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못생긴 자동차를 소개합니다

팔려고 내놓은 것 맞아? 에디터와 필자가 지극히 주관적으로 못생겼다고 생각하는 역대 양산차를 꼽았다

2021.04.12

(왼쪽부터) 부가티 디보, 닛산 쥬크, 인피니티 QX80

 

유재석이 유재석이 아니었다면?
부가티 디보

현존하는 최고의 슈퍼 럭셔리카 브랜드는 부가티다. 단지 최고 성능의 슈퍼카를 만들고 있어서가 아니다. 세상에서 가장 비싼 차를 팔기 때문도 아니다. 부가티라는 브랜드에는 파란만장한 112년의 역사 속에 명차의 전통과 레이싱의 유산이 켜켜이 쌓여 있기 때문이다. 특히 타입 41 로열과 타입 57 애틀랜틱 같은 모델은 시간이 지날수록 가치가 높아지는 역사적인 자동차다.

 

1963년에 파산이라는 고통을 견뎌낸 부가티는 1987년 이탈리아에서 부활했다. 이때 나온 게 마르첼로 간디니가 디자인한 EB 110이다. EB 110은 1991년 데뷔 당시 세상에서 가장 강력한 자동차로 역사에 이름을 남겼다. 그리고 2005년 등장한 베이론이 그 전통을 이어받았다. 양산차 최초로 최고출력 1000마력을 넘기며 새로운 시대를 열었다. 이러한 유산을 기반으로 부가티는 기본 가격 150억원의 슈퍼카 라 부아튀르 누아르도 당당하게 출시할 수 있는 브랜드로 도약했다.

 

기본가 70억원에 달하는 부가티 디보 역시 이러한 자신감의 발로다. 디보는 최고 성능의 슈퍼카를 선보이고자 부가티가 작심하고 만들었다. 부가티의 어떤 모델보다 빠르다. 특히 트랙에서. 그 때문에 디자인 역시 오롯이 달리기에 집중했다. 최고속도에서 다운포스가 456kg이나 발생할 만큼 심혈을 기울였다. 수치상으로 시론보다 90kg이나 높다.

 

성능에 집중한 탓일까? 디보는 아무리 봐도 못생겼다. 물론 이 말에 동의하지 않는 사람이 훨씬 많을 거다. 하지만 디보가 세계 최고의 슈퍼 럭셔리카 브랜드인 부가티의 한정판 모델이 아니었다면 어땠을까? 중국 체리나 둥펑의 양산형 모델이었어도 그렇게 생각할까? 사실 브랜드의 지위와 의미는 역사와 산업계, 업적, 사회적인 인식 등이 어우러지며 형성되는 관계에 따라 결정된다. 이로 인해 종종 합리적인 판단이 어려워질 정도다. 특히 브랜드의 지위가 극단에 위치할 때 이러한 경향은 더욱 심화된다. 물론 그 의미라는 건 끊임없이 이어지고 형성되는 관계 속에서 매번 새롭게 규정되고 변화한다. 그리고 그 지위는 개인의 경험과 인식에 따라 또 달라진다.

 

부가티라는 브랜드의 지위는 지금 세계 최고의 슈퍼 럭셔리카 제조사다. 하지만 지위가 형성되는 구조에 변화를 준다면 어떨까? 이를테면 전 세계에 자동차 브랜드가 부가티 하나뿐이었다면, 혹은 자동차 제조사가 부가티와 롤스로이스뿐이었다면 우린 부가티의 지위를 어떻게 인식할까? 그때도 우리는 부가티를 세계 최고 브랜드로 여길까?

 

디보의 디자인을 폄하하려는 마음은 전혀 없다. 최고 성능을 구현한 엔지니어링으로 짙게 물든 디보의 모습은 충분히 인상적이다. 다만, 인식의 본질을 구조주의적으로 해석한다면 우리의 판단이 좀 더 합리적일 수 있다는 것을 잊지 않으면 좋겠다. 그 때문이다. 지금 이 순간만큼은 부가티 디보가 좀 못생겨야겠다.

글_고정식

 

 

잘생겨 보이려는 노력만 예쁜 차
닛산 쥬크

굶주린 염소를 본 적 있는가? 못 봤다면 닛산 쥬크와 닮았다는 것만 알아두자. 닛산 쥬크의 V형 전면 그릴은 ‘야물야물’ 우는 염소의 입매처럼 경망스럽다. V자 꼬리 끝에 위치한 가느다란 헤드램프와 그 아래 있는 동그란 헤드램프의 조합 역시 기괴하다. 하지만 얼굴을 잊고 후면과 측면만 본다면 ‘트렌디’하다. 측면의 캐릭터 라인은 과감하게 치솟아 테일램프로 이어지고, 테일램프는 정과 쇠로 다듬은 것처럼 날카롭다. 후면과 측면을 장식한 건 날카로운 선들이다. 이 선들이 부각되며 입체적인 면이 생기고, 결과적으로는 소형 SUV의 존재감을 강조한다. 색을 달리하며 낮게 설계한 지붕은 스포일러까지 장착해 스포티한 멋도 난다. 그런 점에서 닛산 쥬크는 대학 신입생 같다. 무신사 추천 코디를 따라 그대로 입고, 머리도 비싼 돈 들여서 펌까지 했는데 얼굴만은 어쩌지 못한 상태. 그렇다. 문제는 얼굴이다. 전면은 아무리 봐도 이상하다. 닛산이 고집하는 V형 그릴 디자인은 세단에서는 봐줄 만했지만 보닛이 높은 소형 SUV에 적용하자 V라인이 좁고 길어졌다. V라인이 넓은 형태인 윗급 SUV(패스파인더, 로그)는 되레 듬직한 인상인 것을 보면 문제는 좁고 긴 V라인에 있다. 버릴 수 없는 V라인이 원인이고, 양옆의 째진 눈과 동그란 램프가 못생김을 완성한다. 이 정도면 더 이상 쥬크의 못생김을 설명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이제부터는 못생긴 쥬크를 꾸미느라 애쓴 디자이너들을 칭찬할 차례다. 쥬크의 디자이너들도 쥬크가 못생긴 걸 알았던 것 같다. 못생김을 극복해보고자 치장한 흔적이 역력하다. 일본차들의 특징인 날카로운 선들이 그렇고 화려한 휠, 투톤 컬러의 안정적인 조합도 고민 끝에 나온 결과일 것이다. 실내는 공격적이다. 대시보드를 뒤덮은 폭넓은 가죽 마감, 강렬한 컬러 사용, 다채로운 버튼과 예쁜 송풍구 디자인 등 노력 많이 했다. 대화를 나눈 적은 없지만 디자이너들의 고뇌가 얼마나 깊었는지 느껴진다. 디자이너들이 최선을 다했지만 전면 디자인은 넘을 수 없는 벽이었을 것이다. 아마 그 벽은 전통성이다. 전통은 이어가는 것만큼이나 파괴도 필요하다. 전통이 구식이 되었다면, 더는 아름답지 않다면 변신을 시도해야 한다. 아니면 새로운 유형을 창조해도 될 테고. 이유는 알 수 없지만 우리는 관습을 따라야 하는 순간들이 있다. 부정적인 관습이어도 따라야만 한다면 다른 영역에서 최선을 다하는 수밖에 없다. 닛산 쥬크에는 최선의 노력이 담겨 있다. 그래서 못생겼지만 예쁘다.

글_조진혁(<아레나> 피처 디렉터)

 

 

허락되지 않은 피지컬
인피니티 QX80

왜 동양인은 헤비급에서 성공할 수 없는가. 체급이 있는 스포츠 마니아라면 한 번쯤 궁금했을 주제다. 일단 헤비급 자원 자체가 부족하다. ‘세계 평균 키 순위’류의 조사 결과를 보면, 아시아 1위는 남녀 모두 대한민국이다. 나머지는 우리보다도 작다는 얘기.

 

어떻게든 ‘살크업’을 통해 파워를 보강해도, 가느다란 프레임에 버거운 몸체를 얹어놓은 양 운동 능력이 떨어진다. 기본 자원이 부족하다 보니 헤비급에 특화된 트레이닝 노하우나 데이터베이스도 부족하다. 갑자기 이 얘기를 왜 꺼냈냐고? 내가 QX80을 보며 느끼는 안타까움이 딱 이런 식이다.

 

축소 지향의 일본인들에게 대형 SUV는 일본인 메이저리거 다르빗슈처럼 나오기 힘든 존재다. 인피니티 QX80뿐 아니라 렉서스 LX, 토요타 세쿼이아, 닛산 아르마다 등이 북미의 링에 섰지만 성과는 미미했다. 원래 이 시장은 일본차에 관대하지 않나? 과거엔 토요타 캠리와 혼다 시빅 등 세단이, 최근엔 토요타의 RAV4나 혼다 CR-V 등 준중형 SUV가 인기를 끌고 있다. 다만 풀사이즈 SUV만큼은 GM과 포드, FCA 등 미국 브랜드의 아성에 흠집도 내지 못하는 상황. 일단 QX80의 경쟁자를 보면 링컨 내비게이터와 캐딜락 에스컬레이드, 유럽 브랜드로 확대하면 메르세데스 벤츠 GLS, 랜드로버 레인지로버, BMW X7 등으로 빈틈이 없다. QX80 입장에선 고급감과 주행감 모두 ‘무리데스’다. 외모는 더더욱.

 

QX80의 디자인 언어는 인피니티 차종 전반에 흐르는 기조와 결을 같이한다. 특유의 더블 아치 그릴, 사람의 눈을 형상화했다는 헤드램프, 초승달 모양의 C필러 등. 자연을 모티브로 한 우아한 곡선이 이 회사의 정체성이니까. 놀라울 정도다. Q30이나 QX30, Q60 등에서 그렇게 멋져 보이던 얼굴이 SUV에선 그렇게 멍청해 보이다니!(나는 이 디자인 언어의 한계점이 QX50까지라고 생각한다. 딱 QX60부터 끔찍해진다.)

 

분명 알폰소 알바이사가 모방했던 ‘자연’은 동양의 동산이었을 것이다. 알프스나 요세미티의 깎아지른 절벽이 아니라는 얘기다. 뒷동산의 곡선을 대간(大幹)처럼 부풀린 결과물. 결국 이 차의 못생김은 한 네티즌의 평으로 정리된다. “앞모습은 벨루가, 뒷모습은 프랑켄슈타인.”

 

미와 추는 주관적이다. 다만 QX80은 동방에 허락되지 않은 것들을 떠올리게 만든다. 선천적인 파워와 피지컬 같은. 정신력이나 집단주의 없이도 살아갈 수 있게 해주는 타고난 조건들 말이다. 그래서 QX80은 못생겼다.

글_원호연(<애비뉴엘> 피처 에디터)

 

(왼쪽부터) 쉐보레 스파크, 쌍용 액티언

 

열등감이라는 늪
쉐보레 스파크

먼저 두 가지를 밝힌다. 난 간결하고 담백한 디자인을 선호한다. 그리고 작은 차를 좋아한다. 두 가지 조건만으로 어떤 자동차가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지 짐작할 게다. 맞다. 국산 경차다. 그중에서도 쉐보레 스파크. 사실 기아 모닝도 마찬가지긴 하다. 둘 다 못생긴 작은 차로 우열을 가리기 힘들다. 그중에서 쉐보레 스파크를 다루는 건 기대가 큰 만큼 실망도 커서, 작은 차 디자인의 어떤 본을 보여준 마티즈의 후예라서. 스파크는 참담하게 망가졌다. 이건 디자인 취향 얘기가 아니다. 방향성의 오류이자 전략의 참사다.

 

스파크의 디자인은 열등감에서 기인한다. 자기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지 못하고 과시한다. 그 열등감에 몸부림치는 과정이 디자인에 고스란히 배어 있다. 스파크 디자이너에게 아들러 심리학을 알려주고 싶다. 일단 아들러 심리학을 다룬 베스트셀러 <미움받을 용기>부터 권한다. <미움받을 용기>는 아들러 심리학에 기초해 자기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공동선을 향해 나아가는 삶의 방식을 제시한다. 이때 열등감을 극복하는 일이 중요하다. 열등감은 생활양식의 근본을 결정한다. 스파크의 디자인에 열등감이 반영된 것처럼. 열등감을 극복하려면 비교하지 않고 인정 욕구를 버려야 한다.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건 그 시작이다. 스파크는 작은 차라는 점을 인정하지 않았다. 거기서부터 디자인이 뒤틀렸다.

 

경차는 작다. 작아서 경차다. 어떤 수를 쓰더라도 그 사실에서 벗어날 수 없다. 스파크 디자이너는 그 사실을 잊었든가, 부인하고 싶었나 보다. 작은 차를 크게 보이려고 집착했다. 더불어 작다는 단어에 담긴 단점에만 주목했다. 그러니까 왜소함, 주눅 같은 비관적인 정서들. 이런 단점을 지워야겠다는 것에만 몰두해 하나씩 더했다. 열등감을 가리고픈 자기과시의 늪.

 

헤드램프는 더 이상 찢을 수 없을 만큼 옆으로 찢었다. 상대를 압도하겠다는 이유 없는 과시로 눈매도 날카롭게 매만졌다. 작은 차가 무언가를 압도해야 할 이유가 있나? 그럴 수는 있나? 물론 헤드램프를 양옆으로 찢는 디자인이 유행이긴 하다. 차체를 더욱 크고 당당하게 보이는 효과가 있다. 문제는 모든 자동차에 해당하는 말이 아니라는 점이다. 과도한 성형수술이 만든 폐해를 우리는 길거리에서 너무 많이 봐왔다.

 

얼굴이 작고 눈이 크다고 다 잘생겼을 리도 없다. 비율과 조화 없이 무작정 키우기만 하면 흉측해진다. 눈만 큰 외계인을 보고 미적 감흥을 일으킬 사람은 아무도 없다. ET는 눈이라도 동그랗잖나. 과한 헤드램프 디자인은 스파크의 열등감을 도리어 부각한다. 전체가 흔들린다. 결정적 실수도 저질렀다. 라디에이터 그릴을 기괴한 형태로 장식했다. 그릴 테두리에서 뻗어 나온 두 가닥 장식은 볼 때마다 흠칫, 놀라게 한다. 괴물의 촉수처럼, 혹은 흉측하게 불거진 핏줄처럼 전면 인상을 무너뜨린다. 총체적 난국이다. 열등감이 이렇게 무섭다.

글_김종훈(자동차 칼럼니스트)

 

 

이념 없는 못생김
쌍용 액티언

못생겼다는 건 어디서 오나. 일종의 미(美) 관념은 각자 살아온 환경과 경험에 따라 취합된 취향과 기준이다. 비슷한 문화와 환경을 공유한 집단에서 비슷하게 나타나는 경향이 있지만 대개의 ‘못생겼다’는 즉시 떠오르는 비이성적인 심상에 가깝다. 예컨대 오이를 극혐하는 사람이 왜 오이가 싫은지 설명할 수 없는 것과 “홍시 맛이 나서 홍시 맛이 난다고 한 건데, 왜 홍시 맛이 나냐고 물으시면”이라고 한 장금이의 현답과 같은 이치다.

 

내가 못생겼다고 거품을 무는 대상은 쿠페형 SUV다. 이제는 대중적으로 용인된 카테고리인 게 분명하지만, 쿠페형 SUV가 여태 이단이라고 생각하는 나 같은 사람도 적지는 않다. 존재 목적 자체가 각각 양극단에 있는 쿠페와 SUV를 한 몸에 욱여넣은 고집과 탐욕은 억척스러운 외관에서도 고스란히 나타난다. 등과 엉덩이를 잇는 부분을 날렵하게 깎아내린 덕분에 엉덩이는 억지스레 추켜올린 것처럼 보인다. 스테로이드로 몸은 불렸는데 코어 근육은 부실한 가짜 근육남 내지는 보형물을 과하게 넣은 킴 카다시안의 엉덩이를 보는 것 같다.

 

쿠페형 SUV 중에서도 정점을 찍는 건 쌍용의 액티언이다(액티언을 쿠페형 SUV에 넣지 말아야 한다는 목소리도 있지만). 쿠페와 SUV의 장점을 살린 모델들이 오늘에서야 가까스로 인정받는 것을 보면, 2005년에 나온 액티언이 쿠페와 SUV의 장점을 충분히 활용하지 않았단 건 불 보듯 뻔하다. 실제로 액티언은 못생김과 잔고장으로 판매가 심각하게 부진했다. 액티언은 엉덩이를 펌핑한 것도 모자라 각까지 줬다. 잔뜩 부풀렸는데 평평한 걸 동시에 해낸다. 펑퍼짐한 엉덩이와 다르게 앞에는 좁고 얇은 역삼각형 그릴을 넣어 못생김은 배가된다. 둔탁한 뒤태와 궁색한 얼굴에 동그란 눈물이 맺힌 것 같은 헤드램프는 또 어떤가. 덩치는 산만 한데 속은 개복치인 무능한 인간을 보듯 한숨이 나온다.

 

그런데 못생겼다고 다 끔찍한 것만은 아니다. 고대부터 이어져온 미학의 계보는 못생김 속에도 건져 올릴 만한 아름다움이 있다는 것에 전적으로 동의하고 있다. 바로 ‘추의 미(Beauty of Ugliness)’ 개념이다. 여기에 가장 부합하는 미술 경향은 17세기 유럽에서 만연했던 바로크 양식이다. 황금비율과 형이상학적 가치를 중시하던 그리스 로마 문화를 복원하려는 움직임인 르네상스가 ‘빛’에 주목했다면, 뒤이은 바로크는 이면에 있는 ‘어둠’의 양감에 천착한 미술 사조였다. 벨라스케스의 <시녀들>에서 볼 수 있듯 바로크 미술은 어두침침하고 어딘가 기괴하다. 그러나 바로크의 못생김은 ‘이상적인 것’에 길들여진 사람들의 마음에 돌을 던져 독특함과 참신함이란 파장을 일으켰다. 바로크는 기존의 질서와 통념을 비트는 것이었고, 그 기괴함에는 단순히 눈살을 찌푸리고 끝날 만한 것 이상의 깊이와 질감이 있었다.

 

내 기준에서 바로크의 영역, 그러니까 유의미한 못남 정도로 끌어안을 수 있는 쿠페형 SUV는 기껏해야 포르쉐 카이엔 쿠페와 BMW X6다. 못생김이 다수의 공감을 얻을 땐 파격, 혁신이 되지만 그렇지 못할 경우 조용히 사장된다. 그건 수많은 상품의 역사와 액티언의 말로가 증명한다. ‘새로움을 위한 새로움’과 ‘이념 없는 못생김’만큼 해로운 건 없다. 액티언은 둘 다에 해당한다. 쌍용에 중요한 시기에 단종된 액티언을 부관참시하는 건 미안하지만 우리는 언제나 질책과 반성을 통해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 더구나 무플보다 악플이 좀 더 낫지 않나? 

글_장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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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EDIT

EDITOR : 장은지PHOTO : Heyhoney(일러스트레이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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