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EWCAR


지프의 첫 번째 전동화 모델, 랭글러 4xe

무서운 기세로 매캐한 매연을 내뿜으며 험로를 돌진하던 지프의 이미지는 이제 잊기 바란다. 실력은 그대로인데, 깨끗하고 조용하다

2021.09.09

 

가만 있어도 목줄기를 타고 땀이 줄줄 흘러내리는 무더위. 시원한 사무실에 앉아 있다가 지하주차장으로 내려가는 그 잠깐 사이 다시 이마와 목, 등과 가슴은 땀으로 흠뻑 젖고 말았다. 견디기 힘든 이 무더위를 단번에 날릴 방법은 딱 하나, 빨리 운전석에 앉아 시동을 걸고 에어컨을 켜는 것뿐이다.

 

어둑어둑한 지하주차장 구석에 서 있는 랭글러 운전석에 서둘러 앉아 시동 버튼을 눌렀다. 웬걸,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콧잔등에까지 땀이 맺히기 시작한다. 시동을 끄고, 다시 버튼을 누르는 순간 ‘아차!’ 싶은 생각이 들면서 민망함이 확 몰려왔다.

 

이 차는 지프 랭글러 4xe(‘포엑스이’가 아니라 ‘포바이이’로 읽는다. 사륜구동 4x4를 ‘포바이포’라 읽는 것과 같은 맥락이다). 지프 브랜드가 사상 처음으로 내놓은 플러그인하이브리드(이하 PHEV)이자, 퍼시피카 PHEV 이후 크라이슬러가 두 번째로 출시한 PHEV이다. 즉, 시동 버튼을 백날 눌러본들 지프스러운 우렁찬 시동음 따위는 날 리가 만무하다는 얘기다.

 

 

머쓱한 마음을 애써 누르며, 마치 처음부터 알고 있던 것처럼 태연히 주차장을 빠져나왔다. FM 라디오 주파수가 잘 잡히지 않을 정도로 깊은 지하주차장에서 지상으로 올라오기까지, 가끔씩 들려온 타이어 마찰음 외에는 정말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이런 지프가 있을 수 있나?’

 

랭글러 4xe는 직렬 4기통 2.0ℓ 가솔린 터보 엔진과 전기모터, 그리고 17kWh 용량의 배터리를 조합해 최고 375마력의 시스템 출력을 얻어낸다. 완충 상태라면 전기모터만으로 최대 33km(40마일) 정도를 주행할 수 있다는 게 브랜드의 설명. 불행히도, 국내에서는 공식 출시를 코앞에 둔 시점에 미리 시승을 했던 탓에 시승차의 배터리는 미처 완전히 충전되어 있지 않았다. 그래도 시동에서부터 주차장을 빠져나오기까지, 그리고 도로에 접어들어 저속으로 주행한 얼마간 마치 ‘지프 유령’처럼 달려본 것만으로도 충분히 놀랍고도 낯선 경험이었다.

 

보닛 맨 윗단에 맞춰 높이 자리 잡은 충전 플러그

 

놀랄 일은 더 있다. 지난해 9월 본고장 미국에서 사전 계약과 함께 처음 출시했던 랭글러 4xe는 올해 2분기 미국시장 전체에서 가장 많이 팔린 PHEV에 이름을 올렸다. 첫 물량 12000대 완판에 성공했는데, 토요타 프리우스 프라임보다도 앞선 수치였다. ‘지프와 전동화가 어울리기나 할까?’라던 의구심을 확신으로 바꾼 셈.

 

파워트레인 외에 다른 부분은 모두 우리가 익히 알고 있던 랭글러 그대로다. 굵직한 변속기 레버와 로 기어 레버, 대시보드 상단에서부터 마치 칼로 자른 듯 수직으로 뚝 떨어진 센터페시아 형상, 그 안에 커다랗게 자리 잡은 공조장치 조작 다이얼과 버튼들, 동승석 쪽 차체 앞부분에 보란 듯 서 있는 안테나, 심지어 풋 레스트가 없어 왼발을 어디에 둬야 할지 살짝 애매한 점까지 우리가 알고 있던 지프 그대로다.

 

배터리와 고전압 부품을 알루미늄 박스로 감싸 2열 시트 아래에 넣어두었다

 

외모에서의 차이점을 굳이 찾는다면 헤드램프와 지프의 상징 ‘세븐 슬롯 라디에이터 그릴’에 가미한 은색 장식, 그리고 차체 왼쪽 앞 펜더 윗부분에 자리 잡은 충전용 플러그 정도. 도하(渡河) 등 험로 주행을 감안해 높게 배치해놓은 충전 플러그 위치가 인상적이다.

 

2열 시트 쿠션 부분을 열어젖히면 보기에도 단단한 알루미늄 박스가 모습을 드러낸다. 내연기관 랭글러와의 차이는 바로 여기에서 다시 한번 확인할 수 있다. 배터리와 고전압 부품 등 민감한 핵심 요소들을 방수 알루미늄 박스로 밀봉해 2열 시트 아래에 넣어두었는데, 원래부터 높은 시트 포지션이라 전혀 어색하지 않다.

 

4xe의 배터리와 각종 배선은 방수 알루미늄 박스로 이렇게 꼼꼼히 감싼 덕에 물에 잠겨도 뽀송뽀송한 상태를 유지한다. 뿐만 아니라 가열과 냉각장치도 갖춰 어떤 기후에서든 제 성능을 유지할 수 있다. 시대의 흐름에 따라 PHEV를 내놓으면서도 대표적인 오프로더라는 정체성을 반드시 지키고자 했던 지프의 고심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또한, 다른 브랜드들에 비해 PHEV를 한참이나 늦게 내놓은 이유이기도 할 것이다.

 

고심의 결과는 꽤 근사하다. 앞서 말했듯, 깜짝 놀랄 만큼 조용한 것만으로도 ‘새로운 지프’라는 인식을 주기에 충분하다. 이 정도면 소음과 진동 때문에 지프를 불편하게 여기던 사람들일지라도 마음을 좀 더 열 수 있을 듯하다. 며칠을 운전하고 다녔음에도 피로감이 딱히 느껴지지 않았던 걸 생각하면, 전동화의 효과는 꽤 큰 셈이다.

 

 

대시보드 왼쪽 아래에는 하이브리드(HYBRID)와 일렉트릭(ELECTRIC), E-세이브(E-SAVE) 등 세 개의 버튼이 나란히 있다. 하이브리드 버튼을 누르면 엔진과 모터를 오가는 일반 하이브리드 모드로, 일렉트릭 버튼을 누르면 100% 전기모터만으로 주행한다. E-세이브 버튼을 누르면 100% 엔진만으로 주행하면서 배터리를 부지런히 충전한다. 이들 버튼을 눈에 쉽게 보이는 자리에 쓰기 편하도록 배치해놓은 건 다분히 지프답다.

 

지프는 험로 마니아들의 고집과 선입견과 의구심에 조심스레 도전했고, 그들의 첫 작품은 일단 상당히 만족스러워 보인다. 북미 PHEV 시장에서 곧장 1위로 직행했다는 사실은, 지프 충성고객층이 그만큼 두텁다는 의미이기도 하겠지만 동시에 ‘전동화와 재미’라는 어울리지 않는 두 가지 요소를 함께 누리고 싶어 하는 수요가 생각보다 많았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지프는 오는 2025년까지 전체 판매량의 70%를 하이브리드(PHEV 포함) 및 순수 전기차로 채우겠다고 공언했다. 더불어, 역시 2025년까지 지프브랜드의 모든 SUV 모델에 걸쳐 전기차를 내놓겠다는 계획도 공개했다.

 

 

만약 랭글러 4xe를 타보기 전이었다면, 지프의 그 같은 계획에 헛웃음을 지었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랭글러 4xe의 운전석에 앉아보고 나서는 그럴 수가 없었다. 랭글러 4xe는 ‘배출가스 없는 자유(Zero Emission Freedom)’를 향한 첫걸음에 불과했다. 랭글러 4xe에 이어 시장에 투입한 레니게이드와 컴패스 4xe는 이미 스텔란티스 그룹의 본거지라 할 이탈리아 PHEV 시장에서 올해 상반기 베스트셀러에 나란히 이름을 올렸다. 우리가 미처 눈치채지 못하는 사이에 지프의 전동화는 이렇게 진행되고 있었다.

 

그러면, 오는 9월 한국 시장에 공식 출시할 랭글러 4xe는 미국 시장에서처럼 바람을 일으킬 수 있을까? 나날이 다양해지고 있는 국내 전동화 모델 시장과 나름 탄탄한 지프 마니아층을 감안하면 얼마든 그럴 수 있을 듯하다. 반면, 과연 미국에서처럼 적극적인 전략을 펼칠 수 있을지를 생각하면 쉽지만은 않을 수도 있을 것 같다. 개인적으로는 좋은 성과를 기대한다. 

 

랭글러 4xe는 미국 시장에서 사하라와 루비콘의 두 가지 트림으로 판매 중이다. 국내 시장에는 랭글러 오버랜드 4xe와 오버랜드 파워탑 4xe 등 두 가지 이름의 트림을 선보일 예정이다.

 

지프, 랭글러, 랭글러 4xe, 하이브리드, 포바이이, PHEV, 시승기 

페이스북 트위터 링크
CREDIT

EDITOR : 김우성PHOTO : 스텔란티 코리아

모터 트렌드 ©motortrendkorea.com, ©motortrendkorea.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