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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으로 나타나… 폭풍으로 사라지다, 페라리 SF90 스트라달레 아세토 피오라노

20세기적인 슈퍼카의 정의는 이제 잊기 바란다. 피오라노 서킷을 바람처럼 가른 페라리 최초의 플러그인 하이브리드는, 슈퍼카에 대한 모든 생각을 순식간에 바꿔놓았다

2021.12.28

페라리 레드의 본거지가 맞긴 한 거지?” 이른 아침 피오라노 서킷의 하늘은 한국의 가을 하늘이, 그리고 페라리의 상징 색깔이 무색해질 지경이었다. 옷깃을 파고드는 차갑고 청명한 공기 사이로 짙푸른 물감이 뚝뚝 떨어지는 것만 같았다.

 

 

어디 그뿐인가, 개라지 앞에서 페라리 스태프의 점검을 받고 있는 오늘의 시승차마저 낯설기 그지없는 푸른 색상이었다. 페라리 본사 방문은 이번이 세 번째. 그런데 이번은 머문 기간 내내 빨간색만 보다 갔던 이전의 두 차례 방문과는 뭐가 달라도 다를 듯한 전조가 보이기 시작했다.

 

 

페라리의 첫 하이브리드 슈퍼카 얘기를 처음 들었을 때만 해도, 그저 그렇구나 싶었다. 세상이 변하고 있으니, 그래서 하이브리드나 전기 슈퍼카들이 연달아 등장하니 페라리도 응당 그래야 하지 않겠나 했다. 2년여 전 SF90 스트라달레가 등장했을 때도, 그저 그 직전에 나온 F8 트리뷰토의 업데이트 버전에 하이브리드 시스템을 더한 정도 아닐까 여기기만 했다. 그게 아니었다. 이탈리아행 비행기 안에서 미리 살펴본 두툼한 자료는 이 차의 많은 부분이 그 전까지 있던 어떤 페라리와도 다름을 보여주고 있었다.

 

 

이탈리아 입국 때보다 더 까다로운 절차를 거쳐 어렵사리 피오라노 서킷 입구를 통과하고 낯선 분위기에 심장박동이 가파르게 솟구칠 때, 아직 준비도 되지 않았는데 갑자기 누군가 어설픈 발음으로 내 이름을 불렀다. 다가가자마자 다짜고짜 맞는 헬멧을 골라 쓰고 나오라고 했다. 헬멧 뒤집어쓰고 개라지를 나서니 불과 몇 분 전 ‘오늘따라 파란 페라리가 많네’ 생각하며 지나쳤던 그 차가 도어를 활짝 열어젖힌 채 내 앞에 서 있었다. 아드레날린이 마구 솟구치기 시작했다.

 

 

오늘 이곳 피오라노 서킷까지 먼 길을 찾아온 이유는 바로 이 차를 타기 위해서다. SF90 스트라달레 아세토 피오라노라는 기나긴 이름을 가진 이 차는, 페라리 최초의 플러그인 하이브리드 슈퍼카 SF90 스트라달레에 ‘아세토 피오라노 패키지’를 더해 트랙 주행에 최적화한 하이퍼 버전이다. 6억 원을 넘는 가격(국내 시판가 기준)에 5000만 원가량을 추가해야 손에 넣을 수 있는 차에는 ‘페라리의 경험과 서킷 집착’이 고스란히 스며들어 있다.

 

 

V8 4.0ℓ 780마력 엔진과 8단 듀얼 클러치 자동변속기, 그리고 220마력을 내는 전기모터를 더해 총 1000마력을 뽑아내는 파워트레인은 기존 SF90 스트라달레 그대로. 여기에 아세토 피오라노 패키지를 선택하면 차체 곳곳에 값비싼 재질이 듬뿍 들어간다. 예컨대 이렇다. SF90 스트라달레에서 스틸 재질인 스프링과 배기시스템은 티타늄으로 모두 바뀐다.

 

 

그리고 언더보디와 도어 패널은 온통 탄소섬유로 만들어진다. 엄청난 다운포스를 빚어내는 리어윙 역시 탄소섬유로 만든다. 이렇게 해서 덜어낸 무게는 총 30kg. 자동차 제조공정을 조금이라도 경험한 사람들은 알 것이다. 파워트레인을 그대로 둔 상태에서 차체 무게를 다만 1~2kg이라도 줄이는 게 얼마나 어렵고 고통스러운 과정인지 말이다. 페라리는 바로 그걸 해냈다.

 

 

시트에 앉아 안전벨트를 꽉 조이고 나니 몸이 옴짝달싹하지 않았다. 긴장감과 기대감이 뒤범벅된 채 마구 몰려들었다. 운전대 아랫부분을 터치하자 계기반이 화려하게 켜지며 SF90 스트라달레 아세토 피오라노가 조용히 깨어난다. ‘뭐지?’ 너무나 낯설었다! 천지가 진동하듯 요란하게 깨어나야 페라리 아닌가?

 

 

운전대 뒤의 시프트 패들을 잡아당기자 나지막한 소리를 내며 파워트레인이 발진 준비를 한다. 스태프에게 준비완료 사인을 보내고 출발. 이탈리아의 파란색 가을 하늘 아래에서, 그보다 더 파란 SF90 스트라달레 아세토 피오라노가 피오라노 서킷으로 접어들었다. 피오라노 서킷은 페라리의 모든 차를 개발하고 최종 테스트하는 장소다. 총 길이 2.97km에 다양한 코너를 포함하고 있는 테크니컬 코스다. 평균 주행속도는 시속 160km, 최고속도는 슈마허가 페라리 F1팀 시절 세운 시속 290km다.

 

 

서킷에 접어들자마자 1번 코너를 향한 직선주로가 이어지고, 여기서 테스트 드라이버가 운전하는 앞차가 무섭게 내달리기 시작했다. 처음 달려보는 서킷. 코스를 익히기 위해서라도 그와 간격이 벌어지면 곤란했다. 정신없이 가속페달을 밟다 보니 순식간에 1번 코너가 들이닥쳤고, 급히 속도를 줄이며 90도 이상으로 꺾이는 1번 코너를 빠져나갔다. 시속 195km를 연신 오르내리며 여덟 개의 코너를 모두 통과했다.

 

 

이날 주어진 서킷 주행 기회는 오전과 오후 각각 다섯 바퀴씩 총 열 바퀴. 오전 주행은 그야말로 정신 차릴 틈 없이 지나갔다. 그 와중에도 분명히 기억에 남는 건 놀라운 발진 성능과 완벽한 차체 제어 능력이었다. 나만 순간순간 당황했을 뿐, 정작 SF90 스트라달레 아세토 피오라노는 그 다양한 코너와 급가속 구간, 심지어 고속 점프 구간까지 통과하는 와중에 단 한 번도 허둥대지 않았다. 차에 대한 신뢰가 생겼다.

 

 

여기에는 낮은 무게중심도 큰 역할을 한다. 페라리는 SF90 스트라달레의 엔진 높이를 이전보다 12%나 낮췄다. 뿐만 아니다. 8단 습식 듀얼클러치 자동변속기는 이전 F8 트리뷰토의 7단에 비해 10kg 가볍고 20%나 작다. 그래서 이전 7단보다 15mm나 낮춰 배치할 수 있었다. 덕분에 SF90 스트라달레의 엔진 실린더 헤드는 뒤타이어 맨 윗단보다도 낮은 위치에 있다.

 

 

서킷을 충분히 익힌 상태에서 다시 운전석에 앉은 오후 주행에서는 좀 더 차분한 마음으로 살펴볼 수 있었다. SF90 스트라달레 아세토 피오라노의 주행모드는 eD(전기주행 모드)와 하이브리드, 퍼포먼스, 퀄리파잉 등 모두 네 가지. 이름만 들어도 각 모드가 어떤 주행을 보여줄지 알 수 있는 직관적 명칭들이다. eD 모드는 그야말로 경이롭다.

 

 

전기모터만으로 움직이는 페라리라니! SF90 스트라달레 아세토 피오라노는 운전석 등받이 뒤에 세로로 세워놓은 배터리와 그 바로 뒤에 이어진 메인 모터, 그리고 좌우 앞 차축에 하나씩 달린 두 개의 추가 모터만으로 25km의 거리를 아무런 소리 없이, 유령처럼 미끄러져간다. 특히 우리나라처럼 아파트가 많은 주거 환경에서, 사랑하는 페라리의 엔진음이 이웃에 폐가 될까 신경 쓰이는 오너에게는 이보다 유용한 기능이 없을 것이다. 

 

 

하이브리드 모드에서는 효율성에, 퍼포먼스 모드에서는 엔진을 계속 돌리며 배터리 충전 상태를 최상으로 유지하는 데 초점을 맞춘다. 퀄리파잉 모드에서는 이 차가 가진 1000마력의 능력을 모조리 뽑아낸다. 서킷에서는 차마 퀄리파잉 모드까지 올려보진 못했지만, 나머지 세 가지 모드는 골고루 경험해보았다. SF90 스트라달레 아세토 피오라노의 실제 오너들이라면 아마 하이브리드의 장점을 극대화하면서 가장 재미있게 탈 수 있는 퍼포먼스 모드를 애용하지 않을까 싶다.

 

 

흥미로운 건 또 있다. 이 차에서는 각 주행모드에 따라 앞바퀴굴림과 뒷바퀴굴림, 혹은 네바퀴굴림 구동계의 효과를 두루 맛볼 수 있다. 소리 없이 움직이는가 하면 정지상태에서 시속 97km 가속을 2.5초 이하에 끝내버리기도 한다. 역사상 가장 야누스적인 페라리다.
엔초 페라리는 “다음에 나올 차가 최고의 차”라고 했다. 지금 이 순간, 최고의 페라리는 바로 SF90 스트라달레 아세토 피오라노다. 

 


 

Ferrari Plug-In Hybrid System
한국산 배터리, 페라리 첫 하이브리드를 빛내다

 

 

페라리는 고집불통이 아니다. 변해가는 세상에 열심히 적응하되, 그러면서도 ‘페라리다움’만은 반드시 지킨다. SF90 스트라달레 아세토 피오라노가 바로 그 증거다. 

 

페라리의 하이브리드 시스템은 우선 350V 배터리에서 출발한다. 총 84개의 리튬이온 셀로 구성된 SF90 스트라달레의 배터리 무게는 72kg에 불과하다. 고전압과 경량의 두 마리 토끼를 잡아낸 배터리는 우리나라의 SK이노베이션이 공급한다. 메인 모터(P1 E-모터)는 V8 엔진과 기어박스 사이에 배치된다. 72mm에 그칠 정도로 얇으며, 무게도 22kg으로 억제했다. 이 모터는 V8  엔진의 크랭크샤프트와 직접 연결되는데, 이런 방식은 양산차 최초다. 

 

페라리 엔지니어들은 얇고 동그란 형태를 빗대어 이 모터에 ‘피자 모터’라는 별명을 붙여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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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EDIT

EDITOR : 김우성PHOTO : 페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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