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SSUE


SUV의 탄생이 궁금해?

‘찝차’라고 부르던 SUV가 자동차 시장을 점령하고 있다. 그런데 SUV는 대체 어디에서 왔을까? SUV의 원형은 과연 무엇일까?

2021.04.28

 

윌리스 MB

SUV라고 하면 공통적으로 떠올리는 이미지가 있다. 네바퀴굴림에 최저지상고가 높아 험로 주파에 뛰어나며, 해치백처럼 꽁무니가 싹둑 잘린 모습이다. 이런 스타일의 자동차가 탄생한 건 도로가 아니라 전장이었다. 지프 랭글러의 기원인 윌리스 MB가 태어난 곳이 바로 제2차 세계대전의 복잡한 소용돌이 속이었다.

 

제1차 세계대전 이후 세계 각국은 소형전술차의 필요성을 느꼈다. 미국 포트 베닝 기지의 육군보병위원회는 영국군이 정찰용으로 사용하던 기동성 좋은 차에 주목했다. 오스틴 7이었다. 오스틴 7은 아메리칸 오스틴 컴퍼니에서 라이선스 생산해 미국에서도 판매하고 있었다. 그리고 1938년 파산한 아메리칸 오스틴은 아메리칸 밴텀으로 부활했다. 아메리칸 밴텀은 펜실베이니아주 방위군에 오스틴 7을 석 대 제공하고, 이를 기반으로 정찰용 소형전술차를 개발해보자는 제안을 한다. 미군 관계자들은 밴텀의 공장에 방문해 실차를 살펴보고, 1940년 6월 소형전술차 개발에 대한 필수 사항 및 제원을 최종 확정한다. 연이어 미국 내 135개 자동차 제조사에 소형전술차 개발 건을 발주한다.

 

처음 응한 건 제안자인 아메리칸 밴텀이었다. 여기에 윌리스 오버랜드가 발주에 응했고, 포드도 뒤늦게 발을 들였다. 아메리칸 밴텀은 원형을 보유하고 있었던 데다 칼 폽스트라는 걸출한 엔지니어의 손길을 거쳐 불과 이틀 만에 설계를 완성했다. 하지만 윌리스 오버랜드와 포드는 입찰 기한을 맞추지 못했다. 두 회사는 아메리칸 밴텀의 원안을 보고 테스트카를 제작할 수밖에 없었다. 윌리스 MB의 바탕을 만든 건 윌리스 오버랜드가 아니라 아메리칸 밴텀인 셈이다. 세 모델은 1940년 11월 모두 테스트에 합격한다. 미군은 실전에서 테스트하고, 한창 전쟁 중인 영국과 프랑스, 러시아에 수출하기 위해 세 회사에 각각 1500대씩 주문한다. 세 모델을 하나로 통합해 표준화하기로 결정한 건 1941년이다. 이때 선정된 게 바로 윌리스의 MA였다. M은 Military, A는 첫 번째라는 의미였다. 실제 사용해본 군인들은 윌리스 MA를 가장 선호했다. 

 

셋 중 가장 강력했던 60마력짜리 고 데블(Go-Devil) 엔진 때문이었다. 미군 입장에서는 낮은 생산단가도 매력적이었다. 이렇게 선정된 윌리스 MA에 포드 GP가 보여준 괜찮은 아이디어를 더해 최종적인 소형전술차가 만들어졌다. 그게 바로 윌리스 MB다. MA의 개량형이라 A 다음 알파벳인 B가 들어갔다. 하지만 윌리스 오버랜드의 생산능력은 미군의 요구량을 감당할 수 없었다. 이로 인해 포드가 윌리스 MB를 라이선스 생산했다. 이 모델의 이름은 GPW다. 여기서 W는 윌리스 오버랜드를 의미한다.

 

제2차 세계대전에서 윌리스 MB의 활약은 실로 대단했다. 기동성은 물론 내구성과 정비 편의성도 뛰어났다. 

 

지프

지프의 기원이 윌리스 MB인 건 잘 알려진 사실이다. 그럼 지프란 이름은 어떻게 유래했을까? 여기엔 여러 가지 설이 있다. 첫 번째는 제1차 세계대전 중 미군들이 사용하던 속어에서 왔다는 설이다. 당시 미군들은 새로 들어온 병사나 장비를 속어로 지프라고 했다. 제2차 세계대전 중 실전에 처음 배치된 윌리스 MB도 마찬가지로 지프라고 불렀는데, 이게 통상적인 명칭으로 굳어졌다는 이야기다.

 

두 번째는 포드 GP에서 유래했다는 설이다. 소형전술차가 윌리스 MB로 표준화되기 전까지 포드가 미군에 테스트 및 실전 배치용으로 공급하던 모델의 이름이 GP였다. 정부(Government)에서 발주했다는 의미의 G, 당시 포드 내에서 휠베이스 80인치(2032mm)인 모델을 의미하던 일종의 코드명 P를 더해 만든 이름이 바로 GP였다.

 

세 번째는 <뽀빠이>라는 만화에 등장하는 반려동물의 이름 ‘유진 더 지프(Eugene The Jeep)’에서 왔다는 설이다. 유진 더 지프는 벽 타기는 물론 시공간마저 초월할 수 있는 미증유의 동물이다. 여기 빗대 어디든 갈 수 있는 차라는 의미에서 윌리스 MB를 지프라고 불렀다는 설이 있다. 네 번째는 이 모든 것들이 각기에서 다발적으로 발생하면서 지프라는 이름이 널리 쓰였다는 설이다. 

 

참고로 윌리스 MB를 지프라고 기록한 최초의 문서는 1941년 2월 발행한 <워싱턴 데일리 뉴스>다. 테스트용 윌리스 MA가 워싱턴의 의사당 계단을 오르는 모습을 촬영한 사진이 지면에 게재됐는데, 여기에 캐서린 힐리어 기자가 ‘Jeep Creeps Up Capitol Steps(지프가 의사당 계단을 기어오른다)’라는 설명을 붙였다. 지프라는 이름은 꽤 오랫동안 SUV의 대명사로 군림했다. 아이슬란드는 제2차 세계대전 이후부터 지금까지 모든 종류의 SUV를 예피(Jeepi)라고 부른다. 물론 지프 이름에서 유래했다.

 

윌리스 MB를 시초로 확장한 지프 패밀리. 지금도 SUV를 대표하는 브랜드로 확고하게 자리잡고 있다. 

 

 PTO로 로더와 버킷을 연결한 시리즈 1

 

랜드로버

랜드로버 역시 지프, 정확히는 윌리스 MB의 영향으로 탄생했다. 영국의 자동차 회사 로버는 원래 고급차 전문 브랜드였다. 하지만 제2차 세계대전의 여파로 고급차 수요가 줄었고, 철 같은 원자재는 수급이 제한됐다. 더군다나 로버의 코번트리 공장은 전쟁 중 폭격을 맞아 파괴됐다. 때문에 로버는 솔리헐에 있는, 과거에 전투기 엔진을 만들던 커다란 공장으로 이전했다. 하지만 독자적으로 운영하기엔 재정 상태가 썩 좋지 않았다. 그로 인해 몇몇 기업이 공장을 나눠서 써야 했다.

 

로버는 수익성을 재고하기 위해 작고 경제적인 자동차를 만들고자 했다. 시제품까지 만들었지만 수지 타산이 맞지 않았다. 이때 로버에서 엔지니어링을 총괄하던 모리스 윌크스는 대안으로 경량 다목적차를 구상했다. 초기에는 농경은 물론 폭넓은 활용성을 지닌 모델을 생각했다. 마치 메르세데스 벤츠의 유니목 같은. 솔리헐 공장을 나눠 쓰던 퍼거슨사가 TE20이라는 경량 트랙터로 성공적인 판매량을 올리는 모습에서 영감을 얻은 구상이었다. 하지만 로버는 자동차 회사였기에 트랙터를 원하진 않았다. 시제품의 기반으로 선택된 게 지프, 정확히는 윌리스 MB였다.

 

윈스턴 처칠의 80번째 생일을 기념해 만든 시리즈 

 

모리스 윌크스는 북웨일스 앵글시에서 개인 농장을 운영하고 있었다. 여기서 불용 군수품으로 풀린 윌리스 MB를 농경용으로 유용하게 이용하고 있었다. 이 모습을 본 그의 형 스펜서 윌크스가 윌리스 MB 같은 모델로 개발해볼 것을 제안했다. 사실 스펜서는 당시 모리스와 함께 로버를 이끄는 핵심 인물 중 하나였다. 모리스는 윌리스 MB를 기반으로 몇몇 장치와 로버의 파워트레인을 더했다. 여기에 유니목이나 트랙터처럼 다양한 장비를 달아 사용할 수 있도록 동력인출장치(PTO)를 옵션으로 제공해 1948년 일반에 출시했다. 그게 바로 랜드로버의 기원이 된 시리즈 1이다. 

 

시리즈 1의 프레임 보디는 각파이프로 만들었다. 일종의 튜블러 프레임으로 강성이 탁월했다. 차체는 알루미늄과 마그네슘의 합금으로 만들었다. 때문에 녹슬지 않았고 내구성도 뛰어났다. 이러한 고급 소재를 썼던 건 품질 때문이 아니었다. 전후 벌어진 철강 부족 현상 때문에 어쩔 수 없었을 뿐이다. 밝은 녹색이 시리즈 1의 상징이 된 것 역시 전쟁이 남긴 흔적이다. 전후 전투기 콕핏을 칠하기 위해 생산했던 밝은 녹색 페인트가 불용 물자로 풀리며 사용됐다. 

 

코란도 제품 발표회

 

쌍용자동차

신진자동차는 1969년 6월 카이저와 CJ-5 라이선스 생산 계약을 맺었다. 카이저는 1953년 윌리스 오버랜드를 인수하고 지프를 만들고 있었다. 두 회사는 당시 660만 달러의 자본재 도입 계약을 맺고 부산에 조립공장을 지었다. 1만1570㎡(3500평)로 당시 국내 최대 규모의 자동차 공장이었다. 이 공장은 1985년 8월 경기도 평택으로 이전하는데 그게 바로 현재 쌍용차 공장이다.

 

후문에 따르면 신진은 라이선스 계약을 했지만 도면은 제공받지 못했다. 때문에 당시 기술진은 실제 CJ-5를 공장에 갖다놓고 일일이 실측해 차를 완성했다고 전해진다. 신진은 1974년 AMC(American Motors Corporation)와 50:50의 지분으로 신진지프자동차라는 합자회사를 설립했다. AMC는 1970년 카이저를 인수했다. 모델명은 이전과 마찬가지로 신진 지프로 유지됐다. 직렬 6기통 3.8ℓ 가솔린 엔진이 들어간 건 이때부터다. 국내에서는 감당하기 어려울 정도의 저연비와 고성능이라 판매량은 바닥을 모르고 떨어졌다. AMC는 결국 1978년 지분을 회수하며 발을 뺐다. 상황이 어려워지자 신진은 판매처 확보에 매달렸고, 1980년 3월 리비아와 수출 계약을 맺기에 이른다. 그런데 리비아는 확고한 반미 국가였다. 이를 허용할 수 없었던 AMC는 지프의 상표 사용권을 박탈했다.

 

 CJ-5가 기반이라 7슬롯이 눈에 띄는 코란도

 

결국 1년이 지난 1981년 3월 신진지프자동차는 거화로 이름을 바꿨다. 차 이름을 교체한 건 1983년 3월. 이때 코란도란 이름이 처음 나왔다. 코란도는 ‘Korean do it(한국인이 해냈다)’과 ‘Korea land over(한국 땅을 넘는다)’, ‘Korean land dominator(한국 땅의 지배자)’라는 문장에서 철자를 조합해 만든 이름이다. 현재 우리가 알고 있는 유래인 ‘Korean can do’는 쌍용자동차가 더했다. 1984년 거화를 인수한 동아자동차를 쌍용그룹이 인수한 게 1986년이다. 이때 비로소 쌍용자동차가 출범했다.

 


 

 

1914년 7월 제1차 세계대전 발발

 

 

1914년 9월 마른 전투에서 참호전 양상 시작

1916년 11월  4개월 보름 동안 120만명의 사상자가 발생한 참호전, 솜 전투 종료

1918년 11월 제1차 세계대전 종전. 참호전의 비극 통해 각국 기동력과 화력 겸한 무기 개발 돌입

1931년 9월  만주사변 발생. 사실상 중일전쟁 시작

 

 

1934년 일본군, 정찰용 소형전술차 개발 발주

1934년 4월  아돌프 히틀러, 페르디난트 포르쉐 박사에게 소형전술차 개발 지시

 

 

1935년 미국 의회 ‘군의 재동력화(Remotorization)’ 의결

 

 

1936년 일본 토큐 쿠로가네 공업, 소형전술차 ‘타입 95’ 개발 완료 및 실전 배치

1938년 11월  독일의 소형전술차 퀴벨바겐의 시제품인 ‘타입 62’ 테스트 시작

1938년 아메리칸 밴텀 관계자, 미군 지휘관에게 오스틴 7 기반의 소형전술차 개발 제안

 

 

1939년 미군 다목적전술차 도입 계획 수립

 

 

1939년 9월  독일의 폴란드 침공을 시작으로 제2차 세계대전 발발

 

 

1940년 2월 독일, ‘퀴벨바겐’ 양산 시작 및 실전 배치

1940년 6월 미군, 소형전술차 필수 제원 및 요구사항 최종 확정

1940년 7월 미군, 미국 내 135개 자동차 제조사에 소형전술차 제작 발주

 

 

1940년 11월 아메리칸 밴텀의 BRC 60, 윌리스 오버랜드의 쿼드, 포드의 피그미, 테스트 시작

1941년 7월 미군, 윌리스 MA를 기반으로 소형전술차 표준화, 윌리스 MB 탄생

 

 

1941년 9월 포드, 윌리스 MB의 라이선스 생산 시작. 포드 GPW로 납품

1942년 4월 미군, 윌리스 MB에 대해 ‘군용차 보디’ 특허 출원. 특허권자는 윌리스 MB와 아무 상관 없는 미군 관계자

1943년 윌리스 오버랜드, ‘Jeep’ 상표권 등록

1944년 윌리스 오버랜드, 민수용 지프 개발 시작

 

 

1945년 7월  본격적인 민수용 모델 ‘지프 CJ-2A’ 생산 시작

 

 

1947년 영국 로버사, 윌리스 MB를 기반으로 한 농경 및 다목적 자동차 개발 시작

1948년 4월 암스테르담 모터쇼에서 랜드로버의 기원이 된 ‘시리즈 1’ 데뷔

1948년 미 연방거래위원회, 지프의 개발에 아메리칸 밴텀과 포드 등의 공로 인정. 지프 상표등록 취소

1950년 아메리칸 밴텀이 파산하며 지프에 대한 권리 윌리스 오버랜드로 귀속

 

 

1953년 4월 카이저 모터스, 윌리스 오버랜드 인수

1954년 10월 30년 가까이 생산된 지프의 최장수 모델 ‘지프 CJ-5’ 출시

 

1969년 6월 신진자동차, 카이저 모터스와 지프 CJ-5 라이선스 생산 계약

 

 

1970년 2월 AMC, 카이저 지프 코퍼레이션 인수

1970년 4월 신진자동차, 부산 주례공장에서 CJ-5 생산 시작

1974년 4월 신진자동차와 AMC, 50:50 지분으로 신진지프자동차 설립

1978년 AMC, 판매 부진을 이유로 신진지프자동차에서 지분 철수

1979년 3월 신진지프자동차, 신진자동차로 사명 변경

1979년 12월 하동환 자동차공업의 후신인 동아자동차, 경기도 평택공장 준공

1980년 3월 리비아와 신진지프 수출 계약 체결

 

 

1981년 3월 신진자동차, 거화로 상호 변경

1983년 3월 신진지프, 코란도로 이름 바꿔

1984년 12월 동아자동차, 거화 인수

 

1985년 8월 신진지프의 부산 주례공장, 동아자동차의 평택공장으로 이전

1986년 11월 쌍용그룹, 동아자동차 인수

 

1987년 6월 쌍용그룹, 영국 팬서 웨스트윈드 인수

 

 

1988년 3월 동아자동차, 쌍용자동차로 상호 변경

 

 

 

 

모터트렌드, 자동차, SUV 원형

페이스북 트위터 링크
CREDIT

EDITOR : 고정식PHOTO : 각 제조사 제공

모터 트렌드 ©motortrendkorea.com, ©motortrendkorea.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