 GT 시장에서 자신의 영역을 공고히 하고 있다. 현재 판매하는 라인업도 순수 스포츠카인 밴티지를 제외하면 제품 대부분이 GT다.

 

 

2015년 DBX의 콘셉트가 공개됐을 당시 애스턴마틴 CEO였던 앤디 팔머는 “럭셔리 GT 세그먼트의 새로운 개념이 될 것”이라며 GT가 개발 과정에 큰 영향을 끼칠 것을 시사했다. 그리고 4년 뒤 애스턴마틴 106년 역사의 첫 번째 SUV인 DBX가 그 모습을 드러냈다. 사실 외관만 보면 GT라는 수식어가 어딘지 억지스러워 보인다. SUV의 형태에 도어도 4개나 된다(전통적인 GT는 2도어 쿠페 스타일이다). 하지만 앤디 팔머가 말했듯이 DBX는 ‘GT의 새로운 개념’이니 이 점은 넘어가자. 대신 스포츠카도 따돌릴 수 있는 성능, 편안한 주행 감각, 안락한 승차감, 풍성한 편의장비, 넉넉한 공간 등 GT의 요소들을 살뜰히 챙겼다.

 

 

DBX는 애스턴마틴이 자체 설계하고 새로 개발한 알루미늄 플랫폼을 기반으로 한다. 이 플랫폼은 부품들을 연결하는 데 볼트가 아닌 구조용 접착제를 사용해 전체 무게가 줄고, 연결 부위가 부식될 확률도 낮췄다. 이 플랫폼은 엔지니어들이 원하는 곳에 서스펜션을 얹을 수 있어 바퀴를 최대한 차의 모서리로 배치했다. 스포츠카 비율을 유지하면서 SUV에 걸맞은 차체 크기를 얻기 위해서다. 이렇게 만들어진 휠베이스에 보닛의 길이, 승객석의 크기, 도어와 유리의 크기와 형상 등을 맞춘 듯한 느낌이다. ‘아름다움은 비율에서 창조된다’는 애스턴마틴의 디자이너 마렉 라이크만의 고집이 투영된 결과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난 이보다 디자인과 엔지니어링의 조화가 더 인상적이다. DBX의 얼굴 양쪽에 보조개같이 자리 잡은 주간 주행등이 브레이크 냉각을 위한 통풍구를 감싸고 있다. 오리 엉덩이처럼 튀어나온 스포일러도 마찬가지다. 유려한 실루엣과 다운포스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는다. 엔지니어와 익스테리어 디자이너가 긴밀히 협력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는 부분이다. 참고로 DBX의 그릴은 애스턴마틴 모델 중 가장 크고, 보닛 위의 엠블럼도 가장 크다.

 

 

도어를 여는 순간, 격세지감이 느껴진다. 애스턴마틴 차를 타면서 DBX처럼 넓게 열리는 도어와 완전히 평평한 문턱을 본 적이 없다. 실내는 전형적인 영국 차답게 우아하고 호화롭다. 손과 몸이 닿는 곳은 천연 가죽으로 감싸고, 천장은 알칸타라로 마무리했다. 아낌없이 쓴 티가 역력하다. 조수석과 뒷좌석 머리 위 손잡이까지 가죽으로 된 스트랩으로 꾸몄으니 말해 무엇할까. 이외에도 금속과 유리, 나무 장식 등이 곳곳에 사용됐다. 센터페시아엔 버튼이 많지만 연관성 높은 버튼끼리 묶은 후, 그룹별로 적당히 분리하고 배치해 산만하지 않다. 수납공간도 넉넉하게 갖췄다. 도어 트림엔 1.5ℓ 페트병이, 센터콘솔 아래엔 핸드백이 들어갈 정도다.

 

 

큰 차체와 2245kg의 무게 때문에 묵직한 감각을 예상했는데 의외로 움직임이 경쾌하고 활기차다. 부드럽고 매끈하게 도로 위를 달린다. 3m가 넘는 휠베이스 덕분에 고속 안정성이 뛰어나다. 서스펜션은 섬세하게 반응하며 반듯한 자세를 유지하고 자연스러운 하중 이동에 집중한다. 편평비가 낮은 22인치 광폭타이어를 끼웠는데도 불쾌한 충격이 전혀 없다. 네바퀴굴림이지만 뒷바퀴굴림차의 특성이 고스란히 드러나 핸들링 성능도 꽤나 짜릿하다.

 

 

보닛 아래엔 메르세데스 AMG의 V8 4.0ℓ 트윈터보 엔진이 들어간다. DB11 V8과 밴티지에도 들어가는 엔진으로 애스턴마틴 엔지니어들이 손봐 최고출력과 최대토크를 각각 40마력, 1.6kg·m 올려 550마력, 71.4kg·m를 낸다. 9단 자동변속기로 네 바퀴를 굴려 시속 100km까지 가속을 4.5초 만에 달린다. 빠르게 달릴수록 네 바퀴가 노면에 착 달라붙어 든든한 기분까지 든다. DBX는 속도를 올릴수록 댐퍼의 움직임이 점점 줄어들고 차체 높이가 서서히 낮아진다. 주행 상황에 맞춰 댐핑값과 차체 높이를 조절하는 3 체임버 에어 서스펜션 덕분이다.

 

DBX의 하이라이트는 코너를 빠르게 달릴 때도 유지되는 안락함이다. 안락함의 비밀은 토크 벡터링과 기존 안티롤 바를 대체하는 48V 전자식 안티롤 제어 시스템에 있다. 보통 SUV를 타고 코너를 빠르게 돌아나가면 큰 덩치와 높은 무게중심 때문에 차체 쏠림 현상이 있다. 하지만 DBX는 코너에서 차가 기울기 시작하면 전자모터가 코너의 바깥쪽과 안쪽에 있는 서스펜션에 역비틀림 토크를 발생시켜 차를 평평하게 만든다. 어느 정도로 평평하게 만드냐고? 밴티지보다 쏠림 현상이 적다. 덕분에 연속된 코너를 마음껏 내달려도 불안감이 적다.

 

 

아쉬운 게 있다면 뒷바퀴 조향 시스템이 빠졌다는 점이다. 5m가 넘는 차체의 회전반경이 너무 크다. 더군다나 휠베이스도 3m가 넘는다. 유턴할 때도 넉넉히 4차로는 필요하고, 비좁은 골목길이나 아파트 주차장 등을 빠져나올 때 앞부분을 긁힐까 노심초사하게 된다. 그만큼 기동성이 떨어진다는 이야기다. 하지만 실망하기엔 아직 이르다. 애스턴마틴은 에디션이라는 이름으로 끊임없이 개선된 모델을 내놓는 브랜드로 유명하니 다음 개선 모델에서 뒷바퀴 조향 시스템을 간절히 기원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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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EDIT

EDITOR : 김선관 PHOTO : 박남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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