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LUMN


멸종한 공룡이 아니라 현실 속 용이 되기를

대배기량 자연흡기 엔진이 저무는 시대에 대하여

2021.08.18

아우디 R8

 

지난 100년 동안 내연기관은 달리는 자동차의 심장이자 근육이었다. 공기 중의 산소와 만난 연료에 불을 당겨 폭발을 일으키고, 그 힘으로 자동차를 앞으로 밀어냈다. 사람 머리 위 10km 정도로 쌓인 무게의 공기가 실린더 안에 생긴 진공의 빈틈으로 밀려 들어가는 자연흡기 엔진은 그 시작이자 절정이었다. 자연계에 존재하는 대기압을 이용해 공기를 흡입하는, 그래서 NA(Naturally Aspirated)라 불린 이 방식은 말 그대로 자연스러운 반응이 가장 큰 장점이다. 엔진 회전수가 올라가는 것에 비례해 출력도 늘어나고, 그에 따라 커지는 소리는 100년 동안 자동차를 운전하는 인간에게 각인된 현상이었다.

 

아우디 R8의 V10 5.2ℓ 자연흡기 엔진

 

자동차 배출가스가 지구온난화에 미치는 영향이 알려진 이후 자연흡기 엔진은 악당이 됐다. 더 적은 배기량과 연료로 더 높은 출력을 내는 과급 엔진의 시대가 온 것이다. 상황은 점점 더 나빠져 내연기관 자체가 악의 화신인 양 내몰리게 되었고, 자연흡기 엔진 중에서도 특히 대배기량 엔진이 박멸의 대상이 된 듯 싶을 때도 많다. 내연기관이 달린 자동차가 좋아 지금까지 자동차 일을 하는 입장에서는 매우 슬픈 일이다. 아끼던 반려동물이 차츰 사라지고 있는 데다 모두가 공격하는 박멸 대상이 된 느낌이랄까.

 

람보르기니 아벤타도르 LP750-4 SV의 V12 6.5ℓ 자연흡기 엔진

 

당장 국내만 하더라도 국산차와 수입차를 통틀어 3.0ℓ급 이상의 배기량에서 자연흡기 엔진을 찾기 쉽지 않다. 그랜저의 가솔린 V6 3.3ℓ와 LPi 3.0ℓ와 팰리세이드의 V6 3.8ℓ 엔진까지 현대차에 3종, 제네시스 G90에 V6 3.8ℓ와 V8 5.0ℓ의 2종 등 모두 5개다. 기아차는 K8에 둘, K9과 카니발에 각각 하나씩 모두 4종이 있을 뿐이다. 쉐보레는 트래버스와 콜로라도에 각각 하나씩, 카마로에 V8 6.2ℓ 엔진이 있어 모두 3종이다. 일찌감치 다운사이징에 들어간 르노삼성이나 쌍용자동차에는 V6 엔진 자체가 없다. 그러니까 국산차에서 6기통 3.0ℓ 이상의 엔진을 얹은 차는 딱 12대일 뿐이다. 수입차는 이런 경향이 더 심하다. 400종류가 넘는 차들이 팔리고 있지만 6기통 이상의 자연흡기 엔진을 얹은 차는 10% 미만이다. 일찌감치 터보차저 등 과급 엔진으로 돌아선 벤츠나 BMW 같은 브랜드에선 전멸이고 아우디 R8 V10이나 람보르기니의 슈퍼카들, 페라리의 812 모델, 캐딜락의 SUV들과 혼다의 미니밴 정도가 얼핏 눈에 들어올 뿐이다.

 

페라리 812 슈퍼패스트의 V12 6.5ℓ 자연흡기 엔진

 

어쩔 수 없는 변화라고 하기에는 개인적인 아쉬움이 크다. 특히나 자연흡기 고회전 엔진은 내연기관 기술의 정점이나 다름없다. 아무리 잘 다듬어도 과급 엔진은 공기가 강제로 들어오는 시점에서 급격하게 늘어나는 토크 때문에 민감한 제어가 쉽지 않다. ‘힘의 크기’인 폭발력은 상대적으로 적어도 회전수를 높여 ‘일의 양’인 마력을높인 대배기량 자연흡기 고회전 엔진은 오른발 끝의 변화가 차의 자세까지 바꿀 수 있을 정도로 민감하다. 즐거움의 크기뿐 아니라 종류가 아예 다르다. 때문에 아직까지 페라리의 플래그십인 812나 람보르기니의 정점 아벤타도르, 포르쉐의 트랙 전용 모델 중 최고봉인 911 GT3는 모두 대배기량 자연흡기 고회전 엔진을 쓴다. 이들이 뿜어내는 금관악기의 맑고 높은 울부짖음은 무엇으로도 대체할 수 없다.

 

람보르기니 아벤타도르 SVJ 로드스터

 

누군가는 공룡을 시대에 적응하지 못해 사라진 종으로 치부할지 모른다. 반면 누군가에게 공룡은 신화 속 하늘과 땅을 지배한 전설의 동물인 용처럼 여겨진다. 지금까지 공룡이 살아 있다면 그들은 용과 같이 숭배해 마땅한 대상이지 않을까? 자연흡기 대배기량 엔진도 마찬가지다. 과급 엔진과 전기모터의 시대에도 존재할 이유는 충분하다. 신화와 전설로 퇴장하기엔 아직 이르다. 100년 후에도 어느 자동차 회사의 카탈로그에 당당히 남아 있기를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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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EDIT

EDITOR : 이동희(자동차 칼럼니스트)PHOTO : 각 제조사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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