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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이 차오른다

달의 음기가 차오르는 만추, 샤머니즘적 시선으로 본 달과 차

2021.11.08

 

서머싯 몸의 <달과 6펜스>에서 악마의 재능을 가진 한 중년 사내는 ‘달(이상)’의 마력에 이끌려 6펜스(현실)의 세계에서 기어코 탈출한다. 한승원의 시집 <달 긷는 집>의 달은 이태백이 뱃놀이를 하다 빠져 죽은 그 ‘달’이다. 고대 신화와 중세 설화에서 달은 악마 숭배와 자주 관계를 맺었다. 중세시대 사람들은 보름달을 보며 울부짖는 늑대의 모습을 보고 ‘달’이 인간의 정신을 홀리는 마력이 있다 믿었고, 음험하고 불길하다 여겼다. 미치광이를 의미하는 루너틱(Lunatic)의 어원은 ‘달(Lunar)’에서 발원한다. 해가 낮의 지배자라면 달은 밤의 관찰자, 해가 진리라면 달이 비추는 것은 다만 진실이다.

 

 

페라리 SF90 스트라달레 서머싯 몸과 한승원의 언어로 달은 이상향이지만, 간절한 대상은 동시에 두렵기도 한 것. 달은 월식을 일으키고 조류를 바꿀 만큼 강력하다. 달과 악마의 관계성이 악마의 재능을 말하는 것이라면, SF90 스트라달레와 달의 연관성은 깊어진다. 페라리의 가장 강력한 로드카인 SF90 스트라달레를 움직이는 것은 V8 터보 엔진과 세 개의 전기모터가 결합한 하이브리드 심장이다. 과열된 보닛을 열면 꼭 지금같이 뜨거운 해인지, 차가운 달인지 모를 시뻘건 심장이 팔딱거리지 않을까. 합산 최고출력 1000마력에 달하는 광기 어린 힘을 뿜는 몸체는 겨우 1805kg의 무게로 정지 상태에서 시속 100km까지 단 2.5초 만에 도달한다. SF90의 우아한 선과 면은 온종일 눈으로 핥으며 쓰다듬기에 모자람이 없지만 관음을 위한 것만은 아니다. 상상할 수 있는 모든 곡률이 실은 막강한 공력성능을 내는 데 몰두하고 있다. 후면에는 더욱 혁신적인 제어 로직이 들어간다. 고속에서 코너를 통과할 땐 후면 엔진 커버 끝에 달린 셧오프 거니가 거니 플랩으로 바뀐다. 이로써 SF90 스트라달레는 시속 250km에서 390kg이란 거대한 다운포스와 압도적인 속력으로 도로 위를 자유로이 누빌 수 있다. 잘나서 시샘을 받는 건 달과 닮은 점. 영화 <데블스 에드버킷>에서 사탄은 아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아들아, 자유는 미안해할 필요가 없는 거란다."

 

아우디 RS 6 아반트 샤머니즘은 만물이 살아 있다는 물활론적 사고에서 비롯한다. 태초에 태양과 달, 하늘과 땅, 인간과 돌멩이는 전부 하나의 몸덩이에 지나지 않았다. 인간은 세계 질서를 유지하기 위해 양단의 존재를 추출해 나름의 기준을 세웠다. 신과 악마, 해와 달, 관념과 실체. 네 개의 링이 포개지는 아우디의 엠블럼을 보면 우주의 속성을 함의한 심벌이라도 되는 양 싶다. 아우디는 우주를 탐미하는 데 진심인 브랜드기도 하니까. 인지장애를 일으키는 왜건은 어딘가 불경하다고 생각했다. 우등한 유전인자들을 혼인시켜 세상 밖에 나온 열등한 이무기, 우생학의 재앙 같은 모습이랄까. 영락없는 세단의 앞면에서 D필러를 쭉 뽑아낸 뒷모습으로 선을 옮기다 보면 어딘가 불편하고 측은해졌다. 그런데 달빛을 머금은 RS6 아반트를 보니 생각이 달라진다.

 

달빛 아래 기묘한 형체가 자아낸 마법도 잠시, 시동을 켜는 순간 터프한 짐승의 울음소리와 함께 정신이 돌아온다. 4.0ℓ V8 터보 엔진을 얹은 RS 6 아반트는 최고출력 600마력을 발휘하는 고성능 왜건이다. 정지 상태에서 시속 100km까지 도달하는 시간은 고작 3.6초. 고성능 모델의 장점은 민첩하고 역동적인 주행성능은 물론 고성능 모델다운 디자인 요소까지 포함한다. 어둠에 가려졌지만 그릴에는 새카맣게 칠해진 네 개의 아우디 링과 RS 배지가 붙어 있고 범퍼에는 큼직한 공기흡입구가 달렸다. 왜건답게 잘록한 엉덩이 라인은 말쑥하고 보닛의 날카로운 라인은 달빛을 오렸다 다시 이어 붙인다. 거기에 목이 길어 슬픈 짐승 같은 옆모습. 언제나 아름다운 건 조금 슬픈 것이란 누군가의 말이 옳았다. 

 

 

랜드로버 디펜더 90 정화수를 떠다 달에 치성을 드리는 건 옛날 옛적 이 땅에 깊게 뿌리내렸던 샤먼 행위다. 동양에서 달은 우상화되고 중세 서양에서 달은 악마화됐지만, 달에 죄를 탓한다면 그건 감히 가지지 못할 아름다움이란 것뿐. 무언가를 향한 열망으로 타는 목마름은 결국 소유로 보상받는다. 차 역시 정당한 보상이 될 수 있다. 디펜더 90의 뛰어난 오프로드 성능에 대해서는 굳이 설명할 필요가 없다. 여기서 말하고 싶은 것은 디펜더 110에서 시작해 90에 서 완성된 것, 오프로더의 미학. 마침내 뒤가 싹둑 잘린 디펜더 90의 뒷모습을 보면 폭포처럼 시원해진다. 기다란 휠베이스로 둔덕을 넘을 때마다 출렁거릴 것 같은 110과 달리, 90은 오프로드에 로망을 가진 이들이 침을 흘리는 딴딴한 3도어 쇼트 보디로 돌아섰다. 비행체의 조종간 같은 실내는 여타 아이코닉한 오프로더와 차별되는 디펜더만의 색채. 운전석에 앉으면 황량한 개활지는 금세 달이나 화성 표면이 된다. 무언가를 섬기려면 아끼는 마음을 투영하고, 소중히 여기며, 만지기에도 온전한 재료가 필요하다. 모험 정신을 대변하는 디펜더 90은 킁킁대고 만질 수 있는 이상향. 현실의 ‘6펜스’ 따위는 가뿐히 뛰어넘을 탄탄한 용수철, 자유로울 자유. 아, 달의 또 다른 이름은 ‘마음껏 사랑할 자유’가 아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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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EDIT

EDITOR : 장은지PHOTO : 이성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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