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LUMN

전기차는 왜 레트로 스타일로 디자인할까?

요즘 전기차 디자인이 수상하다. 새롭게 선보이는 전기차에 레트로 분위기가 물씬하다. 그렇다면 앞으로의 전기차 디자인 트렌드는 레트로일까?

2021.03.30

 

레트로는 대세가 될 수 없다

레트로 디자인은 여러 면에서 새롭지 않다는 점이 특징이다. 과거의 디자인을 재해석한 결과라는 점에서 이미 존재하는 것에서부터 시작한다는 점이 그렇고, 흔히 ‘유행은 돌고 돈다’고 하듯 자동차업계에서 중요한 주제로 다룬 과거가 있다는 점도 그렇다. 전기차 시대에 레트로 디자인을 내세우는 제품들이 등장하고 사람들의 관심을 끄는 과정 역시 비슷한 패턴이 반복되는 측면이 있다. 물론 완전히 똑같은 패턴의 반복은 아니다. 과거 레트로 디자인이 유행하던 시절과는 자동차에 쓰이는 기술과 자동차를 둘러싼 환경이 다르기 때문이다.

 

현대 디자인의 기본 개념은 오랫동안 ‘형태는 기능을 따른다(Form follows function)’는 것이었다. 그러나 대량 생산과 대량 소비 기반의 제품 생태계에서는 기능을 우선하다 보면 형태가 비슷해지는 경우가 많았다. 특히 각종 규제와 소비자의 요구가 제품에 반영되면서 시간이 흐를수록 디자인의 차별화는 어려운 과제가 됐다. 그런 맥락에서 ‘형태는 감성을 따른다’는 개념이 차별화의 돌파구를 마련해 20세기 말을 전후로 그 바탕 위에서 레트로 디자인이 주목받을 수 있었다. 이런 패턴은 전기차 시대에도 다르지 않다. 감성에 뿌리를 둔 접근이기 때문이다.

 

레트로 디자인은 기성 자동차 업체들이 신생 전기차 업체들과 차별화하기 좋은 수단이기도 하다. 과거의 성공적인 디자인을 현대적으로 되살림으로써, 한편으로는 역사와 전통을 미래로 이어간다는 이미지를 보여줄 수 있고 다른 한편으로는 신기술의 이질감을 상쇄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일부 신생 전기차 업체들이 레트로 디자인을 내세우는 것도 맥락은 비슷하다. 익숙한 옛 차들의 이미지는 새 브랜드와 제품의 낯선 이미지를 누그러뜨리는 수단이 될 수 있다.

 

피아트 126을 기반으로 디자인한 피아트 126 비전

 

그럼에도 레트로 디자인이 과거와 다른 패턴으로 이어지리라고 예상하는 데에는 나름의 이유가 있다. 우선 자동차 관점에서 보면, 전기차는 기존 내연기관 기반 자동차에 비해 디자인의 자유도가 높은 편이다. 그러나 본질적으로는 이동수단인 만큼 성격은 달라도 구조적 한계는 있다. 반드시 한 번 충전으로 먼 거리를 달려야 하는 차라면 당연히 기능과 효율을 크게 고려해야 한다. 용량이 큰 배터리를 얹는 것뿐 아니라 배터리 무게를 상쇄할 수 있도록 경량화해야 하는 한편 공기저항도 최소화해야 한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그런 차들에서는 여전히 기능이 형태를 좌우한다.

 

반면 실용적인 범위를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면 효율을 타협할 수 있는 차들도 있다. 예를 들어 빠른 속도를 내지 않아도 되거나 굳이 먼 곳에 가지 않아도 되는 차들이 그렇다. 오프로더 성향의 SUV나 픽업트럭, 도시형 소형차가 대표적이다. 그런 차들은 기능과 효율이 중요한 차들에 비해 레트로 디자인을 반영하기가 유리하다. 이렇듯 레트로 디자인을 효과적으로 구현할 수 있는 영역은 전체 자동차의 일부일 뿐이다.

 

더 중요한 것은 자동차 사용 환경의 변화다. 지역과 세대에 따른 소득의 양극화, 메가시티의 확대와 교통 인프라의 변화 등은 자동차 사용 행태에도 영향을 주고 있다. 자동차를 소유하려는 사람들에게는 취향이 중요한 구매 결정 요소가 되겠지만, 취향이 구매와 사용을 좌우하지 않는 사람들에게는 레트로 디자인이 충분한 설득력을 얻지 못할 수도 있다. 그래서 레트로 디자인이 전기차 시대에도 자동차 디자인의 한 축이 될 수는 있어도, 자동차 디자인의 큰 흐름을 장악하기는 어렵다고 본다.

글_류청희(자동차 평론가)

 

 

트렌드 이기는 장사 없다

1971년 1월 28일 패션 디자이너 이브 생 로랑이 자신의 파리 살롱에서 선보인 1971년 봄/여름 컬렉션은 해당 자리에 참석한 패션 관계자들을 경악시켰다. 1940년대 스타일을 다시 불러온 그의 옷은 프랑스인에게 과거 나치에게 지배당한 시절을 연상시키며 프랑스 패션을 모욕했다는 맹렬한 비난을 받았다. 하지만 1940년대 프랑스에 머물지 않았던 이브 생 로랑에게 당시 스타일은 흥미로운 과거였다. 게다가 제2차 세계대전 전승국인 영국과 미국의 젊은이들은 이미 1930~40년대에 대한 관심을 가지던 상황이었다. 패션계에 떨어진 폭탄과도 같았던 이브 생 로랑의 1971년 컬렉션은 ‘회상하다’라는 의미의 단어, ‘레트로스펙티브(retrospective)’를 줄인 ‘레트로(Retro)’라고 불리며 전설이 됐다. 맞다. 우리가 복고풍이라 부르는 레트로의 기원이다.

 

하늘 아래 새로운 것 없다는 건 누구나 아는 사실. 사람들의 감성을 훔치고 소비를 부르는 디자인의 방향타는 요즘 과거를 향하고 있다. 다만 과거로 돌아가자는 복고주의적 성향은 결코 아니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처음으로 세계가 전쟁에서 벗어나며 베이비붐 세대가 출현한 이래 그들이 움직이는 취향의 동선은 새로운 트렌드가 됐고, 레트로는 1970년대 이래 인류가 집중적으로 쌓은 전 세계 사람들의 취향이 순환하는 규칙적인 현상이 됐다.

 

하지만 요즘 유행하는 레트로는 기존과 차이를 보인다. 1965년 이후 태어난 포스트 베이비붐 세대에게는 자신이 젊은 시절 소비하던 옛 것에 대한 향수에 가까운 레트로가 1980년대 초반~1990년 중반 출생한 밀레니얼 세대와 1990년대 중반~2000년대 초반 출생한 Z세대 등 새로운 소비의 주축인 MZ 세대에겐 완전히 새로운 문화적 경험으로 인식되기 때문이다. 디지털 환경에 익숙하고 남과 다른 이색적인 경험을 추구하는 MZ 세대는 다양한 트렌드에 거부감 없이 접근하는 게 특징이다. 그들에게 1970년대 이후 사회에 출몰한 모든 문화적 현상은 플랫하고 편리한 디지털 경험에 비해 다소 복잡하고 손이 가지만 그만큼 신선한 가치를 선사한다. 이런 태도를 토대로 과거를 현대에 맞게 새롭게 해석하는 움직임이 바로 ‘뉴트로(Newtro)’다. 결국 2021년은 소비 주축 세대들이 각자 상황에 맞게 과거를 소비하는 시대다.

 

전기차로 부활한 르노 5

 

이런 경향은 전 영역에 걸쳐 나타나는데 유독 흥미로운 분야가 전기차다. 자동차도 디자인의 산물이고 취향의 대상인 만큼 현재 광풍이 부는 레트로에서 결코 자유롭지 못하다. 하지만 자동차에서 분리되지 못한 채 ‘자동차 인간’이 되어버린 상황에서 당대 기술의 산물인 자동차는 미래지향적인 성격을 지니는 게 생리다. 커브를 그리며 급속히 미래화되는 2020년대라면 더욱더. 전기차는 1886년 칼 벤츠가 발명한 자동차가 100년 넘게 성스럽게 여기던 내연기관을 격침시키는 게임 체인저다. 이 혁명적인 대상에는 미래지향적 디자인이 어울릴 터인데 도리어 과거로의 회귀라니!

 

이런 의문에 대한 답은 크게 세 가지로 정리된다. 첫 번째, ‘트렌드 이기는 장사는 없다.’ 수익을 추구하는 기업 입장에서 트렌드에 벽을 치고 고집을 부리는 건 사지로 나가는 지름길이다. 미래적인 이미지의 전기차라도 결국 자동차라는 상품의 하위 체계다. 과거의 유산이 대중을 매혹시키는 상황에서 대세를 위배하기란 힘겨운 일이다. 두 번째, 2등 시민으로 추락한 기존 자동차 메이커에게 ‘과거는 곧 자산이다.’ 형태가 기능을 따라가듯, 내연기관이 없어지고 배터리가 동력이 된 새로운 구조에 알맞은 디자인은 어떤 제한 사항 없이 자유롭게 제안되고 있다. 테슬라를 필두로 한 전기차 업체로 인해 전기차 시장에서 순식간에 2등 시민으로 추락한 전설적인 자동차 메이커들은 자신들이 지금껏 쌓아왔던 디자인 유산에서 새로운 아이디어를 캐내고 있다. 오랜 시간과 노력을 통해서만 얻을 수 있는 디자인 아카이브를 탐험하며 레트로 혹은 뉴트로에 걸맞게 구현하는 것은 전통적인 자동차 브랜드의 생존 방법이다.

 

마지막으로 ‘전기차는 아직 무서운 짐승이다.’ 내연기관 자동차는 100년 넘는 세월을 통해 전형적인 무드를 확립해왔다. 사람이 타는 기계라는 점에서 안전성을 최우선으로 잡고, 그 경계 안에서 수많은 천재들의 창조력이 빛을 내뿜은 결과다. 하지만 전기차는 아직 안정성이 답보되지 않은 첨단 기계이며, 사람들에게 각인된 자동차의 일반적인 인터페이스를 전복시키는 놀라움에 뿌리를 두고 있다. 이런 새로움은 늘 인류의 호기심과 공포심을 자극했고 생명과 직결된 대상에겐 보수적인 시선이 따라다닐 수밖에 없다. 편리하지만 제어하지 못하는 미래와 불편하지만 제어할 수 있는 과거 중 익숙하고 안전한 이미지를 풍기는 쪽이 유리한 이유다. 그래서 이들은 뉴트로 디자인을 통해 자신의 전성기를 자연스레 호출하며 전기차 대중화에 박차를 가하려 하고 있다.

 

찬사가 따르는 혁신적인 디자인은 대부분 당대의 호응을 얻는 데 실패하고 위대한 선례로 남곤 했다. 대중이 만질 수 있는 첨단 기술의 집약체 전기차가 도리어 20세기 이미지에 기대는 현상은 미래와 과거, 위험과 평화 사이를 떠도는 인간의 불완전성과 아이러니를 잘 보여준다.

글_전종현(디자인·건축 저널리스트)

 

현대 아이오닉 5는 포니의 실루엣과 디자인 요소를 담고 있다

 

아이오닉 5가 무슨 레트로라고!

2019년, 독일 프랑크푸르트에서 현대가 전기 콘셉트카 45를 공개했을 때 미디어는 말했다. “현대차는 첨단 사양과 포니의 복고풍 디자인이 더해진 새로운 개념의 전기차를 선보였다.” 직선의 패스트백 스타일이라는 점, C 필러 형태가 비슷하다는 점이 포니의 유산으로 거론됐다. ‘레트로 해치백’이라는 말도 나왔다. 다른 기사는 말했다. “클래식카 디자인과 최첨단 전동화 기술이 합쳐진 ‘뉴트로’ 대세에 현대차도 EV45를 통해 합류했다.” 심지어 ‘포니의 환생’이라고도 했다.

 

혼다가 어반 EV 프로토타입을 공개한 것도 2019년이었다. 어반 EV 프로토타입은 양산형 혼다 e로 이어졌다. 1970년대 시빅 해치백의 충실한 재해석, 머리가 다 맑아지는 레트로였다. 내연기관은 전기모터로 바뀌었다. 형태는 유지하고 크기를 키웠다. 그때는 당연했던 직선은 살짝만 부드럽게 다듬었다. 1970년대의 일상과 2021년의 일상, 그 시간만큼의 역사가 그 작은 차체에 다 녹아 있었다. 1970년대에 시빅을 첫 차로 가졌던 누군가에게 혼다 e는 다시금 갖고 싶은 차가 될 수 있었다. 지금 혼다 e를 갖고 싶은 누군가에게는 브랜드 헤리티지를 상기시키는 훌륭한 도구가 될 것이었다.

 

혼다 e는 초창기 혼다 모델에서 영감을 받아 디자인됐다

 

없던 시도가 아니었다. 전기차는 디자이너에게 자유를 선물하는 플랫폼이자 미래였다. 아름다웠던 과거의 디자인 요소들이 다양한 시도로 소환됐다. 미니 같은 브랜드는 크게 손을 댈 필요가 없었다. 디자인 헤리티지를 놓친 적이 없기 때문이다. 그렇게 미니 일렉트릭이 안착했다. 재규어는 E 타입 제로를 만들었다. 목적은 달랐지만 의도는 같았다. 미래의 플랫폼에 과거를 입혔다. 디자인 헤리티지를 섞었다. ‘그 시절’을 아는 세대와 모르는 세대를 동시에 매혹하기 위한 것이었다. 알파모터스 같은 스타트업도 레트로 무드의 전기차 에이스를 선보였다.

 

알파모터스 에이스는 1970년대 스포츠카 느낌을 자아낸다

 

레트로의 새로움은 대비에서 온다. 을지로, 서촌, 익선동 같은 동네가 새롭게 느껴지는 이유는 그 동네의 외피에 과거의 자연스러움이 살아 있기 때문이다. 동네의 익스테리어는 과거인데 인테리어와 심장이 새로워졌기 때문이다. 과거의 생명력을 자연스럽게 잇는 방법이고 세대가 융합하는 흐름이며, 시간이 시대를 극복하는 비결이기도 하다. 게다가 도시는 한 방향으로만 진화하지 않는다. 어떤 구역이 레트로라면 다른 구역은 전위적으로 미래를 정조준한다. 자동차 시장도 마찬가지다. 과거와 미래, 레트로와 아방가르드가 종횡으로 뒤섞여 있다. 어떤 시도도 자유로울 수 있는 시대. 혼다 e와 메르세데스 벤츠 비전 AVTR이 공존하는 시대라는 뜻이다.

 

현대의 45는 아이오닉 5의 양산으로 이어졌다. 아이오닉 5에게도 그런 자유가 있었다. 시원한 직선과 강직한 볼륨에는 아이오닉이라는 브랜드의 새로운 디자인 언어를 구축하려는 힘도 충만했다. 하지만 그게 정말 레트로일까? 레트로, 헤리티지, 환생이라는 거창한 단어보다는 ‘영감을 받았다’는 겸손이 어울릴 디자인이 아니었을까? 레트로가 유행이니까 어떻게든 녹여내고 싶은 강박으로서의 마케팅. 포니라는 중요한 헤리티지의 인색하고 섣부른 소비였다. 얼굴에 점을 찍고 다른 사람이라고 우기던 옛날 드라마 같았다. 현대에게 필요한 건 강박이 아니라 존중, 스스로에 대한 자존감 아닐까? 브랜드의 과거와 미래에 동시에 찬사를 보내고 싶었다면 아이오닉 5라는 제목 옆에 한 줄만 보태면 될 일이었다. ‘Inspired by PONY’라고.

글_정우성(칼럼니스트, 더파크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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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DITOR : 서인수PHOTO : 셔터스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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