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ICHCAR


페라리 296 GTB VS. 페라리 로마

2년 전, 일상에서 편하게 탈 수 있는 엔트리 모델 로마가 처음 등장했고 얼마 전 페라리 최초의 6기통 하이브리드카 296 GTB가 태어났다. 내연기관에서 전동화 시대로 접어드는 변곡점의 좌우에 나란히 위치한 두 차, 페라리의 저변을 넓힌 모델들을 번갈아 타봤다

2022.07.16

 
슈퍼카의 미래를 묻자 페라리는 이렇게 답했다
 
디노의 후계자일 걸로만 여겼다. 6기통이라는 숫자에 현혹된 탓이다. 페라리는 일찌감치 정색하며 아니라고 했지만, 솔직히 한 귀로 흘려들었다. 이미 반세기도 더 된 얘기지만, 아무튼 엔초 페라리는  6기통 페라리를 수치스럽게 생각했다고 한다. 그렇다고 6기통에 문제가 있는 건 전혀 아니다. 12기통과 8기통이 지배하던 시절이었으니, 그럴 만도  했겠구나 싶을 따름이다.

마침내 우리 앞에 등장한 페라리의 완전 신형 V6는, 누군가의 후계자일 수가 없는 차였다. 이 차, 296 GTB는 ‘완전히 새로운 시대의 시작점’이다. 섣부른 장담 아니냐고? 천만에, 절대로 섣부른 장담이 아니라고 장담한다. 우선 이 차는 하나부터 열까지 새롭게 만들어낸 페라리다. 그리고 창업자가 수치스러워했다는 V6 터보를 과감히 올렸다.
 
 
그것도 모자라 그 엔진에 7.45kWh 배터리와 전기모터를 연결한 하이브리드 파워트레인까지 갖췄다. 물론 SF90 스트라달레가 V8 엔진과 전기모터를 결합한 형태를 먼저 선보이긴 했지만, SF90보다 길이가 145mm나 짧은 콤팩트한 차체에 경량 엔진(페라리 입장에서 그렇다는 얘기다) 기반 하이브리드 파워트레인을 올린 건 페라리가 완전히 새로운 시대로 접어들었음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선언이다. 

주행모드는 e-D와 하이브리드, 퍼포먼스, 퀄리파잉 등 4가지. e-D 모드로 스티어링 휠 하단을 터치해 시동을 걸자 모터가 가볍게 돌아가는 낯선 소리만 들릴 뿐 조용하다. ‘페라리가 이래도 되나?’ SF90부터 로마를 거치며 이미 여러 차례 경험했음에도 터치식 시동은 좀처럼 익숙해지지 않는다. 게다가, 조용하게 깨어나는 페라리라니!
 

소름 돋는 사운드의 공백 때문일까? 노면에 찰싹 달라붙은 채 유령처럼 조용하게 미끄러지는 296 GTB 아세토 피오라노의 차체는 어쩐지 더욱 날렵해 보인다. 도로로 접어들면서 주행모드를 퍼포먼스로 바꾸자 운전석 등 뒤에서 우렁찬 사운드를 토해내며 V6가 깨어난다. 순간 온몸의 세포가 하나하나 깨어나며 비로소 페라리의 운전석에 앉아 있는 느낌이 확 몰려든다.
 
296 GTB의 핵심은 뱅크각 120˚의 V6 엔진. 형태 자체로 이미 예술이다

지난해 늦가을, 이탈리아 모데나의 페라리 디자인 센터에서 296 GTB의 실제 모형을 처음 봤다. 그 옆에 서 있던 페라리 디자이너의 뿌듯한 표정을 잊을 수 없다. 그 직전 탔던 SF90 스트라달레를 잠시 잊어버릴 정도로 296 GTB의 낮고 넓고 콤팩트한 차체는 근사했다. 296 GTB의 디자인은 1960년대 내구레이스를 휩쓴 250 LM에 대한 오마주다. 리어 윈도와 그 바로 아래 미드리어에 자리 잡은 V6 엔진은 디자인 모티브를 뚜렷이 알려주는 단서다.
 
페라리의 현재와 미래가 아니다. 이들은 각기 다른 방법으로 새로운 페라리를 보여주는 2가지 버전의 시작점이다

터널백 타입으로 마무리한 리어 윈도와 차체 후면부는 공기역학 측면에서 불리해지기 쉬운데, 페라리 개발팀은 풍부한 F1 레이스 경험을 토대로 약점을 강점으로 바꾸는 데 성공했다. 지붕 끝단의 스포일러와 과감한 곡면을 구현한 엔진 글라스 커버 등으로 공기역학 성능을 극대화했다.
 
그 덕분인지 하루 종일 아무리 달리고 꺾고 돌려도 리어 윈도와 글라스 커버에는 먼지 하나 들러붙지 않았다. 뒷목 잡는 와류가 없었다는 얘기. 여기에 프런트 노즈 중앙의 티 트레이와 차체 후면 액티브 스포일러가 100kg의 추가적인 다운포스를 생성한다. 이 또한 F1 기술로, ‘F1 그랑프리 출전을 위해 로드카를 만든다’는 페라리의 철학이 실감나는 대목이다.
 

가속페달을 살짝 눌러 밟자마자 시속 200km쯤은 너무나 수월하게 돌파해버리는 296 GTB의 하이라이트는 역시 V6 엔진이다. F1 머신을 제외한 로드카에 처음 적용한 뱅크각 120°의 V6 엔진은 페라리 엔진 기술의 정수나 다름없다. 뱅크각을 이 정도로 확보함으로써 우선 엔진 높이를 F8 트리뷰토 등의 V8 엔진 대비 50mm 낮출 수 있었고 그러면서도 서스펜션 세팅을 위한 여지도 확보했다.
 
V8보다 30kg이나 가벼운 이 엔진의 뱅크 사이에는 터보를 배치했다. V8과 비교해 터보차저의 컴프레서 직경은 8%, 터빈 직경은 11% 줄었고, 회전질량도 11% 감소했다. 덕분에 저회전 영역에서부터 부스트가 역동적으로 올라간다.
 

배터리는 1열 시트 등 뒤에 들어간다. SF90과 동일한 레이아웃이다. 167마력을 내는 전기모터는 8단 DCT 사이에 배치했는데, 역시 F1에서 가져온 MGU-K(모터제너레이터 유닛 키네틱) 기술로 회생 기능을 구현한다. 배터리 용량이 크진 않지만, 그래도 전기모터만으로 25km의 거리를 달릴 수 있고 시속 135km까지 속도를 올릴 수 있다.

거의 모든 제어를 터치식으로 수행하는 풀 디지털 실내에서도 올드 페라리에 대한 오마주의 희미한 흔적은 찾을 수 있다. 특유의 게이트식 기어레버를 형상화한 자동변속기 셀렉터가 그렇고 스티어링 칼럼의 대형 패들 시프트가 그렇다. 경량 카본파이버로 만든 시트는 차분해질 틈 없이 고속주행 욕구를 자극한다. 고속으로 달리거나 코너를 돌아 나갈 때는 카본 시트 특유의 삐걱대는 소리가 들리지만, 거슬리기는커녕 그마저 묘한 흥분제가 된다.
 

296 GTB는 하이브리드 파워트레인을 얹고도 차체 중량을 1470kg으로 억제하는 데 성공했다. SF90보다 100kg 가볍다. 앞뒤 무게배분은 40.5대 59.5이고 무게중심은 극도로 낮아졌다. 낮은 무게중심의 진가는 고속 코너링 때 여지없이 드러난다. 마치 오픈휠 경주차를 모는 듯, 4개의 타이어가 노면을 단단히 움켜쥔 채 칼날처럼 예리하게 곡선을 휘감아 나간다. F8 트리뷰토보다 50mm나 짧은 휠베이스와 떡 벌어진 너비도 비현실적인 접지력과 환상적인 코너링을 부추긴다.
 
시스템 출력 830마력의 V6 하이브리드 시스템은 톤 다운한 사운드와 넘치는 파워로 ‘데일리 슈퍼카’의 모범을 보여준다. 296 GTB는 슈퍼카의 미래를 묻는 질문에 대한 페라리의 대답이다. 엔초는 여전히 6기통을 마뜩잖아할까? 그가 환생해 296 GTB를 지켜본다면, 그러지 않을 것 같다. 
김우성
 

 
나는 로마에게 사과해야 했다
 
296 GTB와 로마를 하루에 타보고 발견한 사실. 매끈하고 육감적인 296 GTB의 디자인 언어는 로마의 그것과 결이 맞닿아 있었다. 로마가 296 GTB보다 한발 앞서 페라리의 새로운 디자인 언어를 선보였었다는 사실을 두 차를 번갈아 보고야 비로소 깨닫게 됐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296 GTB의 실내에서 눈길을 끌었던 대형 디스플레이 계기반과 터치 컨트롤이 적용된 스티어링 휠 역시 로마에 먼저 적용돼 있었다. 물론 이것들을 가장 먼저 선보인 것은 현재 페라리 라인업의 기함인 SF90 스트라달레였지만 이 요소들을 가장 먼저 적극적으로 받아들인 모델이 로마였고 그다음이 296 GTB인 것 또한 사실이다. 
 

선입견이란 것이 이렇게 무섭구나 싶었다. 로마를 처음 만났을 때는 대형 디스플레이 하나가 계기반 역할을 하는 요즘의 트렌드를 따랐다고만 생각했었다. 속도계가 가운데에 자리 잡은 페라리 특유의 3구획 인스트루먼트 패널 디자인을 버린 이유를 그렇게 쉽게 단정했던 것이다.
 
로마의 외관 디자인을 두고도 무난한 모델의 성격을 반영한 것이겠거니 하고 단순하게 넘겨버렸다. 나는 은연중에 로마를 페라리 가운데 가장 무난한 친구 정도로 대접했던 것이다. 정말 미안했다.
 
버튼이나 레버는 생각하지 마시라! 로마의 운전석에는 디지털 향연이 펼쳐진다

로마가 국내에 첫선을 보이던 날을 기억한다. 보통 페라리의 론칭용 동영상 클립은 새로운 하이테크와 그로 인한 성능 향상에 초점을 맞춘, 다분히 기술적인 내용으로 채워지곤 했었다. 하지만 로마는 달랐다. 로마가 전시된 무대 뒤 스크린에는 ‘La Nuova Dolce Vita’라는 글귀와 함께 1950년대 전후 로마의 풍경을 담은 흑백 슬라이드쇼가 흘러갔다.
 
자연스럽게 영화 <로마의 휴일>이 머릿속에 떠오르고 자막대로 내게도 ‘달콤한 인생’이 다시 오는 것 같은 행복감이 밀려왔다. ‘아, 갖고 싶다!’
 

페라리 로마는 단순히 페라리의 새로운 엔트리급 모델이 아니다. 296 GTB 못지않게 중요한 모델이다. 오랜만에 완전히 새롭게 개발된 차체에 전동 파워트레인을 탑재한 296 GTB가 페라리의 미래를 겨누는 화살촉이라면, 페라리 로마는 페라리에게도 감성이 있음을 고백한 러브레터 같은 모델이다. 레이싱과 고성능을 향한 차가운 이성과 뜨거운 열정과는 결이 다른 따뜻한 마음 말이다.

따뜻하고 행복한 마음. 이것이 로마가 페라리에게 새로운 고객을 데려다주는, 아니 더 많은 사람에게 페라리가 다가가는 방법이었다. 단순히 지금까지의 페라리들보다 순하고 가격이 그나마 좀 가깝다는 수학적인 접근만은 아니었던 것이다.
 

자, 그렇다면 이렇게 섬세한 기획과 이미지를 바탕으로 태어난 페라리 로마의 진짜 맛은 어떨까? 만일 그저 싱거운 페라리일 뿐이라면 큰마음 먹고 페라리의 가족이 되기로 결심한 소중한 신규 고객들에게 실망을 안겨주고 오히려 페라리에게서 멀어지게 만들 수도 있다. 

언뜻 보기에는 디자인을 제외하고 기술적으로는 딱히 눈여겨볼 필요가 없다고 생각할 수 있다. 기함인 SF90과 공유하는 8단 듀얼클러치 변속기만이 새롭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엔진은 현행 티포 F154BH V8 트윈 터보 엔진으로 변속기와 함께 포르토피노 M과 공유하는 유닛으로, 캘리포니아 T 이래로 페라리의 V8 그랜드 투어러 모델들이 사용하던 엔진 패밀리의 최종 진화형이다.
 
손끝 무딘 사람에겐 운전보다 더 어려운 터치 방식 컨트롤러
 
F8 트리뷰토의 엔진과는 스트로크가 딱 1mm 짧을 뿐 기술적 제원은 거의 같다. 오히려 SF90의 F154FA 엔진과는 스트로크가 똑같고 보어가 1.5mm 좁다. 어쨌든 현행 V8 트윈 터보 패밀리임은 틀림없다.

그렇다면? 페라리로서 갖춰야 할 기술적인 요소는 완벽하게 갖추었다는 뜻이다. 그리고 새로운 디자인 언어와 8기통 그랜드 투어러 쿠페(베를리네타)로서는 최초로 2+2(좌석) 레이아웃을 선택했다. 따라서 페라리의 새로운 고객들에게 로마가 어떤 말을 하는지만 잘 들어보면 될 것이다.
 

로마와 함께 도로를 달린다. 로마가 내게 건넨 첫 마디는 ‘마음 편하게 즐겨’였다. 로마는 마음 편하게 기댈 수 있는 좋은 친구였다. 함께 시승한 296 GTB가 레이싱 머신의 도로 주행용 버전 같은 매우 정교한 조율로 점점 몰입하게 만드는 쪽이었다면, 로마는 두툼한 토크로 노면과 타이어의 댄스를 어렵지 않게 즐길 수 있는 쾌활한 친구다. 

엄청난 조종 성능과 즉각적이고 강력한 파워로 탁월한 성능을 자랑하는 296 GTB는 정말이지 대단한 머신이었지만 그만큼 운전대를 잡은 사람도 잘 해야 할 것 같은 부담감이 없지 않았다. 하지만 로마는 꼬리를 슬쩍슬쩍 흘리는 쾌감을 너무나도 쉽고 안정적으로 보여주는 맛 때문에 자꾸 유턴 구간을 찾아가게 만들었다. 물론 0→시속 100km 가속은 3.4초, 최고속도 시속 320km인 로마는 절대 ‘느린’ 차가 아니다. 단지 내게 곁을 좀 더 내어주는 친절한 친구일 뿐이다. 
 

이번 시승을 함께한 김우성 주간의 얼굴에서도 같은 마음을 읽을 수 있었다. 296 GTB에서는 말도 하지 않고 정면만 바라보던 우리는 로마에서는 서로 맞장구도 쳐가며 함박웃음과 함께 드라이브를 즐겼다. 상쾌했고 갑자기 뿌듯한 기분도 들었다. 마치 로마가 “운전 잘하는데, 친구!”라 말하며 추켜올려준 것 같았다. 

그래, 이젠 즐거운 게 좋다. 이렇게 인생이 달콤해질 수 있다면 참 좋겠다. 로마는 좋은 친구였다. 이렇게 페라리 팬 하나가 늘었다. 그리고 그것이 바로 로마의 임무였다. 
나윤석
 

 

 

 

모터트렌드, 자동차, 시승기, 비교시승, 슈퍼카, 스포츠카, 페라리, 296GTB, 아세토피오라노, 로마

페이스북 트위터 링크
CREDIT

EDITOR : 장은지PHOTO : 이성연

모터 트렌드 ©motortrendkorea.com, ©motortrendkorea.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