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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퍼차저는 온당하다, 재규어 F 타입 R 컨버터블

폭발적인 반응과 화끈한 배기음. V8 슈퍼차저는 F 타입 R 컨버터블의 재미와 가치를 두 배로 높였다

2021.07.17

 

2012년 9월 5일, 난 영국의 한 시골길을 달리고 있었다. 재규어 F 타입을 만나러 가기 위해서였다. 재규어는 그해 파리 오토살롱에서 F 타입을 공개하기에 앞서 기자들에게 선보이는 자리를 마련했다. 하루라도 빨리 F 타입을 소개하고 싶은 마음이 컸던 걸까? 당시 재규어 디자인 수장이던 이언 칼럼은 그날 일일이 기자들을 만나 F 타입을 자랑하느라 바빴다. “F 타입은 정말로 디자인하고 싶었던 차입니다. 이런 차를 디자인할 수 있어 기쁩니다.” 환하게 웃으며 이렇게 말하던 그의 얼굴이 아직도 눈에 선하다. 

 

2019년 12월, 재규어가 F 타입의 페이스리프트 모델을 공개했다. 그 자리엔 새로운 디자인 수장 줄리언 톰슨이 있었다. 그리고 재규어는 재미있는 영상으로 F 타입의 귀환을 알렸다. 핫휠과 함께 제작한 작은 F 타입 모델카가 디자인 스튜디오를 누비다 실제 F 타입과 만나며 끝나는 영상이다. 그간 신박한 이벤트로 다양한 모델의 출시를 알렸던 재규어다운 영상이었다.

 

서론이 길었다. 재규어가 그 F 타입을 드디어 국내에 출시했다. 새로운 F 타입은 프런트 그릴이 커지고 헤드램프가 날렵해졌다. 보닛과 엉덩이도 살짝 부풀었다. 테일램프엔 각이 더해졌다. 하지만 우아하고 매끈한 실루엣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컨버터블 모델은 여전히 직물 지붕을 얹었다. 이언 칼럼은 하드톱이 스포츠카에 적합하지 않다고 누누이 말했다.

 

 

실내 구성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시트는 여전히 두 개뿐이며, 센터페시아 오른쪽에 운전석과 조수석을 나누는 듯한 바를 댄 것도 여전하다. 센터페시아 구성도 그대로다. 운전대엔 버튼이 고스란하다. 대신 운전대 너머엔 디지털 계기반이 놓였다. 12.3인치 디지털 계기반은 가운데에 둥근 엔진회전 게이지가 있고 오른쪽에 내비게이션 지도가, 왼쪽엔 차의 각종 기능을 조작하는 정보가 뜬다. 

 

 

시승차는 5.0ℓ V8 슈퍼차저 엔진을 얹은 R 컨버터블이다. 슈퍼차저는 배기가스를 활용해 힘을 불어넣는 터보차저와 다르다. 엔진 구동축에 벨트를 결합하고 압축된 공기를 엔진에 공급해 힘을 얻는다. 따라서 가속페달을 밟는 즉시 출력을 높일 수 있다. 재규어가 고성능 R 모델에 슈퍼차저를 얹은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게다가 F 타입 R은 배기량이 5.0ℓ에 달해 가속페달을 밟자마자 사나운 출력을 쏟아낸다.

 

엔진 소리가 쩌렁쩌렁한 가운데 쏜살같이 내달리는 맛이 짜릿하다. 시속 160km가 순식간이다. 최고속도는 시속 322km다. 그런데 사납게 몰아칠수록 고개가 자꾸 갸웃거려진다. 섀시가 출력을 온전히 받아낼 만큼 무르익지 못했단 기분이 들어서다. 엔진은 출력을 계속 쏟아내려고 하는데 섀시가 받쳐주질 못하니 차가 자꾸 움찔거린다. 

 

 

재규어는 안정성을 높이기 위해 F 타입 R에 네바퀴굴림 시스템을 하사했다. 여기에 모든 모델에 차체의 수직 움직임과 롤링, 피칭을 1초에 500번, 운전대 위치를 1초에 100번씩 모니터링해 댐핑 강도를 조정하는 어댑티브 다이내믹스를 내려줬다. 그래서 고속에서도 민첩하고 안정적으로 달릴 수 있다는 게 재규어의 설명이다.

 

하지만 네 바퀴가 노면에 들러붙어 묵직하게 내달리는 맛은 좀 부족하다. 고속으로 코너를 돌아나갈 땐 여지없이 언더스티어가 일어난다. 그렇다고 뒤가 심한 정도는 아니지만 슬쩍슬쩍 미끄러진다. 고속에서 코너를 안정적으로 돌아나가려면 운전대를 계속 정교하게 움직여야 한다. 이 과정이 조금 피곤하기도 하지만 내가 차를 운전한다는 기분은 확실히 느낄 수 있다.

 

그러고 보니 요즘 스포츠카에선 이런 기분을 좀처럼 느끼기 어렵다. 다양한 주행안정장비가 조금의 흐트러짐도 허용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가끔 ‘내가 진짜 차를 운전하는 게 맞나?’ 싶을 때도 있다. 그렇다면 재규어 엔지니어들이 원했던 건 원초적인 운전의 맛일까? 

 

 

그런 관점에서 쩌렁쩌렁한 배기음은 운전의 맛을 돋우기에 충분하다. 가속페달을 밟자마자 터지는 배기음에 가슴이 고동치는 건 나뿐이 아닐 거다. 새로운 F 타입에는 액티브 스포츠 배기 시스템이 얹혔다. 엔진 회전수가 높아지면 그에 맞게 배기음도 카랑카랑해진다. 지붕을 열고 포효하는 듯한 배기음을 듣는 건 또 다른 즐거움이다. 바람에 섞인 배기음이 날카롭게 고막을 찌르고 심장을 건드린다. 이보다 좋은 사운드가 또 있을까? 메리디안 오디오는 잠시 꺼두어도 좋다. 

 

함께 시승한 후배 기자가 이런 말을 했다. “과거엔 F 타입이 포르쉐 911과 견줄 만한 스포츠카라고 생각했는데 지금은 잘 모르겠어요. 다른 스포츠카가 급속도로 성장한 반면 F 타입은 그러질 못한 것 같아서요.” F 타입은 기존 고성능 스포츠카, 특히 독일산 스포츠카와는 확실히 결이 다르다. 나쁘게 말하면 완성도가 떨어진다고 느낄 수도 있다.

 

하지만 한 가지 확실한 건 슈퍼차저의 특징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는 스포츠카라는 점이다. 즉각적인 반응과 화끈한 배기음은 터보차저를 얹은 스포츠카가 결코 흉내 낼 수 없는 영역이다. 그래서 가치 있다. 비록 섀시가 아쉽긴 하지만 재규어만의 달리는 매력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다. 2025년부터 재규어는 더 이상 내연기관차를 만들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V8 슈퍼차저를 얹은 F 타입을 즐길 수 있는 날도 4년밖에 남지 않았다는 이야기다.

글_서인수(프리랜스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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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EDIT

EDITOR : 김선관PHOTO : 사진_장현우(장현우 스튜디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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